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 시리즈>의 대화에 대한 소고 - 2
Before Sunset 비포 선셋, 파리에서 다시 만난 30대의 그들
30대의 양면, 불안정함과 가능성, <Before Sunset>
9년 후,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된 제시는 출판 홍보 여행 중, 파리의 한 서점에서 셀린느를 만난다. 9년 만이다. 미국행 비행시간을 코 앞에 두고, 셀린느와 파리의 길을 걸으며 대화를 시작한다. 환경운동가가 된 셀린느는 9년 전과 같이 여전히 아름답다. 9년 전 그들은 결국 다시 만나지 못했다.(혹은 않았다.) 서로에 대한 오해와 미안함, 그리고 긴 시간 속에서 그들은 이미 또 다른 짝이 있는 상황. 미묘하게 보이지 않는 벽이 남아있을 수밖에.
9년 전의 제시에게는 성장 과정에서 자리 잡았을 법한 냉소주의가, 셀린느에게는 낙관주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30대가 되며 현실 속 남녀로 돌아온 듯하다. 셀린느는 더 이상 9년 전처럼 제시의 유령 이야기, 손금 보기 같은 미신, 로맨스의 환상을 믿지 않는다. 그녀가 꾸었던 꿈과는 달랐던 현실을 깨닫게 된 것 같다. 환경운동이라는 이상을 좇아 왔지만 현실이 되는 순간 남은 것은 실망과 비관뿐인 것처럼.
제시의 현실도 녹록치는 않다. 안정적인 가정을 둔 촉망받는 작가이지만, 20대의 제시가 셀린느에게 보였던 열정이나 장난스러운 모습보다는 일종의 권태가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30대는 어떨까. 20대 때 꿈꿔왔던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점차 무르익어가거나 구체화되어 갈 시기이지만, 이에 따르는 약간의 만족감과 실망감이 공존한다. 취업과 결혼이라는 큰 단계 앞에서 자신의 노선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공존한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조금 더 생각이 많아지고 일단 시작하기보다는 그 끝을 가늠해보기 위해 주저하는 순간순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Before Sunset>은 청춘을 지나 중년을 준비하는 연령대에 겪는 30대의 정서를 오롯이 담고 있다. 장소와 시간이 변했고, 그들에게 쌓인 시간과 오해는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과는 다른 종류의 벽과도 같다. 오히려 더 두꺼워 보이고, 완강히 두 남녀가 그 벽에 기대 버티고 있는 듯하기까지 하다.
제시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셀리느는 흐느끼기 시작한다.
"9년 전 네가 나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 버린 것 같아" 제시는 셀린느를 다독인다. 9년 전 그토록 반짝거렸던 20대의 청춘은 이제 30대가 되어 달콤한 듯 쌉싸름한 듯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대화를 놓지 않는다. 30대가 된 그들의 소통은 좀 더 복합적이지만 은유적이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30대가 되어 그들의 나이와 비슷한 시기에서 그들의 대사는 조금 더 와닿으면서, 조금 더 아프고, 감미롭기도 하다.
(다음 편에서 이어서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