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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카리스마는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다

태국 방콕 에라완 박물관에서 만난 꽃 파는 아주머니와의 일화

by 김유례
KakaoTalk_Moim_6cxGBYX3jiYpPaYiigzgQAw1IZrImB.jpg 에라완 박물관의 상징 삼두 코끼리상

스무 살 때인가 당시 아지트로 삼았던 동네 카페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자신과 가깝게 지내는 대학교 동기를 데리고 왔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착석한 이후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날의 사건은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놀림거리가 됐다. 이후로도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최대한 웃음을 자제하고 딱딱한 표정을 지어 불편한 사람이 되기를 자처해왔다. 에라완 박물관에서 만난 그 아주머니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계속 스스로를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라고만 정의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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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의 에라완 박물관은 무앙보란(방콕에 있는 세계 최대의 야외 박물관)의 소유자 렉 비리야판(Lek Viriyapant)이 자신의 소장품을 전시할 목적으로 건립한 곳이다. 1, 2층의 건물 위에는 아이라바타(Airavata)라 불리는 삼두 코끼리가 있는데 그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들 정도다. 귀를 활짝 펴고 곧 달려 나갈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코끼리 상 내부에는 신의 왕 인드라가 살고 있다는 타바팀사 천국을 형상화 한 사원이 있다. 그 중앙에는 수코타이 미술의 보배라 불리는 유행불(遊行佛-걸어다니는 불상)이 있는데 차분하고 온화한 모습이지만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아 매우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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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외부까지 다 둘러보고 집으로 가려는데 에라완 박물관이 역과는 거리가 멀고 인근에 고속도로가 있어서인지 택시를 잡는 게 쉽지 않았다. 다행히 경비 아저씨의 도움으로 신호등 없는 도로를 가로질러 박물관 반대편으로 갔지만 그쪽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저 택시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멀뚱멀뚱 서있는데 그 어지러운 도로 한복판에서 꽃을 팔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택시가 정차하는 쪽으로 나를 인도한 것이었다. 나는 아주머니를 향해 합장하듯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며 “코쿤 카(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는데 그가 나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나도 그를 따라 이가 다 보이도록 환하게 웃었다. 내가 태국에서 누군가의 눈인사에 처음으로 화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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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나는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생글생글 웃는 태국인들을 불편해했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실없이 웃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우연히 누군가 눈인사라도 건네면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돌려 그들의 해맑은 미소를 회피했다. 그러나 에라완 박물관 근처에서 꽃을 파는 아주머니를 따라 웃은 날 나는 진정한 카리스마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의 상냥한 미소는 그가 얼마나 여유 있고 멋있는 사람인지를 대변했다. 태국인들의 미소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짐과 동시에 나는 내가 몰랐던 나의 진짜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절대로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도도하거나 표정 없는 얼굴이 나를 표현하는 멋이라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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