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기획자에서, 발견하는 기획자로

우리가 VOC를 재해석해야 하는 이유

by Wayne

"고객 중심(Customer Centric)." 모든 프로덕트 팀이 지향하는 가치이자, PM이 지켜야 할 제1원칙입니다. 우리는 항상 고객의 목소리(VOC)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배웁니다. 하지만 현업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마주하며 깨달은 사실은, "고객의 요청을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 곧 "고객을 위하는 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객이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문제의 '해결책(Solution)'인 경우가 많지만, 정작 그들이 겪고 있는 것은 '불편함(Problem)'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PM이 VOC라는 표면적인 정보 뒤에 숨겨진 '진짜 맥락'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고객의 상상력은 '경험' 안에 갇혀 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다면, 그들은 '더 빠른 말(Horse)'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것은 VOC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시사합니다. 고객은 자신이 경험해 본 세상 안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에게 '자동차'라는 혁신을 상상하고 요구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 숨겨진 니즈를 발견하고 구체화하는 것은 기획자의 몫입니다.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근무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많은 헤비 유저들이 "PC처럼 복잡하고 전문적인 차트 분석 도구를 모바일에도 넣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들의 VOC는 매우 구체적이고 논리적이어서, 당장이라도 반영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데이터로 확인한 대다수 모바일 유저의 행동 패턴을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유저는 복잡한 지표 대신, 직관적인 '현재가'와 '변동률'만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헤비 유저들의 VOC에만 집중해 모바일 화면을 복잡한 도구들로 채웠다면 어땠을까요? 대다수의 라이트 유저들은 "앱이 너무 어렵다"며 피로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말과 행동의 간극으로 데이터를 채우다

심리학에는 '태도와 행동의 불일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과 실제 행동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프로덕트 분석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PM은 고객의 'VOC'의 내용을 참고하되, 결정은 고객의 '행동 패턴'이 남긴 흔적을 봐야합니다. 예를 들어, "검색 필터를 더 만들어주세요"라는 VOC가 접수되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 바로 필터 기능을 개발하는 것은 1차원적인 접근입니다. PM이라면 로그 데이터를 먼저 열어봐야 합니다.


데이터를 뜯어보니 고객들이 검색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검색어를 수정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이때 필요한 솔루션은 '필터 추가'가 아닌, '검색 알고리즘의 정확도 개선'일 수 있습니다. 고객은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어서 나름의 해결책(필터)을 제시했을 뿐,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던 셈입니다.


PM은 '주문받은 사람'이 아니라 '진단하는 사람'

물론 VOC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VOC는 우리 서비스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강력한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PM은 그 신호를 해석하여 올바른 처방을 내리는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


"머리가 아프니 진통제를 달라"는 환자의 말에, 의사는 무조건 진통제를 주지 않습니다. 문진을 통해 그것이 단순 두통인지, 아니면 다른 질병의 전조 증상인지를 판단합니다. 기획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버튼을 크게 만들어주세요"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왜 크게 만들고 싶으신가요?"라고 되물어야 합니다. "잘 안보여서요" 혹은 "자꾸 옆 버튼이 눌려서요"라는 대답 속에 진짜 문제(가독성 혹은 터치 영역 간섭)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고객이 '원하는 것' 너머의 '필요한 것'을 향해

고객의 요청을 거절하거나 보류하는 것은 PM에게도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요청을 수용하여 기능이 비대하진 서비스는, 결국 누구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복잡한 결과물이 됩니다.


진정으로 고객을 위한 PM이라면, 고객이 뱉은 말을 그대로 받아적기보다 그 이면의 의도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고객조차 말로 표현하지 못한 그들의 불편함을 찾아내어, "맞아,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였어" 라고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발견하는 기획'의 본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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