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 말로 개인취향 아닌가요?

뮤지컬 <시라노> 공연 후기

by 김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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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라노> 줄거리

뮤지컬 시라노는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시라노는 매사 열정적이고 또 정의로운 사람이다. 그가 시인으로써 가진 감성과 군인으로써 갖춘 용맹함은 그를 매우 전형적인 영웅 캐릭터로 보이게 하지만 사실 그에겐 크고 볼품없는 코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사랑하는 여인 록산앞에서 유독 작아지고 자신이 없다.



단순해서 더 아름다운 뮤지컬 <시라노>


유독 뮤지컬을 관람할 때 1막에 오른 수많은 배우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어린이 뮤지컬을 보고 있는건 아닐까 의문에 빠지곤 한다. 어쩐지 현실에서 듣기 어려운 말투와 부드러운 몸놀림 또는 무대 장치가 유치하기 때문은 아닐까 넘겨짚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뮤지컬 <시라노>를 보면서 나는 알았다. 어린아이가 된 내 마음이 그 원인이라는 걸.


대부분의 뮤지컬은 고전적인 사랑이야기를 뼈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찌보면 어리석고 우둔한 이야기로 비춰질 수 있기에 만약 상업적인 목적의 K팝스타나 슈퍼스타K 등에 심사를 받는다면 Fail을 면치 못할 것이다.

허나 뮤지컬은 마치 어린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큰 숲속을 닮았다. 어른은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 계산한다. 그러나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마음껏 상상하고 꿈꾼다. 뮤지컬도 마찬가지. 극이 시작되고 끝이나기까지 내 안에 잠들어있던 어린이이와 같은 갈망, 계산되지 않은 잔순한 열망 등이 불타오른다.

나는 그 속에서 마음껏 사랑하고 욕심을 내고 상상한다. 그래서 공연의 장치가 유치하다는 생각은 틀렸다. 왠지 모를 유치함은 뮤지컬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있던 동심 때문이었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흔히 사랑이야기라는 것이 그렇듯 남주, 여주, 이 둘을 방해하는 한 사람으로 진행되지만 시라노는 달랐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쁜놈이 없다. 시라노를 관람한 어떤 냉소적인 사람은 '한 여자의 이기심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든지 '한 여자를 얻기 위한 남자들의 혈투'로 단정지을지 모르겠지만 아니. 그건 시라노를 모르고 하는 소리!

이 극의 캐릭터들은 철저히 각자의 입장에서 온마음을 다해 사랑을 고백하고 받아드리고 거부한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사랑앞에서 주저함이 없는 진실된 모습이. 그래서일까. 타이틀과 페이(pay)에 의해 주조연으로 명확히 나눌 수 있을진 몰라도 분명히 모든 역할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뮤지컬 <시라노>에 관한 말말말


이 극은 시라는 매개체가 등장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시같고 구슬프고(모든 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단순하다. 원래 좋은 시란 단순한 언어로 삶을,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기에 시라노의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대사 속에서 노랫말에서 나는 매우 편안함을 느꼈다. 계산된 치밀함이란 찾아볼 수가 없거든. "나를 위해서" "안녕 내 사랑" 어쩌면 너무 뻔한 대사가 시처럼 마음을 울린다. 현란함은 끝내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 담겼다.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다. 나는 김동완 시라노를 보았다. 신화에서 보여준 카리스마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다. 나중에야 이미 그가 뮤지컬 공연을 올린적이 있었음을 알았지만 그의 피, 땀, 눈물이 보였다. 아직은 무대 위에서 바디 컨트롤이 미숙한 모습을 보였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그의 집중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록산을 연기한 린아 또한 아이돌(천상지희) 출신이지만 이미 그는 완벽한 뮤지컬 배우였다. 아름다운 노래에 넋을 잃게 만드는 실력파 배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이밖에 이미 뮤지컬 계에서 내놓으라하는 배우들, 그리고 내공이 느껴지는 앙상블들의 조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3시간에 가까운 공연에 잔뜩 겁먹었지만 공연이 시작된 첫 순간부터 난 두려움따위 없는 한 어린아이가 됐으니까.


시라노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달빛아래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또 달을 무척 좋아하니까. 달은 내가 우주 한가운데 놓여진 작은 존재임을 깨닫게 하면서도 그가 지닌 아름다움을 내게도 아낌없이 나누어 주기에.


어쨋든 과도하게 큰 달이 마지막에 아주 강하고 환하게 비춰지는데 나는 사실 그때 완전히 마음을 뺏겼다. 달이 선명해질수록 시라노의 슬픔과 그러나 그녀를 향한 강렬한 사랑에 의한 다짐이 고결한 것으로 다가왔다. 이밖에도 실루엣들을 이용한 장면들도 기억에 남는다.



시라노는 시인이니까.
나는 마침 시집을 읽고 있어서
뮤지컬 <시라노>와 잘 어울리는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려한다.





Everybody shall we love?

/김선우


그러니 우리, 사랑할래요?
딱딱한 도시의 등딱지를 열고
게장 속을 비비듯
부패와 발효가 이곳에선 구분되지 않아요
그러나 잘 발효했다고 믿는 몸속에서 비벼진 밥알을
서로의 입에 떠 넣어주듯
그대를 밥 먹이는 게 내 피의 이야기인 듯

보도블록 큰크리트를 걷어내고
꽃잎을 놓은 댓잎 자리 위에 누워
우리 사랑할래요?
지나온 가로수의 허방으로 미끄러져간 계곡과 별빛
기어코 가시에 찔리죠 가시에 찔리고 싶어 걷는 봄날엔

그러니 총 대신! 빌딩 대신! 군함대신! 지폐 대신!
건널목을 둥글게 휘어 놓고꽃잎 물고기와 사슴을 불러 해금을 켤까요
그대와 그대가 사랑을 나눌 때
그대와 그대 곁에서 그대들 위해 군함을 쪼개 모닥불을 지필까요
무릎뼈 위에 먹을 갈아
은행잎 댓잎 위에 번갈아 편지를 쓸까요 오세요 그대.

피 흘리는 벽들이 서로의 가슴을 칠 때
진동으로 생겨난 샛강 같은 골목들
그대와 나의 혈관을 이어 across the universe
무수한 밤이 있었지만
밤의 등골 속으로 흰 새가 내려앉는 건 드문 일이죠
오세요, 단 한 모금 물을 찾아 하염없이 걸어야 할 밤이 오더라도
오세요, 그대가 천 번을 죽어나간다 해도
난 아무 데도 안 갈 거예요
뼈마디마다 댓잎 이불 펼치고 그대 입술에 진홍 꽃잎 수놓으며
여기서 사랑 노랠 부를 거예요 오래전 피 속의 벌 나비 같은
그대와 나의 해골을 안고 뒹굴 거예요
포성 분분한 차디찬
여기는 망가진 빗장뼈 위 백척간두의 칼끝
이것은 피의 이야기,
사랑을 구하는 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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