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의 동생, 교산 허균은 잘 알려져있지만, 그녀의 오빠 하곡 허봉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난설헌의 예술성은 혼자 만의 것이 아니었다.
오빠, 동생 모두 천재성을 타고 났던 것.
특히 오빠는 난설헌의 재주를 특별하게 여겨 동생에게 두보 시집을 새로 장정하여
선물로 주기도 하고, 손곡이달을 소개시켜 준 것을 보면
남매관계가 남달랐던 것이었다.
허균은 처음에는 누이의 시작 수준을 잘 알지 못하다가
본인이 시를 짓고 있는데 그것을 듣고 있던 누이가
바로 운율이 맞지 않다며 코치를 했단다.
그때, 누이의 실력에 감탄을 했다는.....
다음은 난설헌과 인터뷰 내용이다. 그녀의 오빠와 동생에 관해,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난설헌: 오라버니는 나를 무척 아껴주셨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해 주고 싶어 하셨지. 나를 그저 여자아이로 본 것이 아니라 글에 재능이 있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본 것이지.
나: 일반 사대부가에서 그렇게 하기란 어렵지 않은지요?
난설헌: 물론 일반적으로는 어렵지 그러나 우리 집안사람들은 다들 개성이 강해서, 그 개성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나: 다들 예술가적 기질이 강했나 봅니다.
난설헌: 응,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나: 오빠 하곡 허봉은 어떤 분이었는지요?
난설헌: 그도 한 가지 분야를 능히 개척할 수 있는 분이셨지. 당시 운이 좀 따라주지 못하여 중도에 가버린 것이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 오라버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무척 가슴이 아팠단다.
평소에는 다정한 분이셨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기 위해 무척 노력 하셨단다. 그래도 균이가 뒤를 이어주어 어느 정도 하고자 했던 것의 결실을 볼 수 있었지.
나: 3남매를 보면 무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 분 덕택에 사회 소외계층들이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요? 허난설헌 선인님은 당신이 여성으로 조선의 소외계층을 대표하셨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여성문학의 맥을 세우셨고, 허균 선인님께서도 불후의 명작, 홍길동전을 남기셨지요.
난설헌: 그렇지. 당시만 해도 여성이 시를 쓴다는 것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단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시도함으로써 사람들의 의식에 변화를 가져왔고 여성도 시를 쓴다는 것을 사람들의 인식에 심어주었단다. 당시 균이가 쓰던 글은 위험해 질 수 있는 글이었다. 그가 쓴 글은 당시의 일반적인 관념을 뒤엎는 것이었지. 사람들은 틀 속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 가족은 그 틀을 없애려고 노력하였지.
당시 사람들이 우리들을 받아들이진 못했어도 작품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김으로써 그들의 가슴에 울림이 일어나게 하였단다. 비록 사회상의 변화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물음표를 남김으로써 계속 생각할 수 있도록 하였단다. 글의 힘은 바로 그런 것이지. 지금 당장의 물리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글을 읽은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그들이 자발적으로 변화를 하게 하는 것이 글이 가진 힘이란다. 내면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글이 할 수 있는 일이지.
나: 보통 당시에 글을 잘 쓰는 것이라 하면 경전을 달달 외워서 구절을 인용한다거나, 남이 한 말을 옮겨 쓰는 수준이라 들었는데, 세 분은 자신만의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타고난 작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조선의 한류스타, 허난설헌 / 김예진 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513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