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무에타이를 배우고 묘한 쾌감을 느꼈다
처음엔 모든 게 좋았다. 방콕의 뜨거운 볕도, 심지어 매캐한 하수구 냄새까지도 방콕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랑의 콩깍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방콕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여행자로서의 해방감은 곧 지루함이 됐다. 출근할 때마다 “매일 갈만한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라고 말했던 엄마의 말이 그때는 야속했을지언정 괜한 으름장은 아니었구나 싶어 졌다.
나는 방콕 여행 중 딱히 할 일이 없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한국에처럼 매주 토요일마다 폴댄스 수업을 들었다. 나의 폴댄스 선생님 줄리안은 실력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늘 상냥하고 유쾌해 보는 사람까지 즐거워지게 하는 매력의 소유자였다. 그날도 줄리안이 먼저 시범을 보여줬고 이후 개인 연습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도무지 그의 동작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은 끝나 가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마음만 조급해졌다.
거의 포기 상태로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내게 줄리안이 다가왔다. 그는 내게 계속 시도하라고 말하고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박수를 쳐주며 격려했다. 덕분에 어설프게나마 동작을 숙지했지만 나는 수업이 끝나고도 찝찝한 기분을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오직 실패냐 성공이냐를 두고 자책하느라 정작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순간들을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칭찬에 익숙한 사람이다. 특별한 능력이 있다기보다 그렇게 되도록 애쓴다. 방법은 간단하다. 오로지 내 경험과 지식에만 근거해서 판단하고 행동하면 됐다. 그러면 일이 간편해지고 시간이 단축됐다. 내가 잘하거나 익숙한 것들만 시도하다 보니 적중률도 높았다. 물론 칭찬이 내 마음을 완벽하게 채워주진 못했지만 그것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실패를 마주하는 게 더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무에타이 수업은 완전한 실패나 다름없었다. 태국의 전통 격투 스포츠인 무에타이는 공격 기술만큼 신체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발차기에만 신경 쓰느라 자세가 자주 흐트러져 지도해주는 선생님께 여러 번 주의를 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무에타이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운동이었고 수업 시간 동안 칭찬을 받은 기억도 없지만 수업이 다 끝난 후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나는 그동안 각 일들의 장·단점을 고루 파악하지 못하고 성급히 속단해 버렸다. 하지만 혹독한 방콕 수업을 통해 모든 일에는 끝이 있고 그 결과의 모양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그 과정 속 나 자신이라는 것을 배웠다. 매일 불행해야 할 이유도 매일 행복해야 할 이유도 없듯이 꼭 삶을 허울과 걱정으로 채워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진짜 나를 발견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일을 시도해봐야 할까 겁도 나지만 세상에는 의외로 괜찮은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