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 시리즈>의 대화에 대한 소고 - 3
40대의 현실, 익숙함을 극복하는 지혜, BEFORE MIDNIGHT (2013)
다시 9년이 흘렀다. 어느새 서로가 익숙한 부부가 된 제시와 셀린느. 그들은 이제 조금은 여유로워진 여느대 중년부부처럼 보인다. 제시는 작가로서 궤도에 올라섰고, 셀린느는 꽤 괜찮은 직장에서 제안을 받은 상태. 그들은 여느 부부처럼 좀 더 일상적이고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그리곤 사소한 문제로 다투게 된다.
“이렇게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들은 어느덧 깊은 대화가 없는 부부가 되고야 말았다. 언뜻 18년 전 그들이 처음 만났던 기차 안의 소란을 일으키던 중년 부부가 그들과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일까. 둘은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오해하고, 말꼬리를 잡고, 쌓였던 감정의 앙금을 드러내고 좀처럼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켜켜이 쌓인 승패의 전적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 마냥.
서로가 노력하고 대화하지 않아도 문제없이 유지되는 관계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임을. 설렘과 그리움이 익숙함이 되는 이 기나긴 과정 속에서 그들은 이 점을 어렴풋이 깨달아왔던 것 같다. 삶의 명확함을 추구하는 젊은 날의 생각들을 담은 ‘Before Sunrise’에서 시작해, 인생의 위기에서 재회해 새로운 인연을 맺는 ‘Before Sunset’, 서로의 가치를 되새기는 중년의 ‘Before Midnight’까지. 그들의 대화는 흥미롭고 애잔하며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Before 3부작’은 삶과 죽음, 그리고 그사이의 시간과 차이를 메울 수 있는 소통을 대화로 보여준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남녀일수록 이 노력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소통의 해답은 그들의 대화 속에 있다. 제시는 화를 삭이며 바닷가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는 셀린느에게 웃으며 말을 건넨다. “잊었나 본데, 기차에서 만나 달달한 사랑을 나눈 남정네가 바로 나라고” 그들의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나는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할 것인지에 대해 20여 년 동안 제시와 셀린느가 그 과정을 통해 힌트를 넌지시 준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