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브로맨스 시리즈 2탄 : 쾌남 정조이산 다산 정약용
정조시대 브로맨스라 하면 빠질 수 없는 관계가 바로 정조이산과 다산 정약용.
정조 이산과 홍국영의 관계가 젊은 시절 불꽃 파바바 튀기는 연인 & 친구 만남에
가까웠다면 정조이산과 정약용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혹은 임금과 신하게 가까운
만남이었달까?
모범생과 모범생. 천재와 천재의 만남이기에 홍국영과의 관계보다 쫌 재미는 없지만.
그들이 바꾼 역사의 한페이지를 생각한다면 천재의 만남도...가슴 떨리긴 하다. 횽횽횽
이제 둘 간의 브로맨스 냄새 흠뻑 담긴 일화를 살펴볼까나....^^
<에피소드 1 술 Alcohol>
정조이산과 다산 정약용간에 유명한 일화라고 하면 뭐니뭐니 해도 술!!!!
요즘도 대학에 술사발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을 다녔던 2000년대 초반에는 술사발 문화가 있었다. 처음 OT에 참석하면 과 애덜이 다들 한 사발씩
마셔야 했거덩. 것도 막걸리로.... (맛없었심....ㅜ)
근데 요 술사발 문화가 정조 시대에 비롯되었다는 사실!
정조이산 역의 서지니 횽아...
정조이산.....그는 공부벌레, 무술천재 못하는게 없었는데 술도 엄청 쎄고! 담배도 퍽퍽 피워대는 상남자였던 것!
보통 책 많이 읽고, 공부 잘하는 남자에 대한 환상들이 있진 않은가? 하얀피부 살랑거리는 머리 모성을 자극하는 자태....그런데 정조이산은 문과남자라기 보단 공대남자 형이었던 것 같다. 남자들과 우정을 나눈 일화가 훨씬 많고, 주변에 여자...별로 관심 없었던 듯.
창덕궁의 비원에 있는 옥류천이라는 곳인데. 조오기...포석정처럼 생긴
돌 위에 술잔 띄워놓고 시작하는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저기 어드매쯤 정조이산과 정약용이 함께 술자리를 하지 않았을까?
하여튼 그 술 잘하는 정조이산, 한달에 한 번 초계문신(37살 이하의 젊은 중간관리들을 뽑아 3년 동안 규장각에서 교육을 시키는 제도) 들에게 시험을 치루게 했다.
학자 군주답게 정조 이산이 직접 시험문제를 내고 답안을 매기기도 했는데요, 임금이 직접 내는 문제, 신하들이 절대 놀 수 없겠죠. 이들이 공부한 방식은 사서삼경을 무조건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해석과 토론으로 풍부한 사고력을 기르는 쪽으로 진행되었다고 하죠잉~
다산 정약용은 자주 시험에서 1등을 했었는데 문제는 다산이 술을 못하는 범생이었다는 사실.
정조이산: 험험 이번에도 1등은 어디보자, 약용이 아닌가?
다산: (기뻐하며) 그렇사옵니다. 저 이옵니다.
정조이산: (하트 뿅뿅) 네, 그럴 줄 알았다. 어디보자....선물이
다산: (선물!!! 책!!!) 아니 괜찮사옵니다. 선물은 무신.....
정소이산: 옛다 술 받아라. 요 필통에 술을 받아 주욱 들이키거라
다산: 예?
정조이산: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조리 싹~~~ 비워버려야 한다니께. 안그러면
나올생각 마라!
정조이산은 신하들과 술 자리를 자주 했다고 하는데
본인이야 술을 좋아하고 술이 쎄서 좋았겠지만
신하들은....특히 정약용 같은 형들은 힘들었겠다. ㅋㅋ
후원에 있는 농산정이라는 건물인데. 왕이 옥류천에 납시었을 때 다과를 올렸던 장소라고 한다. 내가 후원을 방문했을 때 가이드분께서는 농산정이라는 이름답게
후원에서 벼농사 행사가 있을 때 이곳에서 숙식을 하셨다고 하셨다. 조선의 경제기반은 농업이었기 때문에 임금도 농사를 지었다. (물론 본보기로만 이지만, 농민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럼에도 정조 이산은 술을 자주 권했다고 하는데 1등을 해서 임금이 내려주시는 술을 거절하자니 그렇고 먹자니 속이 쓰리고 괴로웠다고 훗날 아들에게 즐거운 듯 토로합니다.
다산은 수석을 자주 차지한 나머지 궁중에서 발간되는 신간은 모조리 획득하는 쾌거를 올리죠. 그 날도 1등을 한 정약용에게 임금은 더 이상 줄 책이 없다고 합니다. 1787년 8월 23일 임금이 내린 시험에 수석을 차지한 다산에게 임금이 이렇게 말합니다.
정조이산: 『팔자백선(정조가 당송팔대가의 글을 뽑아 간행한 책)』은 받았씸?
다산: (줬잖여~) 헛!
정조이산: 그러면 『대전통편』은?
다산: (것도 줬잖여~) 받았씸
정조이산: (어쩐다...책 없는지...^^;) 『국조보감』은?
다산: (것도 줬잖여~~임금님아) 당근!
만천명월주인옹자서 현판이 걸린 존덕정이다.
다른 정자와는 모습이나 모양이 다르다.
그러고 나서 정조 임금이 그에게 하사한 책은 『병학통』이라는 군사훈련 교범이다. 정조 자신이 다방면에 능한 왕이었기에 신하들에게도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교양을 쌓을 것을 당부하는거죠. 그래서 규장각의 각신들은 경전 공부 외에도 무예서에서 악론까지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예에는 소질이 없었던 정약용은 왕이 무예까지 익힐 것을 당부하자 정약용은 기겁하고 고향에 은거할 생각까지 했답니다.
약용: 무서워잉~ 니미럴 무술까지 익히라니 ㅜ.
집에 갈꺼영
긍께 요즘식으로 하면 정조이산은 덩치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술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는 만능맨형의 상남자였고 쾌남이~~
다산 정약용이 흔히 말하는 여리한 천재 학자. 뭐 그런 형 아니었을까?
무예를 익힐것을 당부하자 고향에 은거할 생각까지 했다니....ㅋㅋㅋ
정조이산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저자의 책에 있답니다. (블로그 쥔장 김작가 ^^)
살포시 들러주어요 저자의 블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