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그녀의 남편은 정말로 나빴을까?

난설헌, 그녀의 남편은 정말로 나빴을까?



난설헌은 15세에 안동 김씨 김성립에게 시집을 간다. 김성립의 가문은 허난설헌의 가문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문벌이었다. 시아버지 김첨은 허난설헌의 오빠인 허봉과 함께 사가독서(인재양성을 목적으로 관료들에게 독서할 수 있는 휴가를 주는 제도)를 한 데다 같은 동인이었으므로 사이가 좋았다

.

허난설헌과 김성립의 혼담에는 오빠인 허봉이 중매를 섰다고 하는데 이런 배경이 있어서 가능했다. 흔히 난설헌은 혼인 후에 시 쓰는 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 시댁의 분위기와 남편과의 불화 때문에 그녀의 불행이

시집에 연유한 것으로 생각한다

.

허난설헌의 불행은 단순히 시집과 허난설헌 개인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여성의 시작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던 조선이라는 특수성, 당시 불안했던 국내외의 상황, 집안사람이 관리였던 탓에 국내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던 허난설헌의 가족, 역시 시대 상황에 울분을 느꼈던 남편 김성립과의 관계 - 이 모든 것과 무관치 않았던 허난설헌의 주변 상황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남편 사이에서 재미난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걸 보면 처음부터 사이가 멀었기보다는 여러 가지 사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

혼인한 지 얼마 안 지난 어느 날 김성립은 접(과거를 준비하는 유생들이 공부하는 모임)에서 친구들과 함께 과거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새신랑 김성립을 골려주고 싶은 거다. 왜 안 그렇겠는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피 끓는 청춘들이 한 평 남짓한 방안에서 온종일 공부만 해대는 데 답답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그래서 허씨 가문의 심부름을 하러 온 계집종에게 이렇게 말한다.


“에헴, 김성립 여기 없는데? 지금쯤 기생집에서 거나하게 놀고 있을걸?”

그 소릴 듣고 놀란 계집종이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나 허난설헌에게 이른다.

“아이구, 주인님께서 공부는 안 하고 기생집에서 놀고 있다지 뭡니까?”

그 얘기를 가만 듣던 난설헌이 이렇게 묻습니다.


“그 얘긴 누가 해 주더냐?”

그러자 계집종은 김성립과 공부하는 친구들이 그랬다고 말한다. 난설헌은 친구들이 부러 골려 주려고 그랬다는 것을 눈치채고. 계집종보고는 잠시 기다리라 하고 곧 맛있는 안주를 마련하고 병에다 술을 담아 시를 한 편 지어 보낸다.


‘서방님은 다른 마음 없으신데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이간질을 시키는군요.’

김성립이 부인이 전해 준 시를 읽자 무안해진 친구들.

“하하, 우리들이야 그냥 재밌으려고 그랬지, 미안하이. 자네 부인이 준비해 준 술 한잔 들면서 오늘 일은 잊어버리게나.”


난설헌이 준비한 술상을 함께 하면서 부인의 재주를 칭찬하는 글방 친구들. 난설헌이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둘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김성립의 친구 송도남이 김성립의 집에 놀러 왔다.


문득 친구를 놀리고 싶었던지, 친구를 부를 때 ‘멍석닙이, 덕석닙이, 김성립 집에 있는가?’ 하고 불렀다. 그러자 난설헌은 재빨리 남편에게 가 ‘오호라, 귀뚜라미, 맨드라미, 송도남이 왔구나’ 하고 대답하라 일러 주었다. 아내가 일러준 대로 대답하자 친구인 송도남은 놀리려다가 오히려 머쓱해진다. 그러나 나중에 슬며시 이렇게 물어본다.


“부인이 가르쳐 준 모양이지?”


신혼 초에 난설헌이 남편에게 지어 준 시다.





내게 아름다운 비단 한 필이 있어

먼지를 털어 내면 맑은 윤이 났었죠.

봉황새 한 쌍이 마주 보게 수 놓여 있어

반짝이는 그 무늬가 정말 눈부셨지요.

여러 해 장롱 속에 간직하다가

오늘 아침 님에게 정표로 드립니다.

님의 바지 짓는 것이야 아깝지 않지만

다른 여인 치맛감으로는 주지 마세요.

「다른 여인에겐 주지 마세요」 - 허난설헌


귀한 순금으로

반달 모양 노리개를 만들었지요.

시집올 때 시부모님이 주신 거라서

다홍 비단 치마에 차고 다녔죠.

오늘 길 떠나시는 님에게 드리오니

서방님 정표로 차고 다니세요.

길가에 버리셔도 아깝진 않지만

새 여인 허리띠에만은 달아 주지 마셔요.

「길가에 버리셔도 아깝진 않지만」 - 허난설헌


허난설헌생가.jpg

<허난설헌, 허균, 허봉 남매가 살았던 생가터>


시,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제가 허난설헌에 관한 책을 쓸때 한자를 몰라

영산대 교수인 지인에게 감수를 부탁드렸답니다. 그래서 해석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출처 허난설헌 1,2

작가 허난설헌/감수 김영호/그림 최경아/저자 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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