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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Uye Jun 21. 2019

시간이 흘러도

에쿠니 가오리 ‘웨하스 의자’ 독후감

며칠 전 꿈에 은지가 나왔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미. 칠. 것. 같. 다. 고 생각한 순간 창가에 기대 있는 은지를 발견했다. 은지는 나긋하고 차분한 말투로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주었다. 덕분에 난 안심했다.


며칠 뒤에는 꿈에 지수가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지수의 사진전에 내가 찾아갔다. 지수는 파란색 코트를 멋지게 차려입고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전시회를 찾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내가 준비한 꽃다발을 꽃병에 옮겨 담았다.


나는 지수가 떠난 오월 그 어느 날부터 쭉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결과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은지와 아연이가 떠난 십 년 전부터 쭉 죽음을 곱씹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쓴 에세이까지 다 챙겨보는 편이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대부분은 쉽게 절망하고 죽기 위해 애쓴다. 그 속에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과거 애인을, 사소한 습관을 떠올린다. 나는 대개 그것들로부터 벗어났지만 사실은 여전히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완전히 갇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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