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묻힌 잔혹함의 무게
믿을만한 사람이 추천해 준 책이었다. 제주에 연이 있으니까 한 번 읽어보라고. <소년이 온다>와 비슷하게, 인간이 저지른 어두운 역사의 내용이라고. 해가 바뀌고, 겨울이 되고 이 책을 읽는다.
책은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 '새', 2부 '밤', 그리고 3부 '불꽃'.
1부인 '새'에서는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뒤 계속 같은 꿈을 꾸는 '나(경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는 지난 사 년간 몇 개의 사적인 이별을 하였고, 그 이후 살아갈 의지를 잃는다. 유서를 쓰다가, 한 빈칸을 채우지 못한다. 이 유서를 받아 그대로 행해줄 수신인 자리를.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어질러진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살아가기 시작한다.
12월, 동료이자 친구인 '인선'에게서 문자를 받는다. 지금 와줄 수 있냐는 '인선'의 말에 '나'는 봉합수술 전문병원으로 향한다. 그곳 병실에, 목공방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인선'이 누워있다. 매일, 이십사 시간 동안, 삼분에 한 번씩, 봉합 부위 안으로 바늘을 찔리며. 잘린 신경 위쪽을 살리기 위해.
'인선'은 제주 집에 가달라며 부탁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키우는 새가 물을 마시지 못해서 죽을 거라고. 지금 당장. '나'는 당황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울에 있는 자신에게 부탁하는 '인선'을 보며. 그 이후로 1부는 폭설이 내리는 제주를 배경으로, '경하'가 바람과 눈을 동반하는 날씨에 험난한 길을 뚫고 외딴곳에 위치한 '인선'의 집으로 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2부인 '밤'에서는 서울, 병실에서 상처 부위에 바늘을 찔리며 누워있어야 할 '인선'을 그녀의 집에서 만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날의 이야기를. 1948년 4월 3일, 그날부터 몇 년간 행해진 인간성이란 단어를 저 밑바닥 아래까지 끌어내린 행위들을.
3부 '불꽃'. '경하'가 꾸는 꿈을 재현하기 위해 '인선'은 미리 그 장소를 골라놨었다. '인선'은 '나'에게 가자고 한다. 그 검은 밤에, 눈이 오는 추운 날에, 자신들이 나무들을 심을 땅에.
책의 첫 부분,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뒤부터 악몽을 꿨다던 내용은, 너무나도 직설적으로 한강 작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의 주인공인 '경하'의 이야기 전체가 한강 작가 본인의 내용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소년이 온다>를 낸 뒤의 한강 작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
발을 멈춘 것은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로 자작자작 물이 밟혔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는데 어느 틈에 발등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믿을 수 없었다.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은 바다였다. 지금 밀물이 밀려오는 거다.
(...)
시간이 없었다. 이미 물에 잠긴 무덤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위 쪽에 묻힌 뼈들을 옮겨야 했다. 바다가 더 들어오기 전에, 바로 지금. 하지만 어떻게? 아무도 없는데. 나한텐 삽도 없는데. 이 많은 무덤들을 다 어떻게. 어쩔 줄 모르는 채 검은 나무들 사이를, 어느새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가르며 달렸다.
'나'는 꿈을 토대로, '인선'과 함께 검은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었다. 다만, 어느 날 꿈을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한 '나'는 '인선'에게 그 프로젝트를 그만두자고 한다. 하지만 '인선'은 계속해서 준비한다. 그녀가 트럭에 실려 병원으로 가던 중, 의식이 들어 손가락의 고통을 까무러치게 느끼고 있을 때, '나'의 책이 떠올랐다며, 단순히 그 도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슷한 일이 일어난 모든 곳의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그 꿈은 '나'의 것이었지만, 결코 '나'의 것만이 아니었다.
이전에 '인선'이 어렸을 때 가출했던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가 어렸을 때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그때 국민학교 졸업반이던 엄마랑 열일곱 살 이모만 당숙네에 심부름을 가 있어서 그 일을 피했다고 엄마는 말했어. 다음날 소식을 들은 자매 둘이 마을로 돌아와. 오후 내내 국민학교 운동장을 헤매 다녔대.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어린 살얼음이 낀다는걸.
(...)
오직 그 눈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이야. 수십 년 전 생시에 보았고 얼마 전 꿈에서 보았던, 녹지 않는 그 눈송이들의 인과관계가 당신의 인생을 꿰뚫는 가장 무서운 논리이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해서 엄마는 말했어.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헌디 너가 그날 밤 꿈에, 그추룩 얼굴에 눈이 히영하게 묻엉으네... 내가 새벡에 눈을 뜨자마자 이 애기가 죽었구나, 생각을 했주. 허이고, 나는 너가 죽은 줄만 알아그네.
그 눈 이야기는 '인선'의 어머니에게서 '인선'에게로, '인선'에게서 '나'에게로 이어진다. 눈만 내리면 생각이 난다고,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날의 어린 여자아이 둘이 생각이 난다고.
'인선'의 새를 구하기 위해 '나'는 어려운 길을 나아간다. 마치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나'를 막아선다.
잠들고 싶다. 이 황홀 속에서 잠들고 싶다. 정말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새가 있어.
아니면 오히려 그곳에 도달하기를 돕는 것이었을까.
