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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례 Aug 18. 2017

관계에 대한 또다른 시선, 장자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뷰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강신주 지음/그린비 펴냄-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책소개

이 책은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우화들을 인용하며 '차이'와 '소통', '연대' 등에 대한 장자의 정치철학적 실천 개념을 설명한다. 당시 장자는 춘추전국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타자와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던 제자백가들과는 전혀 다른 사유 태도이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후기

그러니까 시작은 A양이 최근 겪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면서부터다. A양은 성격도 좋고 정도 많고 의리꾼이라 인간관계에 별다른 피곤함을 느끼지 않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웬걸. 관계 문제로 며칠밤을 지새웠단다.  
요약하면 싸운 것은 아니고 유난히 까탈스러운 친구의 일방적인 행동들 때문에 지친 것이다. A양의 고충을 들으면서 나는 의아했다. '그걸 지금까지 참아왔다고? 도대체 왜?'

A양과 함께 B양의 욕을 실컷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두가지를 생각했다.
1. A양은 나와 정반대의 인간이다
2. 내 지인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나는 내 기준에서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타인에 대해 조금의 미련도 없이 뒤돌아서는 편이다. 그래서 A양과 나를 반반 섞으면 정이 많으면서도 이성적인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겠다는 쓸데없는 상상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찝찝했던 이유는 B양에게서 나를 봤기 때문이다. 어쩐지.. 유난히 흥분하더라. 타인한테 자신의 단점이 발견되면 특히나 더욱 미워하게 된다더니.

어쨌든 꼭 그럴필요도 없고 주제도 되지 않지만 A양의 고민을  속시원하게 해결해주지 못했던게 마음에 걸려 고민하던 찰나에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구? 나는 예수님 다음으로 공자를 믿는다고 떠드는 공자덕후가 됐다. 공자가 천국은 못보내줘도 연옥까진 가능할걸?


道行之而成(도행지이성)


장자의 정신을 요약하자면 "도는 걸어가야 이루어진다"가 아닐까. 장자에게 도란 어떤 일정한 목표지점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스스로 길을 가며 발견하고 만들어낸다는 것이기에 조금 특별하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는 관계에 대해서도 일단 직접 부딪혀봐야하는, 부딪혀야만하는 것으로 제시한다. 아무리 우리가 매번 타자 앞에서 절망한다한들 타자와 마주쳐야만 무의식적으로 따라온 자신의 삶의 규칙 등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풀자면 타자를 마주할때 그것이 비교가 됐든 차이가 됐든 비로소 내가 누군지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타자를 발견한다는 것은 자신의 선입견이 좌절되는 경험이고 이때 비로소 타자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마주함, 그 다음 스텝은 타자라는 물속에 나를 밀어내 그 물길에 몸을 맡기는 것. 내가 지닌 성심이 아닌 전혀 이질적인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 과정에 대해 '굳이'라는 태도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희생이 아니다. 이때 나라는 존재는 자신의 성심을 결코 잃지않고 오히려 새로운 성심을 구상해가는 창조자로 바로 서게 되기에.


心齋(심재)


심재란 마음의 비움이나 망각을 가리키는 수양론의 일종이다. 쇼핑할 때 카트룰 채우는 건 금방이지만 덜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처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에 특히나 마음이 약하다. 어쩌면 그것을 존재의 이유로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장자가 '관계'를 말하면서 '비움'을 설명하는 그 사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나라는 존재로 타자와 서야하는데 나를 비워낸다면 아무리 타자와 마주한들 그것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자가 제시한 속이 텅빈 피리 비유가 그 궁금증을 풀어줬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텅빈 피리에 비유하며 비움은 타인을 만나는 가장 기본의 자세라고 설명했다. 따지고보면 나를 비운다는 것은 나라는 악기가 깨끗하고 좋은 울림통을 갖게 된다는 뜻이고 이는 곧 최상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다.


리뷰를 마무리하며


얼마전 알쓸신잡에서 만일 신라시대의 사람과 마주하게 된다 하더라도 문화적인 차이때문에 대화가 잠시 어려울지는 몰라도 3~4시간 후면 얼마든지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을 십분 이해했다. 장자의 사유를 읽다보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그리고 나 개인의 문제와 하나하나 맞닿아있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나는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도 관계에 대해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관계란 타인이 아닌 그를 바라보고 대하는 나에게 달렸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 더 보태자면 '지금까지 끼친 민폐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더이상은 민폐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삶의 의미까지 얻었으니 내가 이 책을 몇번씩 권유해도 이해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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