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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가 찾아오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사는 것에 바빠 '제발 혼자만의 시간이 있었으면'하고 바랐던 적도 있다. 하지만 엄마, 아빠만 찾던 어린 녀석들은 자라 대학생이 되었고, 아내는 자식들로부터 해방된 자유 시간을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보람차게 채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주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또 불안해졌다. 하지만 무언가를 해 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때가 잦아졌다.

마음 한 구석 내 인생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왜 그런 것일까.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이들도 잘 자랐고 부부사이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흠, 그렇다면 직장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10년 전만 해도 열정적으로 프로젝트에 임하고 여러 성과도 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돈을 더 준다고 해도 더 많은 일을 떠맡고 싶진 않았다. 편하게 있고 싶을 뿐이었다. 몸이 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듯,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계속 뜨거울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시간을 되돌리거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자꾸만 마음속에서 질문이 떠올랐다. '너,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야?' 하고 말이다.

내 인생의 알맹이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은 자신에 집중할 시간이 없어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여유가 생겨서일까 그간 살아왔던 것이 무엇을 위한 삶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쓸데없다면 쓸데없는 생각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괴로웠다. 생각이 끊이지 않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런 때, 추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았다. 그리고 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구체적으로 언어가 되어 말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삶을 파다보면 내가 가진 의문에 대한 답, 적어도 실마리는 얻을 수 있을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왕실과 인척관계였던 그는 명문가에서 출생, 어린 시절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개인적으로는 조실부모하고 주변 가까운 사람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타고난 재능과 가문의 힘으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정점에서 누군가의 억지 모함으로 기약 없는 유배길을 떠난다. 유배지는 당시로서는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었던 제주도, 게다가 집 밖을 나올 수 없는 위리안치라는 형벌이었다.

인생의 말년, 삶을 정리해야하는 시기, 당시로서는 환갑을 5년 남긴 노인의 몸으로 유배를 떠난 그, 제주에서 그는 1840년부터 1849년까지 장장 8년 3개월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해배된 지 2년째 되던 해 벗 권돈인과 헌종 추승문제로 반대파의 공격을 받아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간다. 세상의 남쪽 끝으로 또 북쪽 끝으로 이미 환갑도 훨씬 지난 나이에 유배를 가게 된 그. 얼마나 기구한 삶인가.

동시대인들은 그가 유배지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늙은 몸, 먹을 것도 변변찮고 몹쓸 날씨로 제주에서도 모슬포라고 일컬어지는 곳으로 내쳐진 그. 이번에는 짐승가죽으로 옷을 해 입는다는 북청으로 내쳐진 그. 남이 뭐라던 당사자의 마음이 가장 지옥 같지 않았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시절을 견뎠을까?

그가 유배를 갔던 때와 지금의 나는 비슷한 나이였다. 그간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터였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내가 정말로 괜찮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답도 없는 물음이 끊임없이 내 속에서 흘러나와 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을 해대니 말이었다.

열심히는 살았지만 왜 사는 것인지, 정작 나란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한 삶을 살았다는 자각이 이제야 일었다. 사춘기 시절 스탠드 불빛 아래 공부를 하다 문득 내가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도 같지만, 삶이 바빠지고 세상 속에 휩쓸리면서 그런 고민은 뭐랄까 치기어린 고민이라며 치부하고는 더 이상 나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 적응하고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자신에 대한 자각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추사를 만나면 묻고 싶었다. 당신은 칠흑 같은 그 세월을 어떻게 견뎠는지, 긴긴 그 세월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았기에 작품을 남길 수 있었는지 말이었다.

**

추사를 만난 후, 중년의 의미를 찾은 사내

두 사람의 아름다운 문답을 찾아서

조선의 별, 추사 김정희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139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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