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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대학다니기

독일에서 대학을 다녔을 적의 이야기 이다. 독일의 수업은 강의를 듣는 수업과 토론을 하는 한 과목이 두 가지의 코스로 나뉘어져 있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출석을 하지 않아도 점수에는 영향이 없지만 나 같은 생 초짜 이제 막 랭귀지 코스나 겨우 마친 학생들은 수업을 듣는 것은커녕 무슨 내용인지 따라가는 것조차 헤매는 것이 다반사였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수업을 받을 때는 부지런히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 듣고 받아 적고 외우면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곳 유럽 아이들은 되도 안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잘도 말했다. 처음에는 “이야, 이야” 감탄하며 들었는데 나중에는 그들의 생활인듯한 시니컬함에 좀 질려버렸다.


이 모든 과정들 중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공교롭게도 수업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 우리나라나 미국의 교정은 널찍한 캠퍼스와 잔디밭이 펼쳐진 낭만적인 공간이지만 내가 다니던 함부르크 대학은 도시에 듬성듬성 캠퍼스가 흩어져 있고 회색빛 우중충 건물이 바로 내가 수업을 듣던 곳이었다. 이 곳에서 해마다 한명씩 꼭 떨어져서 자살을 한다는데 과연 그렇게 생기기도 했었다. 지나다 보면 건물 앞에 사람이 누운 모양의 하얀 색 페인트칠이 되어있는 그림도 있곤 한데 그것이 아마 사람이 떨어져서 죽었다는 그자리가 아닌가 싶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날씨를 보면 왜 자살을 하는지도 이해가 갈 법도 했다.


아 그렇지, 쉬는 시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지.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먹거나, 도서관을 향하거나, 술을 한판 땡기거나,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DDR 이라는 게 유행했다. 하지만 이 곳 독일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다들 어디로 사라지는 지 멀뚱멀뚱 앉아있기가 참 그랬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해가 날라치면 그 조그만 캠퍼스에 커플들이 엉겨붙어 저리쪽쪽 이리쪽쪽 이제 갓 20살을 넘은 나로서는 참으로 민망한 풍경에 옆에 앉아있기가 어째 좀 거북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부러웠을 수도 있다. 헤헤헤. 옆에 있는 스페인에서 왔다는 친구는 자기네 나라는 이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 한 가지 놀란 점은 깨끗하다는 독일에 어찌 거리 길바닥에 개똥과 담배꽁초가 많은지 그것 또한 의문이었다. 여기서는 담배 값이 비싸 학생들은 집에서 담배를 만들어 핀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쨌든, 담배 없이는 못 사는 유학 온 한국 오빠야들은 무리지어 담배 피는게 유일한 즐거움인데 평소에는 아는 척도 안하는 독일 학생들이 희한하게 담배만 피면 어디선가 나타나 Haben Sie Feur? (불있어?) 라고 물으며 담배를 청했다. 나중에 이들 오빠는 저 멀리 도망가서 뻐끔 뻐끔 담배 피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흠...그러고 보니 즐거움이라고는 없었던 것 같이 묘사가 되어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 특별할 것도 없는 사람이라 별 특별한 일도 없었다. 아! 맞다. 많은 한국 학생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한 가지가 외국인들이 동양여자들을 신비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 겪은 바에 의하면 실상 전혀 아니올시다. 생각해 보아라 당신이 지금 20세이고 힘이 넘치는 살랑거리는 금발머리의 독일 남성이다. 키 160도 채 안 되는 어버어버 거리는 한국여자가 좋겠는가? 쭉쭉 빵빵 갈색머리 독일여자가 좋겠는가?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 함께 보내는 것은 오케이이다. 물론 인기 있는 동양여자들도 있다. 그것은 일본여자와 예쁜 한국여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예쁜 아이들 그곳에서도 통할까 싶었는데 ‘미’ 라는 것이 주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그곳에서 알게되었다. 동서양이나 ‘미’는 객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나라마다 선호도는 있었다. 눈이 찢어졌지만 섹쉬하게 생긴 미선이는 독일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긴 속눈썹에 터키 사람처럼 생긴 정선이는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들 기숙사 방에 놀러 갈라 치면 늘 쪽지가 한무디기 씩 나왔다.


‘정선! 오늘 밤은 나와 함께 오페라의 유령 보러가지 않을래?’


‘정선, 나와 함께 카약 타러 가지 않을래?’


요것은 아프리카 학생들의 방식있었고 독일 학생들은 기숙사 부엌이나 복도를 지나칠 때 마주치면 직접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했다. 물론 나한테는 한 번도 없었지만..


