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토요일 강릉 당일치기 여행
3일 전엔가, 엄마가 등산을 가자고 하셔서 토요일 오전을 빼놨건만 새벽에 엄마에게 온 카톡. “허리가 너무 아파 혼자 다녀와.”
하지만 뭔가 김이 샌 느낌이라 등산 대신 요가 수업이나 가야겠다 싶어 요가복으로 완벽 세팅했건만 문득 강릉이 가고 싶어 졌다. 그래서 찍었지. 네비를. 강릉으로.
AM 9:30 박이추 커피공장
첫 목적지는 강릉에 위치한 박이추 커피공장이었다.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해 휴게소 한번 들렸더니 딱 세 시간 걸렸다. 꽤 이른 시간이지만 2층까지 이미 손님은 만석.
운 좋게 2인석 창가 자리에 착석해 토스트와 커피를 즐겼다.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고 있자니 이게 꿈인가 싶으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AM 10:30 강릉 사천 해변
박이추 커피에서 사천해변으로 이동. 군데군데 먼저 도착한 가족들,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요가 가려다가 강릉으로 온 여인은 그냥 모래 바닥에 털썩 앉아 사람 구경. 발만 담그려다가 파도에 홀딱 젖어버린 아이. 그런 아이를 안고 난감해하는 아이 아버지와 “아이고 내가 못살아”라고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아이의 어머니를 보며 나도 빙그레 따라 웃는다. 소소하지만 누군가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을 가만 보고 있자니 그동안 내가 너무 내 감정에만 집중하느라 꽤 많은 것들을 흘려보냈구나 싶어 졌다. 노곤함에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을 잤다.
AM 11:50 포이푸 카페
사천 해변에서 모닝 꿀잠 후 거리를 배회하다가 발견한 카페. 서핑 레슨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신나는 음악 소리며, 마음이 훅 이끌려 자리를 잡았다. 서핑하는 사람들 구경하기도 바다에서만 가능한 관람 거리. 파도를 넘는 사람들 중에 어린 꼬마도 섞여 있었다. 각기 다른 모양의 파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 어쩌면 그게 평생 우리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아찔한 생각은 덤. 오후 2시에 서핑 레슨이 딱 한자리 남았다는 걸 체크했지만 선크림도, 로션도 없었던 나는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PM 1:00 초당순두부 마을
슬슬 또 배가 고파져서 초당 순두부 마을로 향했건만. 유명 관광지인 데다가 날이 날인만큼 어떤 가게든 만석이었다. 한 끼 정도 걸러도 괜찮겠지, 생각하고 떠나려는데 ‘스페인 식당’이 눈에 띈다. 바다, 강릉, 스페인까지 어쩌면 이곳이 완벽한 여행의 정점이 되겠다 싶어 내부로 향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초당 순두부를 못 먹게 된 명소 패배자에게 신이 내린 은총, 스페인 요리! 정갈하고 정성스러운 식사를 훌륭하게 마치고 요즘 강릉에서 핫하다는 흑임자 라테를 접선하러 총총.
PM 2:30 툇마루
하지만 이미 운은 스페인 식당에 모두 쏟았던 걸까. 흑임자 라테 가게에 도착했지만 앞으로 네 시간 오십 분을 대기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 물론 다른 곳을 둘러보다가 와도 되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게 좋겠다 싶어 이번에도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PM 3:00 경포호
내가 속초 여행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바다와 두 개의 호수를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 특히나 내가 했던 모든 여행에서 ‘공원 산책’이 늘 빠지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이번 경포호는 당연한 코스였다.
강릉 경포호에는 소나무 숲이 있어 한층 멋을 더했다. 고즈넉한 풍경에 잠이 쏟아졌지만 무더운 날씨에 금방 산책을 마쳤다.
PM 4:00 안목해변
안목해변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공영 주차장을 다섯 바퀴나 돌았지만 주차 자리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하지만 그냥 돌아가긴 아쉬워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다를 마주한 카페에 착석.
이 밀크티 한잔으로 안목해변에 굳이 찾아온 이유를 발견했다. 신선한 차 내음이 가득 풍기는 밀크티란. 절대 잊을 수 없는 것.
카페에서 나와 광합성. 트윈룩을 입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서로의 모습을 담아주느라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 커플들. 사춘기가 온 딸의 짜증을 달래느라 난감한 표정을 감출 수 없는 어느 부부까지. 모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PM 5:30 집으로
짧은 강릉 당일치기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겹겹이 쌓인 산세가 노을과 어우러진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졸음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진면목을 발견한 뜻밖의, 최고의 여름이었다. 내가 너무 완벽한 요가인 차림을 하고 있어서, 혼자서 너무 밥을 씩씩하게 잘 먹어서 누군가에게도 내가 기억에 남았겠지. 우리는 스치기만 해도 그렇게 서로의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