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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이산, 독살설 진실은 어디까지


#정조이산 #독살설 #정조이산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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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의 아름다운 모습, 작가 직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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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이산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선후기 제대로 개혁의지를 품고 재위 전반에 걸쳐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했던 그, 하지만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고 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독살된 것은 아닌가, 여러 설이 난무합니다. 그의 독살설을 전제로 많은 영화, 책 드라마등이 나오기도 했어요. 독살되었다는 근거로는 연훈방이라는 치료를 많이 받아서 수은중독이라는 설이 있고 또 다른 근거로는 정조이산이 죽고나서, 노론의 영수는 정순왕후가 됩니다. 실질적인 막후 책임자였죠. 정순왕후가 막후 책임자가 되면서 정조이산이 치세기간 동안 펼쳤던 정책을 정확히 다 과거로 되돌려 놓고 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독살설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는데요.....



정조이산은 돌아가시기 전, 오회연교를 내립니다.


내용은 1800년(정조 24) 5월 그믐날에 정조가 연석에서 내린 하교. 오회연교(五晦筵敎)는 정조가 1800년(정조 24) 5월 그믐날에 경연 석상에서 내린 명령이다. 이때 정조는 신하들에게 영조대 이후 주요 시기마다 있었던 정치 의리의 의미 및 변화상을 설명한 후, 당파의 사적(私的) 의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군주에게 맞서는 일부 신료들을 향하여 경고하며 군주가 천명하는 정당한 의리에 적극 호응하라고 촉구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제는 당파를 떠나 개혁에 동참해라. 더 이상은 나도 참아주지 않겠다라는 내용의 연교인데, 이 연교를 내리고 얼마 안 되어 병석에 눕습니다. 원인은 가슴에 난 종기. 조선 왕들이 의외로 종기로 죽은 사람들이 있어요. 정조이산이 가슴에 종기가 많았던 이유는 화병 때문에 가슴에 화기가 올라 종기가 났다고 해요. 그런데 그 치료과정이 의심할 부분이 많아서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죠.



실록에 보면 정조이산이 돌아가신 날, 서리가 내려 작물이 하얗게 변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조이산에게 처방했던 약들은 경옥고, 연훈방 등, 몸 안에 화기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화기운을 더욱 돋우는 그러한 치료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연훈방은 수은을 피부에 쬐서 종기를 없애는 치료법인데, 역시 좋지 않은 치료법이죠.



저는, 이런 치료법들이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은 맞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정순왕후의 방문 이후, 바로 돌아가셨다고 전해지는데 그 정순왕후가 정조이산이 돌아간 후 한 행적을 보면, 그녀가 무언가 결정적인 행위를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왕의 처소에 아무리 대왕대비라 해도 독대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은 남녀구별이 엄격한 나라입니다. 대비라고 해도, 독대는 할 수 없습니다. 정순왕후가 마지막에 정조의 처소에 들어가려고 하자, 많은 신하들이 말렸지만 그래도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혼미한 정신에 기절한 정조이산의 처소에 정순왕후가 혼자서 들어갔고, 그 후 몇 분 후 숨이 끊어졌다는 기록을 보아....아무래도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는데. 뇌피셜입니다.



추천하고픈 책은 이덕일씨의 '조선왕 독살사건'과 '사도세자가 꿈꾼나라' 입니다.



조선역사를 살펴보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신하중심의 나라지, 왕의 중심의 나라는 아닙니다.


그래서 조선 초기에는 왕권이 높지만 외척이 정치무대에 등장하고, 사림이 등장하고 그러면서 왕이 왕 마음대로 못하는 그런 문치가 실행되지요. 서양의 군주와 우리나라의 군주가 다른 점이 있다면 서양의 군주는 일종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서 force 에 의한 정치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점점 문치제도를


체계적으로 들여오면서 물론 겉으로는 뚜렷한 신분제도가 있지만 그래도 실력에 의해 시험으로 관리가 되는


제도가 정착됩니다. 조선시대를 꼰대의 시대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우리나라 선비들 공부해보면 선비들의 우정과 사귐 지금 시대에 시급한 도입이 필요합니다.




