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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프 KIMWOLF May 30. 2018

"차 한잔 하실래요?"

<안상화 안무> 한국 전통 무용 공연의 새로운 흐름



'전통문화라는 거, 그거 촌스럽고 뻔하고 지루한 그런 느낌인 거 아냐?'


_아니, 전통과 고전은 다르다. 고전(古典)은 이미 완성되어 박제된 것이지만, 전통(傳統)은 끊임없이 계승되어 현재 통용되는 상태를 뜻한다. 전통은 완성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상태로 그 형태를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살아있어야 하는 존재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고전의 답습만을 중요시하게 되면 촌스럽고, 뻔하고 지루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이나 섞어 내거나 과한 변화를 추구하게 되면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니 전통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우리의 것이라는 이름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괴상한 것이 되어버린 전통을 많이 봐 왔지 않은가. 안상화의 '차 한잔 하실래요?' 공연은 ‘전통’과 고전을 설명 하기에 좋은 한국무용 ‘전통’ 공연이다.



1. 차를 우려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_공연 시작과 함께 무대 중앙에 어여쁘게 앉아 차를 우려낸다. 다도 법에 따라 정성스럽게 시간을 들여 우려내는 그 박자에는 서두름이 없다. 잔을 쥐는 손 모양새에서부터 안무가가 직접 관객 사이를 거닐며 차를 건네는 모습이 직선에 가까운 은근한 곡선의 모습이다. 한국적인 아름다움. 여백과 선, 정중함과 기품이라는 것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에서만 느낄 수 있다. 예를 다하는 모습에 관객으로서도 예를 갖추게 된다. 


2. 찻잔 속에 들어온 느낌


_무대는 원형 구조로. 원래는 원형으로 설계된 극장은 아니지만, 관객을 원형으로 배치하고 그 속에 무용수를 두는 구조로, 쉽게 설명하면 벤츠 엠블럼 모양의 형태이다. 원형 안의 엠블럼 여백 부분에 관객이 앉게 되는데 무용수와의 거리가 스칠 듯 가까워 공연 내내 무용수의 숨소리와 떨림이 그대로 느껴진다. 원형의 찻잔 안에 찻잎과 물이 닿아 차가 우러나오는 것처럼 다른 관객의 표정을 지켜보며 공연을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3. 모든 것이 살아있다


_전통 타악기 현악기, 목소리, 조명, 모든 요소를 현장에서 만들어 낸다. 연주원들을 무대 정면에 배치하고 은은한 조명을 비추어 적절한 박자에 모든 것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명은 은은하게 물결치고 모두가 서로 눈을 마주치고 호흡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피아노를 넣은 것은 정말로 잘한 선택이었다. 동서양의 악기를 섞는 것은 자칫 위험한 시도일 수 있겠으나, 이번 공연에 절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피아노 덕분에 조금 더 쉽고 깊게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다. 


4.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_찻잎은 그리 쉽게 피어나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 철이 들 때야 피어나는데, 공연 또한 사계절을 지난다. 어린 무용수들은 무대 위의 사계절을 분주히 움직이고, 안무가는 저 멀리서 고운 선을 유지한 채 그들을 지켜보다가 그러다가 아마도 한겨울, 앙상하게 매달린 무용수에 차 한잔을 건네는 모습. 그 모습에서 안무가의 의도가 보인다. 전통이란 참으로 힘겨운 걸음이다. 계절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라나는 것, 여전히 살아있는 것, 차근차근하게, 정중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5. 차 한잔 하실래요?


_밥 한번 같이 먹자. 술이나 한잔하세 와는 다르게 "차 한잔 하실래요?" 에는 다른 격조와 기품이 있다. 어찌 보면 꼭 필요하지는 않은 일, 마음의 여유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일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우린 차 한잔을 대접 받는 일, 그간의 세월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고전의 재료를 가지고, 전통이라는 방식으로 관객이라는 맑은 물에 천천히 우려 낸 좋은 한잔의 차와 같은 공연.  잘 자라서 잘 말린 찻잎이 되고 싶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차 한잔 인사를 건네리. 


전통은 차와 같다. 오랜 시간을 지나 지금에야 비로소 살아 숨쉬는 것이다. 고전 이라면 두고 두고 음미 할 수 있겠지만 전통은 지금 그 맛을 보지 않으면 고유의 맛과 온기를 느낄 수 없다. 안상화의 이번 시도는 한국 무용의 섬세한 모험이자 전통 한국 무용으로의 품위있는 초대이다. 





4th DanceMUA 

[ 차 한잔 하실래요? ] 


안무 & 연출 : 안상화 
조안무 : 백진주

아티스트 : 김지은, 김유진, 남수빈, 이재인, 한지향, 차수현


기획 & 프로듀서 : 이희연 

음악감독 &작곡 : 김현섭

뮤지션 피아노 : 김현섭

대금 : 백다솜 

거문고: 강인아

타악 : 조한민, 이민형
정가: 조의선

조명디자인 : 김진우

사운드디자인 : 김주현

의상: 김민주

무대감독 : 이동민

홍보 디자인 : 신소희 ( Buero Shin Shoee )

사진 : 박귀섭 

영상 : 김휘성


2018. 5. 25(금) 오후 8시 , 26일(토) 오후 3시, 6시 

KOCCA 콘텐츠 시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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