그곳에서 그날의 진실을 듣는다. 자그마한 키에 차분한 노인인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인선'의 어머니가 어떻게 그날 헤어진 외삼촌을 찾아다녔는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인선'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치매에 걸렸었다. '인선'을 당신의 죽어가는 동생이라고, 혹은 언니라고, 또는 낯선 사람으로 여겼었다. 손목을 붙잡고 구해달라며, 밖이 얼마나 춥던 집 밖으로 나가려는 어머니를 '인선'은 땀이 나도록 상대했다. 단순히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그 끝에 겨우 누워 그 옆에서 눈을 붙일 때,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어머니는 '인선'을 깨웠다.
지척에서 입을 벌린 혼돈 때문에. 잠드는 순간 모든 연결고리를 다시 놓쳐버릴까 봐. 제발 삼십 분 만이라도 이어 자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어.
도와주라. 잠들지 말앙. 나 도와주라 인선아.
그러다가 잠든 어머니를 볼 때마다 '인선'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어떻게 당신을 내가 구해.
'인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비극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인선'은 자신이 변형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는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
이걸 읽고 나서야 훨씬 이전에 '경하'가 '인선'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을 왜 다음과 같이 서술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기쁨과 상대의 호의에도 마음을 놓지 않으며, 다음 순간 끔찍한 불운이 닥친다 해도 감당할 각오가 몸에 밴 듯한, 오래 고통에 단련된 사람들이 특유하게 갖는 침통한 침착성으로.
그렇게 '인선'은 '인선'의 어머니와 비슷해진다. 어머니가 치매가 심해졌을 당시에 이야기.
장사처럼 힘이 세진 엄마가 숨을 못 쉬도록 나를 껴안을 때는 다른 길이 없어서 마주 껴안았어.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집의 어둠 속에서, 그 으스러지는 포옹이 계속될수록 점점 엄마와 나의 몸을 구별할 수가 없게 되었어. 얇은 피부, 그 아래 한줌 근육, 미지근한 체온과 혼란이 나의 것들과 뒤섞여서 한덩어리가 되었어.
그렇게 넘어온다. 그리고 다시 넘어간다. '나'에게로. 책의 결말부, 프로젝트를 위한 장소를 보여주다가 '인선'은 눈 속에 앉는다.
...여기서 잠들면 안 되는데. 인선이 속삭였다.
잠깐 눈 좀 붙일게. 정말 잠깐만.
눈의 격벽 위로 그녀가 들어올려 내민 손바닥에 종이컵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팔을 뻗어 그걸 받아들었다. 초는 손가락 반 마디만큼도 남지 않았지만 종이컵 전체가 따스했다. 그게 불꽃의 열기 때문인지 인선의 체온 때문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러다 커다란 눈송이에 촛불이 꺼진다.
괜찮아. 나한테 불이 있어.
(...)
아직 사라지지 마. 불이 당겨지면 네 손을 잡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
하지만 네 손이 잡히지 않는다면, 넌 지금 너의 병상에서 눈을 뜬 거야. 다시 환부에 바늘이 꽂히는 곳에서. 피와 전류가 함께 흐르는 곳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한강 작가가 2024년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강연 중,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의 내용.
한강이 20대 중반이었을 때 일기장 맨 앞 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소설을 써나가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 젊은 야학 교사인 '박용준'의 일기를 본다. 그날, 군인들이 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가 살해되었던 그 남자는 마지막 밤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강은 질문을 뒤집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작가에게 이런 소설을 왜 자꾸 쓰냐고 묻는다면, 반대로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이런 소설을 왜 자꾸 읽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내가 양심이 있는 인간이고 싶은 마음임과 동시에, 살아가고 싶은 것이고. 내 머리 위로, 뺨 위로, 손 위로 떨어져 녹는 아름다운 결정을 가진 눈이, 몇십 년 전 보리밭에 누워 싸늘하게 식은 사람들의 위로 내려 쌓인 눈과 다른 게 아닐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며,
그들과 작별하지 않기 위함이다.
왜인지 모르게 이 책을 마무리할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가 너무 어려웠다. 책의 후반부, 결국 '인선'의 어머니가 '인선'의 외삼촌의 뼈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는, 실패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깨닫는다.
내 손과 함께 흔들린 불꽃의 음영에 방안에 모든 것이 술렁인 순간 나는 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것인지 물었을 때 인선이 즉시 부인한 이유를. 피에 젖은 옷과 살이 함께 썩어가는 냄새. 수십 년 동안 삭은 뼈들의 인광이 지워질 거다. 악몽들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거다. 한계를 초과하는 폭력이 제거될 거다. 사 년 전 내가 썼던 책에서 누락되었던, 대로에 선 비무장 시민들에게 군인들이 쏘았던 화염방사기처럼. 수포들이 끓어오른 얼굴과 몸에 흰 페인트가 끼얹어진 채 응급실로 실려온 사람들처럼.
'인선'이 부인했던 건, 없어질 내용들, 누락될 내용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 본인도 <소년이 온다>에서 누락되었던 것들을 고백하는 것처럼. 매개체가 어떻게 되던, 그 모든 내용이 들어갈 수 없다는 필연적인 사실에서 기인한 두려움. 이 구절을 읽고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망설였다. 두려웠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해도, 나의 이 글로 또 책의 어떤 부분을 지워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러니 꼭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한다. 내가 이 글에서 누락시킨 경험을 하길 바란다. 두 번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결말을 알고 볼 때 더 감동적인 영화가 있는 것처럼.
조용히 내리는 눈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맞는 이 눈은 어디서, 언제부터 왔을까. 그들이 맞았을 비, 혹은 눈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제주에서 걸었던 길을 생각한다. 따스한 햇빛이 내렸던 그곳에는 어떤 잔혹함이 묻혀 있을까. 내가 무엇을 밟고 나아가고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