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출간된 알랭 드 보통의 장편소설
알랭 드 보통이 『키스 앤 텔』 이후 21년 만에 장편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행나무, 2016)을 발표했다. 전작들이 두 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사랑의 딜레마를 그렸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결혼이라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사랑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까. 에든버러 평범한 커플의 이야기로 대신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로맨스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사람들은 언제나 진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을 꿈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는 소설, 드라마, 영화 속 허구의 인물들을 마주할 때면 현실과는 너무 다른 풍경에 어쩐지 더 슬퍼진다.
여타 소설들이 ‘결혼’을 영원한 사랑의 마침표로 대신하는 것과 다르게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결혼을 시작점으로 사용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라비와 커스틴의 만남은 여느 연인들처럼 운명적이고 강렬했지만 결혼 그 후 생각하지도 못했던 고통이 그들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한다. 결혼 후 섹스에서 이전 같은 스릴을 느낄 수 없고, 자신의 생활 습관을 서로에게 강요하거나 당한다. 자투리 시간이면 아이들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해야 하는 등 좀처럼 자신만의 시간을 주장할 수 없다.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인 연애 후 일상을 마주한 두 남녀의 심리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불안, 두려움, 취약함 등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낱낱이 드러낸다.
이 책은 두 주인공의 치열한 러브스토리 중간 중간에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지적 위트와 섬세한 통찰력이 담긴 에세이를 더했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을 심도 있게 다루는 동시에 영원을 약속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어려움이 사랑과 결혼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서 비롯됐음을 꼬집는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사랑이나 결혼에 대해 특별한 깨달음을 선사하지 않는다. 우리의 자아와 무척 닮은 이야기는 연인 간에 서로를 괴롭힌 이유, 즉 상대에게 바라기만 했던 자신의 연약한 내면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또 우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결혼이라는 범주 안에서 함께 현실을 헤쳐나가 진짜 낭만을 만날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는다.
몸도 마음도 얼어붙은 이 겨울, 차를 마시듯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천천히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