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러, 서울 한복판을 여행하다

정동길 일대 명소를 둘러보며 만난 서울 그리고 가을

by 김유례

참 이상한 일이었다. 거진 30년간 내 생일 전에 눈이 내리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이미 11월 초에 싸라기눈이 내렸고 어제는 잠시 동안이었지만 '첫눈'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펄펄 눈이 내렸다. 좋은 건 늘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이 느껴지는 데다가 실제로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로 가을이라 부를 수 있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물론 다시 돌아오는 겨울을 또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지만 매서운 바람 때문인지 선뜻 외출하기가 겁이 났다. 하지만 더 극심한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가을의 끝을 잡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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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번을 타고 오늘의 목적지인 정동길로 출발. 선유도역에서 서소문까지 한 번에 닿기 때문에 창밖을 구경하며 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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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서기 전, 나는 알아주는 길치이니까 동선 파악은 필수! 이날의 루트는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극장 -정동길 - 중명전- 경희궁 순이었다.




1.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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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랗게 물든 단풍 사이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전시 작품을 보기도 전에 이미 자연과 어우러진 이곳의 아늑한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들고 여유롭게 미술관 근처를 거니는 사람들, 나처럼 큼직한 카메라를 들고 미술관 정원부터 살펴보는 사람들 등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곳에서 가을의 정취를 맛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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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 서소문동에 있는 이 미술관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길에 자리 잡고 있다. 192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옛 대법원 건물을 전면부만 보존하고 신축했다. 평일에 방문한 덕에 늘 사람이 북적이는 주말에 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멋스러운 외관을 좀 더 넉넉히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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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천경자 컬렉션 전시실을 방문해 관람했는데 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화풍을 선보인 작가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천경자 상설전시는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라는 이름으로 최근 몇 년간 미공개됐던 작품 3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작품에 투영하는 그의 그림을 통해 작가를 마주한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2. 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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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는 대한제국 때 고종이 건립한 건물이었다. 근대 공연문화의 요람으로 불리었으나 1914년 화재로 손실되었다. 그리하여 원각사의 복원 이념 아래 1995년에 건립된 것이 정동극장. 미국 대시관 관저와 정동교회 사이에 극장 건물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전통예술,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예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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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공연을 보러 간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정동극장은 대학로에 있는 아르코 예술극장처럼 그냥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이곳에서 본 다양한 공연들에 대한 좋은 추억 때문일 것이다. 1층에 카페가 있어서 테라스에서 가볍게 커피 한잔 마셔도 좋은 곳. 현재는 창작탈춤극 '동동'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3. 정동길

서울에 몇 안 되는 고풍스러운 동네 정동길. 덕수궁부터 정동사거리까지 이어지는 길을 말하는데 가로수길, 망리 단길, 경리단길처럼 북적이지 않고 길이 넓어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산책을 즐기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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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초입인 덕수궁 돌담길에는 나무들이 털실 옷을 입고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예쁜 꽃자수 외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테마로 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4. 중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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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헤이그 밀사 파견과 을사늑약이 이루어진 중명전은 본래 덕수궁을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정비해 가는 과정에서 황실의 서적, 보물 등을 보관할 황제용 서재로 지어진 곳이다. 1905년 11월 일본의 강압 속에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했다. 고종은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선언했고 각계에서 조약 체결 반대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으나 1907년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이어 친일내각을 앞세워 대한제국의 자주권을 잠식하는 여러 조약의 체결을 강행했다. 결국 대한제국은 행정, 사법, 군사권을 장악당해 1910년 일본에 병합됐다. 사실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봤고 직접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슬리퍼를 신고 내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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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 전시실로 각각 덕수궁과 중명전, 을사늑약의 현장, 을사늑약 전후의 대한제국, 대한제국의 특사들 등으로 나뉘어 있다. 특히 끝까지 저항해 자유를 지키려던 특사들의 호소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곳곳에 설명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 넉넉히 시간을 잡고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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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방문한 여중생 말고는 딱히 마주친 사람 없이 한적했다. 유난히 볕이 좋았던 중명전 곳곳을 카메라에 담고 경희궁으로 향했다.




5. 경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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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5대 궁궐 중 하나로 꼽히는 경희궁. 광해군이 정원군의 집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집을 빼앗아 이렇게 궁궐을 지었는데 본래 경덕궁이라는 이름이었으나 영조 때 원종의 시호가 경덕이라 이를 피하려 경희궁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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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궁궐과 서울시내가 한눈에 보여서 더 오래 머물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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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뒹구는 소리가 가장 컸던 경희궁을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조금만 덜 춥고 시간이 더 있었다면 정동공원과 성곡미술관을 둘러봤을 텐데. 다음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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