다시 정조이산으로 돌아가,



정조이산은 겨우 11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합니다. 정조이산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이는 무척 좋았다고 합니다. 사도세자는 무인의 기질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아요. 정조이산은 양자를 잘 갖춘 인물인데


활을 100발100중을 쏘았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세손시절 부터 죄인의 아들이라는 그러한 굴레를 쓰고 있기에 신하들이 항상 목숨을 노리고, 완전 고개 숙이며 살아야 했대요. 홍재전서라는 세손시절에 쓴 일기를 보면


자신이 지나가면 신하들이 쩝쩝 소리내고 발을 끌고 그렇게 하대했다고.... ㅠ.ㅠ



저 같으면 그런 어려운 시절 겪고 왕이 되었다면 복수....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조이산은 그렇게 하지 않죠.



"오호라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렇게 정체성을 표명하지만 피비린내나는 복수극을 펼치지 않습니다.


자기 아버지에게 침뱉고, 궤짝 대령한 신하들이 눈 앞에 있지만 죽이지 않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부를 뿐 진정한 복수는 개혁이라고 생각했던 정조이산


그는 세손시절부터 오랜기간 구상했던 조선 개혁 프로젝트를 실시합니다.



우선, 재위 첫 해에 규장각을 세웁니다.



규장각은 세종시대에 집현전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으로


일종의 씽크탱크입니다. 얼마나 선진적입니까. 왕의 정책을 뒷받침 해 줄 그런 연구기관을 마련했다는 것이.


그렇게 규장각을 세우고, 그는 개혁인재를 만들어 냅니다.


스스로 교육시키고 시험보게 하지요. 바로 초계문신 제도를 통해서.


당에 관계없이 젊은 관리들을 뽑아서 함께 숙식 시켜서 정조이산이 공부를 시켰는데


장차 개혁을 위한 인재로 쓰기 위해 그렇게 교육한 듯 합니다.



하지만 그 해에 정유역변도 일어나요.


그...역린이라는 영화가 정유역변을 배경으로 했는데


정조이산을 시해하려는 그런 움직임이 있었어요.


하지만 정조이산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목숨을 건지요.


조선 최대 역모의 위협을 당했던 왕이랍니다.


그래서 세손시절 부터 안 죽을라고 새벽까지 책 읽고 옆에 늘 칼을 두고 잤대요.


어떻게 살았을지 저는 상상도 안 갑니다.


그가 활, 검술, 승마 이런데 능했던 것은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


어린 시절 부터 부단히 노력했던 탓이겠죠.


게다가 천재이기 까지....사기캐.



두번째 그가 치세기간 동안 준비했던 것은 노비제도의 폐지입니다.


서얼출신이었던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 등이 검서관으로 발탁된 것도


그러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었죠.



세 번째 수원화성의 설립입니다. 말하자면 신도시를 건설한 것인데, 이것만 설명해도


두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핵심만 말해도요. 다음 포스트에 제 글이 인기가 많아지면


한 번 다루어 볼게요. 수원화성이 정말 잘 되었다면, 조선은 개혁할 수 있었을 거라고 봐요.


여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비슷한 시대, 러시아에는 표툐르 대제가 유명합니다. 개혁왕이라고 하죠.


하지만, 제가 국뽕에 차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조이산과 비교해 봤을 때


서양의 개혁방식은 우리와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 사로잡혀서 사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러시아는 top down 방식의 무력을 이용한 왕의 권위를 이용한


귀족부터 개혁을 해서 아래로 내려가는 강제적인 형국으로 개혁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고유의 문화가 사라지죠.



그러나, 정조이산은 피의 복수극을 피하고 때로는 여우처럼, 곰 처럼 어쨌든


방향은 개혁, 방법은 여러 가지를 써서 조선을 개혁하려고 합니다. 그게 더 어렵습니다.


왕이니까 다짜고짜 죽이고, 무력 사용해서 이거 해, 하는 것 보다 말로 설득하고


안되면 당근 채찍 주고...이런 식으로 달래고 얼르고 그렇게 신하들을 설득하는게 훨씬 어렵다 말입니다.



