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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례 Aug 07. 2017

한 강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리뷰

<채식주의자> 한강의 산문집을 읽고

같은 책을 읽고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서로에게 유익할만한 책을 권유하는 건 참 멋진일이다. 나는 한 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그의 문체와 상상력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그의 시집을 읽고 난 후 가장 좋아하는 여자 작가를 한 강이라고 소개했다. 
한 강의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나의 독서 취향을 잘 아는 동료에게 추천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들을 읽으며 굉장한 감동을 받았기에 이 책 또한 무척 기대됐다. 중고로 주문하고(절판됐다) 빨리 오지 않아 발만 동동. 그래 날이 더우니까 택배가 늦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마음을 다스렸다.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한 강 산문집 소개

이 책은 한강이 첫 장편 소설을 낸 여름, 여행 가방 두 개를 끌고 미국의 한 소도시로 날아가 경험했던 일들을 담은 책이다. 그는 3개월간 아이오와 대학의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주로 제3세계에서 온 시인, 소설과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한달쯤 지인들의 집에 머물며 여행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 책은 창작 프로그램이나 미국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스케치, 혹은 크로키이다. 책장 사이사이에 몇장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나는 이를 통해 무언가 큰 위안을 얻었다. 물론 글씨 크키가 큰 것 또한.  



느낀 점

사실 오늘 출근시간과 15분정도 남아있던 점심시간을 활용해 다 읽었다. 책이 가볍고 글씨도 커서, 또 내용자체가 무겁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여러번 읽고 같은 글자를 마음에 꼬박 새겨넣고 싶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몇, 한 강이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서 만난 사람들은 국적도 외모도 성향도 제각기이다. 하지만  그의 본질이 맞거나 틀리다는 기준에 의해 당락되지 않고 그저 그 자체로 소재이자 주제가 되는 이책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진부하지만 책은 늘 내게 주어진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니까. 나는 다시 삶에 진부함을 느낄지라도 다시 책은 나를 환기시킬테니까. 책을 읽으면 그 책을 다 읽는동안 그 작가의 감성이 내게 그대로 옮겨져 온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종일 관심없던 것들을 주위깊게 살펴봤다. 예를 들면 매일 지나치는 작등 식당 이름이 한강이었다.

내가 잊을 뻔했던, 잊었던, 그러나 여전히 머물렀던, 혹은 지나가버린 것, 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을 다시 되돌아 본 날. 아 너무 좋다 - 



사랑하는 몇몇 구절들

그중 내 마음에 가장 들었던 한편을 번역해 그에게 읽어주자 그는 한국어의 발음이 아름답고 "다, 다, 다"하고 저절로 각운이 생겨 시적이라며 무척 기뻐했다. -p.46-
"아니지. 그렇지 않아." 그의 음성은 숙연했다.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럽지.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p.70-
그리운 내 친구, 은발의 로맨티스트. 그는 다시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사랑을 찾았을지. 사랑을 둘러싼 것들의 고통 대신 사랑 그 자체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지. 그의 아름다운 마리아는 아직도 그의 어두운 기억 한편을 쓸쓸히 어루만져주고 있을지. -p.71-
이따금 생각난다. 그의 통글통글한 악센트. 소년처럼 작고 마른 체구. 못생긴 얼굴. 파리하게 쑥 들어간, 그러나 장난기 가득한 눈. 도무지 상대를 웃기지 않고는 한시도 못 배기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이어가던 농담들. 그 쾌활한 성격 뒤에 숨은 -그의 소설에 배음으로 깔려있는 -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대한 담담한 응시. -p.79-
그런가 보았다. 우리는 좀더 쾌적한 집과 좀더 많은 수입, 좀더 나은 생활을 동경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는가 보았다. 정말 귀중한 것은 값나가고 어려운 것들이 아니라, 숨쉬는 공기와도 같았던 것들, 가장 단순하고 값나가지 않는 것들, 평화, 우정, 따뜻함 같은 것들이었나 보았다. -p.138-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기쁨보다 벅찬 결연함 때문에 내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p.146-
내버려둔다. 새벽 안개가 습한 땅으로 내려앉듯이, 차창 밖으로 풍경들이 조용히 멀어지듯이, 내버려둔다. 애써 돌이킬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것들, 결코 완전히 펼쳐 보일 수 없는 것들...... 그 색채, 소리, 시간의 질감, 숱한 감정들, 조용히, 한없이 조용히 사라져가는 것들을.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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