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온도, 제주 ℃

'사랑'을 찾아 떠난 제주 여행

by 김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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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야 가족, 친구 연인들과 함께 떠나기 좋은 여행지로 손꼽히지만 1970년대에만 해도 제주도는 상위 20%의 부유층만 갈 수 있던 곳이었다. 높은 건물이 없어 드넓은 하늘을 원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제주도. 하지만 나는 제주도보단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사람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그 정도 맛집과 카페는 이미 서울에도 많기 때문이다.


겨우 2박 3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제주도를 사랑하게 됐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주도를 더 알아가고 싶어 졌다. 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제주도를 몰라도 한참 몰랐다. 겉모습만 보고 사랑에 빠질 수 없듯 사랑이란 그 내면을 알아갈수록 깊어지는 것이기에 사람들이 ‘제주 살이’를 자처하나 보다.


과거에도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흔적을 따라가 봤다. 바람은 찼지만 분명 따뜻한 사랑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여인네들의 사랑방 와흘 본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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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출생·사망 등을 관장하는 마을 수호신을 본향(本鄕), 이를 모신 신당을 본향당(本鄕堂)이라고 한다.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 자리 잡고 있는 와흘 본향당은 이곳엔 수령 약 400년 된 커다란 팽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곳에 넓은 제장(祭場, 제사를 드리는 곳)을 마련했다. 하로산 또와 서정승 따님 아기 등 남녀 신을 같이 모시되 제단을 따로 마련하는 점이 다른 본향당과 구별된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2009년 화재로 팽나무에 불이 붙어 신당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먼발치에서 나뭇가지에 얽혀 있는 소지를 보며 잠시 상상해봤다. 새벽녘에 와서 흰 천을 품고 글 대신 마음을 담아 나뭇가지에 걸었을 제주 여인들의 깊은 속내를. 굳게 닫힌 출입제한 문구가 야속할 뿐이다.




한눈에 담기지 않는 아름다움, 다랑쉬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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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란 산봉우리, 독립된 산을 일컫는 제주어로 화산섬인 제주도의 생성과정에서 일어난 기생 화산이다. 다랑쉬 오름은 115미터의 거대한 분화구가 파여 있는 것이 특징인데 오름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어 보인다고 해 ‘월랑봉’이라고도 불린다. 정의현 고성리 사람인 효자 홍달한은 1720년 숙종과 1724년 경종이 승하한 국상 때마다 초하룻날과 보름에 다랑쉬 오름에 제단을 마련하고 망곡 하면서 북쪽을 향해 재배했다고 한다. 강요배는 다랑쉬 오름을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경사는 꽤 높은 편이지만 탐방로 시설이 잘 돼 있다. 제주 동부일대와 주변의 아끈다랑쉬오름, 손지 오름, 돝오름, 용눈이오름은 물론 성산일출봉까지 내다보이는 탁 트인 시야가 인상적이다.



제주를 사랑한 사진작가 김영갑의 갤러리 두모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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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악은 한라산의 별칭인데 제주도를 사랑했고 사진을 사랑했던 고(故) 김영갑의 갤러리이다. 2002년에 폐교된 삼달초등학교 분교를 임대해 개조해 이 갤러리를 개관했다. 부여 출신인 그는 제주도에 반해 서울과 제주를 오가다가 1985년에는 제주에 정착했다. 약 20년간 제주도를 소재로 20만여 장의 작품을 남겼다. 오름, 바람, 안개, 빛 등이 담긴 그의 사진은 찰나에 지나치고 마는 순간들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갤러리 정원이 잘 정돈돼 있어서 한껏 제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무인 카페가 마련돼 있어 더욱 넉넉히 둘러보아도 좋을 곳.


시인이 사랑한 숲, 사려니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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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 숲길은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약 15km의 숲길을 일컫는다. 제주도 말로 사려니, 살안이의 ‘살’은 신성한 곳을 뜻한다. 도종환 시인은 그의 시 <사려니 숲길>에서 이곳을 ‘신역(神域)’으로 표현했다. 과연 신성한 곳이라 불릴 만큼 짙고 고요하며 아름답다.

주변에는 물찻오름, 말찻오름, 괴평이 오름, 마은이 오름 등과 천미천 계곡, 서중 천계 곡 등이 분포해 있으며 산책 중에 까마귀를 흔히 볼 수 있다. 유난히 굵고 풍성한 나무들이 눈에 띄고 사이사이에 키 작은 관목들도 무성하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이름 그대로 ‘사랑’ 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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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공설시장 내에 자리 잡은 사랑 분식은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이곳은 달짝지근한 떡볶이에 김밥을 넣어주는 ‘사랑식’이 대표 메뉴이다. 군만두를 함께 시켜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이밖에도 라볶이, 김밥, 만두, 라면, 순대 등의 메뉴가 있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면 되는데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기에 시간이 촉박하다면 포장하는 것도 방법이다. 월요일 휴무일이니 꼭 참고할 것. 공항과 가까워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방문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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