그래서 수원화성이 어떤 것이냐 하면.....


수원화성을 가면 한양과는 구조가 다릅니다.


마치 오늘날 도시같은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수원은 당시 조선 8도가 다 통하는 길목에 있었습니다.


즉, 유통도시가 될 수 있었죠.


그런 곳에 상공업을 발달 시키려 했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잘 살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줄 아십니까?


자연즉 의식이 깨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교양을 쌓고, 세상을 둘러보고


공부를 하게 된다 말입니다. 그러면 신분제에 변화가 절로 옵니다.


가장 자연 스러운 방법으로 세상이 변화한다 말입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문화의 힘으로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는 것 처럼 말입니다.



기득권들은 보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기존의 질서가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죠.


그러니까 정조의 행위가 싫단 말입니다.


자기 밥그릇 줄어든다 이겁니다.


그런데 수원화성이 실질적인 조선의 수도 역할을 하면서 (정조는 일찍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본인은


수원에서 상왕으로 있으려고 했음) 문치로만 기울여져서 가난했던 조선이 부유해지면


자연스레 군사력도 길러지고 부국강병 해지면서 문물이 들어오고....그러면 일반사람들의 의식이 자랍니다.


개방성, 관용은 강대국으로 가기 위한 조건입니다.



그가 수원화성을 만들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구조상 혁신적인 것이 많았지만 그런 것은 저의 책에 있습니다.



정조이산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오회연교 - 즉 기득권 세력들에게 선전포고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그 동안 너희들 많이 참아줬다. 그런데 이제는 내 말 들어라. 안 들으면 이번에는 나도 어떻게 하겠다. 하는.....


오회연교를 내리고 한달 인가 지난 후 사망했습니다.



독살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여러 분의 상상 속에....


참고로 조선왕 3분의1이 독살되었다고 무방하다고......'조선왕 독살사건'이라는 책에 나와 있더군요.


하지만 독살이 되었다 아니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봐요.


독살이 안 되었다고 해도


어쨌든 정조이산이 죽고 난 후, 그가 한 일은 정순왕후를 위시한 세력들에 의해


정확히 180도 되돌려지니까요.



그 후의 역사는 여러 분도 아시다시피


조선은 제국주의 흐름속에 일제 식민지가 됩니다.


우리, 이제는 깨어나야 합니다.


나라의 주인은 왕이 아닙니다.


우립니다.



김작의 책: 전문 작가가 아닐 때 써서 구성은 어설프지만 정보는 많이 얻을 수 있을 듯 합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953494


세계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李蒜)



조선은 성리학적 질서로 이루어진 나라. 양반과 농민, 상인, 서얼, 천민 간의 신분의 구별은 뛰어넘어서도 뛰어넘을 수도 없는 것이 조선의 세계관!



그런 세계에서 그는 서얼이라도 등용했을 뿐 아니라 노비제도까지 격파하고자 했다.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군주가 자발적으로 노비제를 없애려고 한 것은 세계역사상 처음 있는 일. 정조이산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조선최초 도시형 성곽 수원화성. 조선의 왕이란 신분제의 가장 정점에 위치한 존재. 밤하늘의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듯, 왕이 있는 곳은 도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야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丁)자형 도시구조. 도시의 가장 정점엔 임금이 사는 궁궐과 관청이 그 아래엔 백성들의 거주지가 나열되어 있다.



수원화성의 중심은 행궁이 아닌 십자로를 중심으로 한 상업지대. 북극성처럼 하늘의 정점에서 가장 빛나야 할 별인 왕이 머무는 곳(수원행궁)은 도시의 외곽에 있다. 수원화성은 18세기에 완성되었던 21세기형 도시였다. 왕을 비롯한 양반이 중심인 시대에서 '길'과 '사람'이 중심인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던 정조이산. 수원화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다. 그것은 신(新)조선을 만들기 위한 추진기였다.