그러면 나와 다른 유학생들은 이렇게 웃었다.


“으흐흐흐흐 정선아 양껏 좋겠다. 우리 숙제도 야들한테 좀 해달라고 하면 안돼?”


그럴 때면 정선이 싫다고 해놓고선 지 혼자 숙제 맡겨놓고 우리 건 안 봐주고..쳇!


나같이 쪼끄맣고 말도 어버어버 하는 부류가 통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주로 40대나 50 대쯤 된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은 지식계층이나 아니면 독일여자들이 상대해 주지 않는 못생긴(미안합니다. ^^;) 이혼한 혹은 혼자 사는 독일 아저씨였다. 갑자기 다가와서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배 툭 튀어나온 독일아저씨는 십중팔구 이렇게 물었다.


“몇 살이니? 여기 여행 왔니? 나 여기서 계속 일하는 데 조금 있다 올 생각 없어?”


혹은 


“전화번호 가르쳐 달라. 나는 너 같은 검정 머리 좋아한다.”


이제는 내가 아는 친구 녀석 이야기를 하나 한다. 이름은 아이린. 그녀는 아빠는 터키인이고 엄마는 독일인인 아이인데 그렇긴 해도 완전히 백인처럼 생겨서 말하기 전에는 혼혈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녀석은 잘 있다가 밤만 되면 사라지곤 해서 도대체 어디 가는지 한 집에 사는 기숙사 사람들과 한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


독일어를 잘 못하는 탓에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지 못한, 특히 밤 문화에는 특히나 약한 우리 기숙사 아이들은 잔뜩 기대를 하며 그녀를 쪼로로 따라갔다. 하이델베르크(방학 때 놀러갔다.) 밤거리를 약 30분정도 걸었을까 독일에서는 드물게 번쩍번쩍 밝은 빛의 술집이 보였다. 그 곳에는 낮에는 그리도 보이지 않던 젊은 애들이 그짝에 다 모인 듯 했다. 6명 정도 되는 동양아이들이 술집에 동시에 들어가자 남의 일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독일 애들이 일제히 쳐다봤다.


우리들은 두려움에 떨며 아이린의 지시만 기다렸는데 이 놈의 가시내 갑자기 싹 사라지는 거다. 화장도 안하고 옷도 수수하게 입고 나와 우리는 그저 동네 밤마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남자 헌팅하러 온 것이었다. 아이린은 남자들이 우굴우굴되는 곳에 턱 앉아서는 추파의 눈빛을 마구마구 보내며 그날은 하루 종일

기숙사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다들 어렸던 터라 겁을 집어 먹고 냅다 뛰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유 로이 맥주도 한잔 하고 농담도 하면서 친구도 사겨볼 것을 그때는 모두 얼굴이 시뻘개져서 다시 기숙사로 와서 우리끼리 조촐한 파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사실 기숙사에서 보는 독일 학생들은 대부분 수줍음 많고, 예의바른 아이들이었다. 처음에는 정도 없고 무뚝뚝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부끄럼 때문이지 먼저 말을 거면 또 친절하게 대꾸하고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하는 착한 사람들이다. 그 나라를 가보기 전에는 나도 모르게 어떤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기 마련이다. 물론 나라별 특성을 있지만 어딜 가나 사람들은 매 한가지. 독일 사람들도 친절하고 잘 웃고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또 순수하고 착하고 남 속일 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내 안 좋은 일도 있었고 피부병 때문에 고생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오해와 미워하는 감정은 “무지”에서 생긴다는 것을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알게 되었다.


-> 이 사진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독일에 살던 때 스페인 친구네 집에 간 적이 있다. (스페인 바야돌리드) 갔던 날이 마침 축제일이었다. 그래서 수 많은 그의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 그룹에서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미남이 있었으니.....내 눈엔 꽃미남이었는데 왠걸 별로 인기가 없었다.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꽃미남 보다는 근육질에 남자답게 생긴 남자를 선호했었다. 워쨌든 약간 수줍음 타면서 금발 파란눈의 (별명만 기억난다 - 산초) 제일 왼쪽에서 두번째 남자애인 산초한테 관심 있어서 얘랑 어떻게든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용기를 내어 겨우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순간 우리 그룹에 속했던 모든 애덜이 와서 (짜식들 낸 맴도 모르고) 이렇게 단체 사진이 되어버렸다다다다다다. 얘네들 진짜 내가 산초한테 관심있었던 거 몰랐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그립고 즐거웠던 축제일이 추억이다. 단 하루만 참여했음에도 너무너무 즐겁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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