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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례 Nov 03. 2017

절친이 생각나는 시간

요시모토 바나나의 <데이지의 인생> 리뷰

들으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가깝게 지내는 오빠가 나를 타인에게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밝은 친구예요. 정말 정말 밝아요." 내 성격이 밝다니. 이 오빠라는 사람은 '정말'이라는 말을 반복하기를 좋아하거나 나를 아직 잘 모르는가보다 생각했다. 이후로도 그런 낯선 일이 반복되서 일어났다. 나에 대해 애교가 많다든지 싹싹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는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곱씹어 보았다. 나의 가정환경, 내가 자라온 과정, 내게 벌어졌던 크고 작은 일들. 물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온 나였지만 사실 남들이 굳이 겪지 않았어도 될 여러 일들도 여러번 있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딱하게 여기며 혀를 차기도 했다. 내 성격도 한몫했다. 불같고 예민한 모습은 아직도 여전하다.

과거를 돌아봐도, 현재의 나를 직시해도 '정말 정말'이라는 수식어구가 붙을만큼의 획기적인 일은 내게 없었다. 그러다 문득 무릎을 쳤다. 내겐 내가 가진 것에 비해 분에 넘치는 친구들이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데이지의 인생>은 주인공 데이지와 소꿉동무 달리아와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특이한 점은 이책은 거의 끝을 향해 갈때서야 달리아의 근황을 서술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스물 다섯 데이지의 불우한 가정 환경,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를 겪은 후 외롭게 지내온 데이지의 이야기, 독립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데이지와 달리아는 13살 때 헤어진 후 서로 전혀 다른 곳에서 서로의 근황도 모른 체 지내왔다. 달리아가 부모님을 따라 멀리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데이지는 달리아를 그리워한다. 어린 아이가 받아드리기 힘든 죽음과 적막이 데이지를 덮칠 때 피리를 불면 곧장 친구 달리아가 그녀를 찾아왔다. 이 기억은 스물 다섯 데이지에게 생생하게 다가와 그녀를 다독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데이지는 달리아의 부모로부터 그녀가 불의의 사고로 이제 더 먼, 닿을 수 없는 곳에 가버리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또한 이십대 초반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장 친한 친구를 둘씩이나 잃었기에 이 대목에선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데이지가 심상치 않은 꿈을 꾸는 내내 달리아를 걱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이내 그녀의 꿈이 달리아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길 바래왔으니까. 이미 엄마의 죽음을 목도했던 데이지에겐 또 다른 상실이었을 것이다.

데이지는 한동안 묵직한 중압감을 느낀다. 친구 달리아와 다시 만나 맛있는 야끼소바를 함께 나눠먹게 될 것이라 상상하곤 했는데 이제는 더이상 그럴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지도, 나도 알고 있다. 내게 적어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이라는 걸. 죽음도 나의 아픔을 다독여줬던 존재를 쉽게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걸. 절친이 생각나는 밤. 나는 나만 열어볼 수 있는 상자를 뒤적거렸다. 그안에 나를 수도없이 받아줬던 누군가가 있어서 나는 정말 정말 행복했다. 데이지의 인생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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