정조 이산의 마지막 계획은 수원화성을 성공 시킨 후 화성모델을 전국에 퍼뜨리려고 했던 것. 이를 통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새로운 조선을 탄생시키려고 했던 정조이산. 역할의 구분은 있되 상하의 차별이 없는 곳에서 만백성이 자신의 천명(天命)을 다하고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이 되는 조선을 만들고자 했다. 세계 역사상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많았지만 신분제에 손을 대고, 관료중심이 아닌 백성중심의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왕이면서도 가장 백성들의 마음에 닿아있던 그는 과히 세계최초 군주혁명가라 칭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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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              

세계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李蒜)조선은 성리학적 질서로 이루어진 나라. 양반과 농민, 상인, 서얼, 천민 간의 신분의 구별은 뛰어넘어서도 뛰어넘을 수도 없는 것이 조선의 세계관! 그런 세계에서 그는 서얼이라도 등용했을 뿐 아니라 노비제도까지 격파하고자 했다.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군주가 자발적으로 노비제를 없애려고 한 것은 세계역사상 처음 있는 일. 정조이산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조선최초 도시형 성곽 수원화성. 조선의 왕이란 신분제의 가장 정점에 위치한 존재. 밤하늘의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듯, 왕이 있는 곳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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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689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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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사관, 은서              

본격 역사 + 로맨스 소설!!!18세기 정조시대를 사실적으로 고증한, 역사물이자 로맨스 물! 로맨스물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도 읽을 수 있는 팩션! 마지막 승부수 오회연교를 앞둔,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 역사를 바꾸더라도 그 후 있을 정조의 죽음을 아는 미래에서 온 소녀, 은서는 역사를 바꾼다 하더라도 그의 계획을 말리고 싶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힐 수 없는 정조의 사연. 수원화성을 통해 보여준 새로운 세상을 다 함께 만들어보자는 정조의 뜻은 끝내 꺾이는가? 사도세자의 비극과 조선의 부흥기라는 상반된 모습을 가졌던 영·정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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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역사 + 로맨스 소설!!!


18세기 정조시대를 사실적으로 고증한, 역사물이자 로맨스 물! 로맨스물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도 읽을 수 있는 팩션!



마지막 승부수 오회연교를 앞둔,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


역사를 바꾸더라도 그 후 있을 정조의 죽음을 아는 미래에서 온 소녀,


은서는 역사를 바꾼다 하더라도 그의 계획을 말리고 싶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힐 수 없는 정조의 사연.


수원화성을 통해 보여준 새로운 세상을 다 함께 만들어보자는 정조의 뜻은 끝내 꺾이는가?


사도세자의 비극과 조선의 부흥기라는 상반된 모습을 가졌던 영·정조 시대.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어


드라마로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있는 시절.


그러나 말 못할 임금의 속내는 누가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은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한 맺힌 임금의 가슴 속 이야기를 듣게 되고


정조를 통해 그가 꿈꿨던 조선의 미래를 듣게 된다. 그 속에서 싹 트는


두 사람간의 우정과 사랑! 단지 조선 그 시대만이 아닌 긴 역사의 흐름을 꿰뚫었던 정조.


아직은 정조의 꿈이 꺾이지 않았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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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 이 곳인 것 같아요. 규장각을 들어가려면 저기 어수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어수문은 임금만 지나갈 수 있었고 신하들은 양옆의 쪽문으로 다녔답니다. 그...오징어 게임보면 천지인 사상을 나타내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 도형을 볼 수 있잖아요. 여기 비원이 바로 그 천지인 사상이 잘 드러나는 정원입니다. 부용지에 보면 섬이 있지요.



네모난 연못은 땅을, 그리고 섬은 동그라니까 우주를 그리고 인간이 서 있으면 그것이 천지인 정신입니다. 우리나라 전통의 정신은 이렇게 우주공동체 정신을 함유하고 있어요. 즉 인간은 하늘에서 왔고 그래서 우리는 하늘과 연결되어 있고 죽으면 죽는다보다는 돌아가셨다고 하잖아요. 원래 온 곳인 하늘로 돌아갔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런 탓에 우리는 자연을 조화의 대상으로 보지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잖아요. 저는 인류문명을 구할 그러한 사상들이 동양에, 그리고 한국에 있다고 봅니다. 국뽕 아닙니다 국뽕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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