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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직장 그만 두고 싶은데....

Summany: 

- 상황을 냉정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내성을 기르라 

- 나만의 무기를 길러야 한다 

- 그 전에는 버티고 버틸것, 버티는 것이 무조건 답은 아니지만 

버티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많다 

고민남: 어렵다는 취업입시의 관문을 뚫고 대기업에 다니는 사회초년생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보다 더욱 빡빡한 일과표에, 주변인들 눈치에, 회식자리 등으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럽습니다. 자기 시간은 꿈도 못 꾸는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짓누릅니다. 하지만 여길 나가면 갈 곳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겠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 버텨야 할까요? 

연암선생: (고개를 가로 저으며) 쯧쯧, 난 자네처럼 살아보지 않아서 그 고통을 완전히 이해를 못하겠어. 하지만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직장에 들어갔으니 그만두기가 쉽지 않을 거야. 어렵게 얻은 것일수록 손에서 놓기가 힘든 법이니까. 지금 사회초년생이라고 했지? 보니까 일 년이 안 된 것 같네?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슨 일이든 초짜일 때는 다 힘든 거라고 말하고 싶어. 익숙하지 않은 데다 기대했던 것과도 다르니까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거지. 학교에 있다가 사회에 나오면 그때부터는 실전이야. 당연히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어. 학교에 있을 때는 다들 고만고만해. 선배든 후배든 나이차이도 거기서 거기, 배경도 비슷하고, 하고 있는 공부도 생각도 비슷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사회는 그야말로 전쟁터지.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철저히 혼자 싸워야 하고 감내해야 하는 곳이란 말일세. 내성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군. 자네, 직장 그만두고 나온다고 해도 뾰족한 수는 있는가?

고민남: (고개 흔들며) 그것까진 생각 안 해봤습니다. 

연암선생: 만약 지금 직장이 힘들다고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한 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그리고 자넨 아직 혼자만의 일을 시작할 만한 무기가 없어. 무기를 길러야지. 직장은 언제 그만두어도 되냐면 그곳이 너무 편할 때, 더 이상 내가 그곳에서 할 일이 없을 때 그때는 그만두고 과감하게 다른 일을 시작해도 돼. 거기서 새로 시작하는 거지. 내가 그곳이 필요 없을 때 그만두라는 거야. 나를 위해서. 지금은 아니야(손에 든 부채 가로로 흔든다). 백수작가인 나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지? (약 올리듯이 입 꼬리 씨익 올리며 웃는) 자네 같은 경우엔 어찌되었든 그 회사가 익숙해질 때까지 견뎌보라고 말하고 싶어. 처음 경험해보는 것들을 몸으로 부딪쳐 가면서 경험을 쌓고 성숙해지란 말이야. 

고민님: 견딜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연암선생: (달래듯) 괜찮아. 생각해보면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야 2,3년 정도면 회사가 돌아가는 이치나 흐름이 보일거야. 그러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요령도 생기고. 그러면 사람이 여유가 생겨. 회사일 말고도 다른 것을 할 수 있겠다 싶은 여유가 생길 때 내가 좋아하는 취미 한 두 개쯤 가지면 좋지. 그러면서 재미를 붙이다보면 굳이 회사를 나오지 않고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병행할 수 있잖아? 또 자네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라면서? 그러면 어찌되었건 돈이 없으면 살아가는 데 불편한 게 사실이지 않은가.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할 수 있게 자금을 대어주는 회사가 고맙다고 말이지. 사람은 생각보다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네. 아무리 처음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일이라도 꾸준히 계속하면 거기에 익숙해지게 돼. 그러면 일이 재밌어지고 의외의 소질을 발견할 수 있지.

고민남: 선생님의 경우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연암선생: 나 같은 경우는 어떤 상황에서건 즐거움을 찾으려 했어. 조부께서는 경기도 관찰사, 사헌부 대사헌, 예조 참판 등을 지내셨으나 재산을 모으는 것엔 관심이 없었고, 아버지께서는 벼슬을 하지 않으셨으므로 집안이 가난했지. 한양의 야동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가난해서 이장오라는 인물 집에 세 들어 살기도 하고 집값이 싼 백탑근처로 이사 갔다가 다시 백탑 서쪽 전의감동으로 이사를 갔지. 떠돌아다니는 삶이었지만 이곳에서 나는 의기 충만한 친구들을 만났지. 담헌 홍대용을 통해서는 처음으로 서양과학 문물을 접했고 백동수를 통해서는 검술의 세계를 알게 되었어. 또 나보다 청나라에 먼저 다녀갔던 박제가를 통해서는 그곳의 문물에 대해 전해들을 기회가 있었고 유득공을 통해서 발해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지. 

친구인 그들의 관심사를 이해하기 위해 나도 노력을 했다네. 과학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담헌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서적을 읽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묻기도 하면서 과학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지. 각종 기계장치와 산학이론이 나오는 서책을 보면서 머리가 아팠지. 하지만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하자 재미있더군. 적어도 친구가 하는 얘기를 이해하기 시작하니까 내 세상도 그 만큼 넓어졌지. 내가 친구들을 예로 든 것은 자네가 직장을 그만두려는 이유가 순간의 어려움을 참지 못해서 그러는 거라면 직장이 익숙해질 때까지 다녀보라고 말하는 걸세. 익숙해졌다는 것은 상황을 냉정하게 볼 수 있을 때라는 거거든. 그때는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거야. 나라는 사람이 다니고 있는 직장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직장은 편하고 좋은데 홀로 일하는 게 더 맞는 사람인지. 설령 직장을 나간다고 해도 내성을 기르며 견뎌낸 시간들이 결코 손해 보는 것은 아닐 거야. 그 만큼의 경험치는 내 몸 어딘가에 저장되어 비슷한 어려움이 닥쳤을 때 힘을 발휘하거든. 몸만큼 정직한 한 것은 없으니까. 지금 어려울 거야. 무슨 일이든 시작이 가장 힘든 법이지. 시작이 반이랬잖아, 벌써 반은 넘었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익숙해질 때까지 견뎌보게. 그만둘지 말지는 상황을 냉정하게 볼 수 있을 만큼 내가 성숙해졌을 때 하고. 

