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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다: 추사에게 삶을묻다


추사, 유배를 말하다



선생님, 첫 만남부터 약한 소릴 하는 것 같아 이런 질문 드리기가 뭣하지만, 그래도 하겠습니다. 여쭤보고 싶었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저만 세상 흐름에 뒤처지는 것 같고 자신감도 사라집니다. 이제껏 산 세월들이 빈 껍데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선생은 어떠셨나요? 유배지에 내쳐졌을 때 죽고 싶으셨을 것 같은데,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뎠는지 전 정말 알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은 나도 들었지. 홀로 대정에 위리안치 되었을 때의 심정은 말로는 못하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유배를 왔고 해배될 기약도 없이 제주에 살아야 했는걸. 처음에는 답답하고 불안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막막했었다. 정치적 생명도 학문적 생명도 끝난 나는, 인간으로도 끝이라고 생각했다. 넋 놓고 얼마간을 지냈었네.



그런데 신기하지, 사람의 몸이라는 것이 내가 반복적으로 해 온 행동을 기억하더구나. 의식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무의식이 절로 다시 붓을 잡게 만들고 글씨를 쓰게 만들었지. 손이 움직이고 글을 쓰고 싶어 하니 글을 썼지. 글씨를 쓰려고 먹을 갈고 종이를 구하고 그런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감정의 동요는 사라지고 정신차려보니 예전처럼 글씨를 쓰고 있더군.



그렇지만, 현실은 깜깜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야 무슨 살아갈 힘을 얻겠습니까?






그렇지. 달라질 수 있었던 계기는 아무래도 세한도가 아니었나 싶네. 세한도를 그리고 나서 마음속에 어떤 자각이 일었다. 예술가 소명을 가진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역할이 있을 것이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지.



모든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지.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는 순전히 개인의 자유인데, 고통이 오면 회피하고 퇴보하는 방식으로 다룰 수도 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극복해낼 수도 있다. 나는 내게 주어진 도구인 시, 서, 화를 통해 개인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해내는 삶을 살아 내는 게 인생의 과제였단 걸 훗날 알게 되었네.




추사의 대정유배지에서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지. 알게 모르게 우리는 우주로부터 오는 정보를 받아서 지상에 없던 것들을 내어놓을 수 있게 된단다. 하지만 그저 오는 것이 아니며 항상 ‘진인사대천명’을 할 때 가능한 것이란다.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에 일에 집중할 때 삶의 진리, 새로운 발명, 사상 같은 것을 꿈이라는 형태로 혹은 영감이라는 형태로 받을 수 있네.



중략......



그것 아는가? 세상의 흐름에 순항하면서 깨달아지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세상의 흐름과는 별개로 나의 길을 깊이 추구하면서 나아가는 길도 있네. 인간이라면 태어나 누구나 겪는 것이 생로병사 아니겠는가. 젊고 건강할 때에는 인간은 늙고 병든다는 사실이 와 닿지 않지만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 인간 또한 늙고 병드는 때가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학문이건 기술이건 예술이건 나의 길을 나아가기 위해 삼은 도구들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서 사람은 한번 쯤 스스로에게 깊이 침잠하는 시간이 필요하네. 세상의 흐름과 떨어져서 혼자만의 시간 속에 깊이 침잠해 본다면 그 과정에서 나에 의해 가능한 길을 만나고 이를 통해 나의 본모습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다른 이도 아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타인과는 구별되는 나의 개성을 가진 존재이다. 사람이란 사람이라는 이름 하의 공통점도 있지만 비슷해도 같은 것은 없듯이 나만의 길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71세과중작, 돌아가시기 전 3일전에 쓰셨다는 판전




출처, 김작가의 신간: 조선의 별, 추사 김정희 <부제: 추사에게 삶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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