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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타야 여행이 내게 남긴 것

아무런 정보 없이 떠난 아유타야 당일치기 후기

by 김유례

일반화시키는 것은 문제이지만 내가 만났던 태국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저축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따뜻한 기후, 넓은 농토, 풍부한 수량 등 풍요로운 자연환경으로부터 온 안일함 때문일 수도 있지만 태국의 문화, 정치적인 상황을 돌아보면 그들의 소비 습관이 어리석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태국은 왕실, 군부, 정치인, 기업에 집중된 관료제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 성장률이 낮고 빈부 격차가 심하다. 생활수준은 높아졌지만 축적된 자본은 없고 워낙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민족인지라 판자 집에 살면서도 벤츠를 끌고 다니며 평생 빚쟁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일이 흔한지도 모르겠다. 1960년 중반쯤 만 해도 한국보다 1인당 GDP도 높고 1990년대에는 아시아에서 고도성장이 기대되는 국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금 안타까운 일이다.


저 먼 타국의 일이 꼭 남일 같지 않은 건 나의 생활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각종 경제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기 전까지 나는 저축, 투자, 재테크 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겨를이 없었다. 독립은 고사하고 몇 년 간 투잡까지 뛰었지만 매달 들어가는 고정 비용에 학자금 대출금 상환까지 겹쳐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런 중에도 나는 먹는 것과 취미 생활에 지출을 아끼지 않았던 터라 태국 친구이 버는 족족 써버릴 때에도 그들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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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유타야 여행을 포기했더라면 나는 여전히 현실을 살면서도 미래를 불안해하는 불행한 삶을 지속했을 것이다. 나는 방콕에 머문 지 31일째 되는 날 당일치기로 아유타야에 다녀왔다. 모든 여행이 만족스러울 순 없겠지만 아유타야는 스스로도 미련이 많이 남는 도시다. 나는 택시를 대절하는 대신 대신 북부 터미널에서 미니 벤을 탔다. 나는 아유타야에 도착하자마자 블로그에서 검색한 대로 적절한 가격에 툭툭을 대절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사원 3곳과 살라 아유타야(호텔 겸 카페를 운영하는 곳)를 총 3시간 동안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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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타야는 400년 동안 태국의 수도로 번성했던 도시답게 꽤 크고 여전히 중후한 멋이 남아 있었다. 꿉꿉한 흙냄새도 싫지 않았다. 나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약속된 3개의 사원을 모두 돌아보았는데 아유타야 풍경을 카메라에 잔뜩 담고도 허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형태를 알 수 없을 만큼 훼손된 건물과 머리가 잘린 부처상의 이야기를 몰랐다. 아유타야의 역사나 각 사원에 대한 정보 없이 무작정 떠나 놓고 아유타야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기대한 건 나의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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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절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데서 기회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준비나 계획을 복잡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한 채 우연한 일들만 기대해왔다. 중요한 건 액수가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나는 아유타야 여행이라는 미래를 성실하게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를 맛본 것뿐이다. 누리는 것은 성실히 준비한 자의 몫이지만 아유타야의 자비로움 덕분에 나는 이렇게 또 하나를 얻었다. 역시 세상엔 아무 의미 없는 관계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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