고민남: 상황을 냉정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연암선생: 마지막으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네. ‘여길 나가면 갈 곳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잖아 그건 아니네. 살아보니 인생길 한 가지만 있으라는 법은 없었네. 비우면 채워진다. 그게 우주의 법칙이네. 현재 직장을 그만두면 갈 곳이 없을 것 같지만 그 직장에서 나오면 또 다른 경험이 자네를 위해 펼쳐질 걸세. 물론 기회는 자네가 만들어야겠지.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나니 시간이 남아돌았지. 자의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네. 그때 거리로 나간거야 친구들을 만나러. 동족들이 많더군. 그곳에서 진짜 세상 돌아가는 공부를 했지. 

예덕선생전, 광문자전, 양반전, 허생전은 이 시절의 경험으로 탄생된 것들이야. 느끼고 있던 세상의 모순을 어떻게 하면 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소설로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소설은 하나의 작은 이야기라는 뜻이지. 소소한 이야기니까 읽기에 부담도 없고 재미도 있으니까 대중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네. 그래, 나의 글쓰기는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항상 독자를 염두 해 두고 썼지.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현실에 있는 인물들이었어. 나는 거기다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였을 뿐이지. 그러다보니 읽는 사람들은 인물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되고 그들이 평소 느꼈던 사회적 모순이나 불만이 이야기 속에도 나타나니까 자신들이 생각하던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여겼겠지. 또 소설이란 건 누굴 표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풀어나가는 거잖아, 그러니까 누가 딴지를 걸어도 ‘이건 소설인디?’ 하고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는 거였지. 아무리 사회제도에 모순이 있어도 그것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급격하게 변화시키려고 했다간 무리가 따른다네. 그래서 내가 썼던 방법은 우스갯소리였어. 모순되는 상황을 우스꽝스럽도록 설정을 한 다음 사람들을 웃게 하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이 풀리면서 틈이 생기지. 그 틈으로 슬쩍 ‘이건 이런 게 아닐까?’ 하고 좋은 방법을 알려주면 듣는 사람 기분 안 나쁘고 말하는 사람도 부담이 없다네. 하여튼 내가 사람들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이야기를 쓰니까 공감하는 자들이 한 둘씩 찾아왔다네. 

(그 시절을 회상하며 아득한 눈빛으로 변한다)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덕무, 이서구, 서유구, 이희경 등이 그들이지. 서얼출신이었지만 조선 최고의 지성을 가졌던 그들, 나보다 앞서 세상의 서러움과 인생의 외로움을 경험했던 그들과 나는 만나자마자 통하더라고. 무슨 애인 만나듯이 거의 매일 밤 만났을 거야. 공교롭게도 모두 백탑주변에 살았던지라 우리는 스스로를 백탑파라 칭하며 갖가지 모임을 가졌지. 당시 남정네들이 모이면 으레 기생집으로가 음주가무를 했겠지만 우리들은 그럴 돈도 없었고, 다들 엄청난 지식의 소유자라 만나면 토론하기 바빴어. 서로 알고 있는 것들을 뱉어내고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의 경험이 배가 되는 것을 깨달았지. 세계관이 급격하게 확장되고 내가 알고 있던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하하, 그 즐거움은 수만금을 준다한들 바꿀 수 없을 걸세. 집단지성의 힘이라고 하잖아, 그것의 무궁무진한 힘을 백탑파 친구들과 지내면서 느꼈다네. 내가 과거시험을 포기함으로써 얻은 또 다른 세상이었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내가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직장에서 버티고 있는 거라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니까 두려움을 버리게. 다만 이럴 수는 있지 처음 들어간 직장이 남들이 보기에도 번듯하고 이름 난 곳이었다면 조금 쉰 후에 들어간 곳은 남·들·이 보기에는 별로일 수 있어. 자네가 걱정하는 게 이 점이라면 지금의 두려움은 평생 따라다닐 걸세. 자네 질문의 핵심이 행여 이거라면 뭐, 그 직장에서 나오긴 힘들겠군. 내가 정말로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자신한테 한 번 세심하게 질문해보게. 내성이 안 생겨서 힘든 건지, 정말로 직장이 내게 안 맞고 나는 나만의 일을 만들어서 평생 살 것인지. 

고민남: 역시 나를 한 번 철저하게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암선생: (미소짓는) 답은 자신이 아는 거라네. 나야 먼저 살았던 사람으로 약간의 잘난척(?)을 곁들여 이런저런 얘기를 해줄 뿐이지. 

사회자: 말씀 고맙습니다. 사회초년생 분들은 처음 사회에 나오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연암 선생께서는 상황을 냉정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자신만의 무기를 기르고 내성을 기르라고 말씀하시는 군요. 새로운 질문 받을게요. 괜찮겠습니까, 선생님?

연암선생: (부채로 얼굴 부치면서) 괜찮아. 오랜만에 아그들 보니 기분이 좋군. ^^

출처: 이것이 조선브로맨스<부크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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