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브로맨스 - 연암과 백탑파밴드부의 요절복통 청춘수업


브로맨스의 원조는 서양이 아닌, 연암과 백탑파 친구들이었다.



“이것이 조선식 우정이다”


우정의 달인, 연암과 그의 친구들에게서 배우는 요절복통 깔깔! 청춘수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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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이 넘쳐나는 요즘 18세기 조선 시대에


일찌감치 독자적인 길을 선택한 연암 박지원과 백탑파 친구들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다. 삼포시대 혹은 팔포시대라 하여 젊은 사람들이 갈 곳이 없는 세상.



학교를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


그러다 보니 집 장만하고 결혼하고 이런 것은 꿈도 못 꾸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노론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양반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밥 먹고 살려면


이 길 밖에 없었던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연암 박지원과 그의 친구들!



그저 방구석에 앉아 놀았을 뿐인데 후인들은 우리가 한 일을 ‘북학’이라고 부른다지? 깔깔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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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길을 갈 수 없다면 자신의 길을 만들었던 연암과 그의 친구들에게,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기 위해 배워야 할 3가지, 관계-우정-공동체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가 말하는 조선식 브로맨스는 어떤 것인가. 연암 혼자였다면 후인들에게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이름을 남기진 못했을 것이다.


함께였기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었고, 중간에 포기 하지 않을 수 있었고,


북학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에까지 학문이 전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배경엔 그들이 나누었던 브로~~맨스가 빠질 수 없다. yo, bro, 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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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은 30대 초반 무렵 백탑 부근(현재 종로에 있는 파고다 공원 내부에는


아직도 백탑이 유리관에 보존되어있다.)으로 이사 왔다.


인근에 훗날 친구 이덕무, 이서구, 유득공, 유금, 서상수 등이 살고 있었다.


양반, 서얼까지 뒤 섞여있지만 신분의 구별 따윈 그들에게 중요치 않았다.


각자가 한 분야의 전문가 이상의 수준을 겸비했던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연암의 집에 찾아와 함께 밥을 먹고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고 소풍가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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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참말로 신기하지! 그


들은 열심히 놀고 공부하고 또 글을 썼다. 그리고 현재에도 영향을 줄 만큼의 문화를 기획해냈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울 때는 더 나은 길을 찾아 외부로 눈을 돌리곤 한다.


연암과 벗들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외려 세계관을 더 넓힐 수 있었다.


몸으로 움직일 수 없을 때는 생각이라도 자유로워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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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브로맨스가 궁금하다면,


이것이 조선브로맨스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침이 되어줄 도서입니다.


https://www.bookk.co.kr/book/view/107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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