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일은 90%의 거절이다

by Wayne

PM의 하루는 슬랙(Slack) 알람과 함께 시작됩니다. 마케팅팀은 이번 주 이벤트 배너를 메인에 띄워달라고 하고, 운영팀은 CS 처리를 위한 관리자(Admin) 기능을 빨리 만들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개발팀은 레거시 코드를 청산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고, 실장님은 경쟁사 앱의 새로운 기능을 캡처해서 "우리도 해볼까?"라고 툭 던집니다.


PM이 하는 일의 10%가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이라면, 나머지 90%는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안 돼요", "바빠요"라고 말하는 것은 하수입니다. 오늘은 PM의 숙명과도 같은 '거절'을, 동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면서도 논리적으로 해내는 방법을 공유하려 합니다.


"안 돼요"가 아니라 "지금은 아닙니다"

거절이 힘든 이유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거절은 아이디어가 나빠서가 아니라, '시기(Timing)'가 맞지 않아서입니다.


저는 거절할 때 "No"라고 끝맺지 않습니다. 대신 "Not Now(지금은 아님)"의 논리로 접근합니다. "제안주신 기능은 정말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다만, 지금 우리 팀의 최우선 목표(OKR)는 '신규 가입자 증대'에 맞춰져 있습니다. 제안주신 기능은 '기존 유저의 편의성'을 위한 것이니, 이번 스트린트보다는 다음 분기 '리텐션 개선' 기간에 검토하는 게 임팩트가 더 클 것 같습니다. 그때 다시 논의할까요?"


거절의 근거를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합의한 목표'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PM이 자신을 거부한 게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방법은 거절하되, 문제는 수요하라

요청자가 가져오는 것은 대게 구체적인 해결책입니다. "메인 화면에 팝업 띄워주세요." 개발자들은 팝업을 싫어합니다. 유지보수도 귀찮고 UX도 해치니까요. 이때 "팝업은 안 됩니다"라고 자르면 싸움이 납니다.


이때 '문제'에 집중하세요. "마케터님, 팝업을 띄우고 싶은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번 프로모션의 노출 수를 늘리고 싶으신 거군요? 팝업은 유저들이 무의식적으로 닫아버려서 효율이 떨어질 수 있어요. 차라리 팝업 개발할 공수로 상단 고정 배너(Top Banner)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개발 리소스는 반으로 줄고, 노출은 계속되니 원하시는 목표 달성에 더 유리할 것 같아요."


상대방이 원하는 것(팝업)은 거절했지만, 상대방이 해결하고 싶어 했던 문제(노출 증대)는 더 좋은 방법으로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거절이 아니라 '더 나은 제안'이 됩니다.


트레이드 오프(Trade-off)를 투명하게 보여주기

가장 난감한 상대는 역시나 'C레벨(경영진)'의 갑작스러운 요청입니다. "이거 간단해 보이는데 내일까지 안 돼?" 이때 "개발팀 일정이 꽉 찼습니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현재 상황을 보여드립니다.


"대표님, 내일까지 가능합니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결제 모듈 안정화' 작업을 3일 미뤄야 합니다. 결제 오류 리스크를 안고 신기능을 먼저 배포할까요, 아니면 안정화부터 끝내고 진행할까요? 결정해 주시면 따르겠습니다."


PM이 혼자 끙끙 앓으며 무리하게 일정을 끼워 넣는 대신, 선택의 공(Ball)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무엇을 얻으면 무엇을 잃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면, 대부분의 합리적인 의사결정권자는 "아, 그럼 급한 것부터 마무리하고 합시다"라고 한발 물러섭니다.


거절은 프로덕트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

스티브 잡스는 말했습니다. "집중이란, 집중할 것에 'Yes'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 수백 가지에 'No'라고 말하는 것이다."


PM이 거절을 두려워해서 모든 요청을 들어주는 순간, 프로덕트는 '기능 뷔페'가 되어 정체성을 잃고 맙니다. 욕먹을 용기를 가지고 단호하게 쳐내는 것. 그것이 역설적으로 우리 팀원들을 보호하고, 우리 프로덕트를 가장 날카롭게 만드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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