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지 않아서 좋은 것, 추억

절친들과 함께한 1박 2일간의 태안 여행 이야기

by 김유례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경기도 안양에서 살고 있다. 약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도 참 많이 변했다. 당시엔 공사 중이었던 지하상가는 늘 성업 중이고 도로 곳곳엔 높은 건물이 들어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고 닫는다. 물론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자주 갔던 음식점이나 카페는 모두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번듯한 건물이 새로 들어오긴하지만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했던 가게였을지라도 어느 날 문득 자취를 감췄을 때면 섭섭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내겐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살갑게 지내는 세명의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외국에 있고 또 한 명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쉽게 스케줄을 내기 어려워서 넷이 다 같이 만나는 경우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런데 서른의 마지막을 앞둔 12월, 우리에게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열흘간의 휴가를 얻어 한국에 잠시 들어오게 됐는데 마침 나도 퇴사 후 일주일 정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나머지 친구들도 시간이 된다고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함께 떠나기로 한 여행지는 태안. 인천보단 멀고 전라도보단 가까워 1박 2일 여행지로 적절하다고 판단한 건데 지금 돌아보면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안면도 근처에 숙소를 예약하고 그 밖에 꼭 가봐야 할 명소 한 두 군데와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을 검색했다. 이 어설픈 계획에도 누구 하나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의 반이 실현된 셈이었으니까.

여행 첫날, 고맙게도 한 친구가 차로 우리 한 명 한 명을 데리러 와줬다. 고등학생 때도 늘 자신보다 우리를 먼저 챙기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지난여름에 만나고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난 건데 잘 지냈냐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18살 소녀로 돌아간 듯 한없이 즐겁기만 했다. 웃고 떠들다가 잠시 들린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그곳에서 우리는 고등학생 때처럼 햄버거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태안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2시간여를 달렸을까. 첫 번째 목적지인 신두리 해안 사구에 도착했다.


신두리 해안 사구

해안사구 개방시간: 3월~10월(오전 9시~오후 6시까지)/ 11월~2월(오전 9시~오후 5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신정, 설날, 추석


신두리 해안 사구는 빙하기 이후 약 1만 5000년 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연기념물 제 431호로 지정돼 있다. 우리는 탐방로 진입 전에 있는 신두리 사구 센터에서 두웅습지 형성 과정과 이곳에 서식하는 생물체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물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탁본체험! 크레파스를 살살 문질러 예쁜 꽃들이 드러날 때 친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센터를 빠져나와 해안 사구를 보러 나섰다. 탐방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한 커플을 만나 사진을 찍고 기분 좋게 모래 언덕에 올랐다. 새파란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사막같이 고요한 해안 사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풍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 “행복하다 정말.”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감탄사였다.


근처 신두리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땐 꼭 우리 네 명뿐이었다. 하얀 거품이 몰려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푹푹 꺼지는 모래 위를 마음껏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떠들고 나자 금세 허기가 느껴졌다. 드디어 태안의 명물로 불리는 게국지를 맛볼 차례였다.



게국지는 충청남도의 향토 음식으로, 김치의 일종이다. 손질한 게를 겉절이 김치와 함께 끓여 내는 음식인데 처음엔 싱거웠지만 푹 끓이고 나니 특유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우러났다. 이밖에 게장과 새우장도 맛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편안하게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옆 마트에서 장을 봤다. 각종 과자와 라면은 물론 막걸리, 맥주, 와인 등을 바구니에 한껏 담고나서야 쇼핑이 끝났다.

두 손 묵직하게 들고 드디어 예약한 펜션에 도착했다. 화장실은 좁고 벽 틈 사이로 찬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왔다. 흔한 침대도 소파도 없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얼마나 멋진 공간에 왔는지보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했던 탓일 것이라. 마음과 달리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음을 실감하며 별다른 계획 없이 뜨끈한 온돌방에 제멋대로 누워 수다를 떨었다. 그동안 쉽게 풀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을 만끽했다. 나를 그저 나로 봐주고 받아들이는 이들과 함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알람도 맞추지 않고 푹 잤다. 친구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펜션 밖으로 나가보았다. 밤에 도착했을 땐 몰랐던 상쾌한 풍경이었다. 이후 씻고 방을 정리하고 나와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식성 좋은 우리는 칼국수, 수육, 만두를 깨끗이 비우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차가 막힐 것을 대비해 바로 떠날까 했지만 그냥 서울로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근처 꽃지 해수욕장에서 태안 8경 중 하나라는 할미 할아비 바위를 보고 근처 카페에 가서 또다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혈액형도 각자 다르고 성향도 달라서 여행 중 싸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우리에겐 그럴 시간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린 아무 말도 없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노래들만 차 안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앨범에 쌓인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어제 일인데 몇 해 전 일인 양 아득해졌다. 친구들과 함께한 사진 속 나는 인위적으로 웃지 않았다. 편안하고 여유 있는 미소에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는 또 일 년이 지나서야 다 같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 우리를 둘러싼 크고 작은 것들이 변하고 사라질지라도 그 마디마디에 여전히 서로가 생생하게 남아있을 것이기에 아쉬운 마음은 넣어두기로 했다. 세련되진 않아도 아무 조건 없이 받은 격려와 위로로 충분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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