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비법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 해야 해

연암에게서 배우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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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글쓰기 맥락을 한 마디로 요야약하면 이것 같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좋은 글을 낳는다."




1. 현상만 보지 말고 이편과 저편사이의 ‘사이’를 꼼꼼하게 관찰하라.

사이란 하나의 고정된 자리가 아니라 땀 기운과 풀기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진실이 달라지는 지점이다.


사이를 자세히 볼 때 진실의 향방을 알 수 있다.

대상과 대상 사이를 정밀하게 관찰할 때 새로운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2. 진실은 상황에 따라 달리 드러나므로 차별이나 편견을 두지 말라.

이분법으로 보면 일면적인 진실일 뿐, 실체적인 진실은 아니다.

실체를 제대로 보려면 둘을 다 볼 수 있는 가운데 지점에 서야 한다.

사이라는 것은 양편을 아우르는 지점

한 면만 본다면 상황에 대한 해결을 제시하는 표지가 아니라 인식태도를 말한다.


3. ‘가치의 위계화’를 무너뜨리고 존재의 균등함으로 나아가라.

옳고 그름 가운데는 미세한 사이가 있다. 그 사이는 떨어진 것도 아니고 붙어 있는 것도 아니며

오른쪽도 아니고 왼쪽도 아닌 곳이다.


불리불친 불우불좌 – 불가에서 진리를 드러내는 어법이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붙지도 나뉘지도 않는 곳에 진리가 있다.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방편일 뿐

저것으로 인해 이것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저것이 있다.

존재는 다른 것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서로를 비춰 줌으로써 의미가 만들어진다.


즉, 둘 사이의 대립이 동시에 부정되고 긍정됨으로써 가치의 위계화가 무너지는 자리가 사이(中)이다.

옳음과 그름, 천함과 귀함을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비춰줌으로써 의미를 드러내며 모든 존재가 제각기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연암 선생님은 말똥을 강조함으로써 중심적인 가치를 무너뜨리고

주변적인 존재를 부각시켰지만


실제로는 말똥의 입장에서는 여의주 뭔 상관?

여의주 입장에서도 말똥 뭔 상관?


내 생각에는 둘 다 똑 같은 것 같다.

구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


구별하는 눈을 가지고 두 개를 바라보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연암은 글쓰기를 도의 종속물로 여기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새로운 생각을 전파하는 수단이자 삶의 존재근거, 글쓰기 자체가 목적이기도 했다.


출처: 행복한 백수학교 연암에게서 배우는 자유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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