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의 시작
수영이 그렇게 좋다고 했다. 마흔이 되더니 이르게 오십견이 왔다는 여고시절 친구가 수영을 시작했다고 했다. 1년이 넘도록 꾸준히 수영을 한 이 친구는 가끔 안부 전화를 할 때마다 수영 예찬을 해댔다. 어깨도 많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아이들과 남편까지 주말이면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고 운동하는 효과까지 있다며, 적극 추천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온 가족이 수영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게 참 좋아 보였다. 한편, 매주 만나는 글쓰기 모임의 멤버 중 한 사람도 수영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물을 무서워한다며, 잘할 수 있으려나 걱정하던 수린이는 야금야금 수영의 묘미를 늘어놓더니, 수영에 미친 자, 수친자가 되어 있었다.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없는 나였다. 마른 몸의 10대를 거쳐, 음주가 시작되며 조금씩 살이 붙고, 결혼, 출산으로 이제는 날씬한 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나는 운동이라면 손을 내젓는 사람이었다. 뭐 그냥 생긴 대로 살아도 되지 않나, 이 나이 들어 몸매를 다시 가꿀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주부로 사는 동안 나는 가족에게 관심이 쏠려있었지, 나에게 어떤 돌봄이나 투자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안위와 미래가 전부인 것처럼 살면서, 내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닌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던 나였다.
마흔이 되고, 지나온 삶을 찬찬히 되짚어 보게 되는 사십춘기를 겪으면서 나의 내면에 제2의 '나'가 나타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것 같은 결정을 할 때가 종종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운동이었다. 대중적인 운동이 됐지만 나에겐 생소한, 필라테스를 지인과 함께 덜컥 시작했었다. 혼자서는 꾸준한 운동이 어려운 나를 알기에 냉큼 저질러버린 것이었다. 뭐든 신중하게, 이후의 상황을 생각해 보고 결정하는 내 성격에 나 스스로도 놀란 도전이었다. 그러나 쫄쫄이 레깅스를 입고 첫 수업을 민망해하던 내가 무색하게도, 내 몸에는 내 인생 처음으로 아주 조금씩 근육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수영과의 시절 인연이 나에게 찾아온 걸까. 친구와 지인의 '즐기는 수영'을 부러워하던 나에게 동네 언니가 수영을 배우자고 제안해 왔다. 그러나 부러워만 하고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남들이 말하는 물에 대한 공포나 트라우마 같은 건 아니었다. 20년 전, 20대 시절 몇 개월 정도 수영을 배웠던 경험이 오히려 장애물로 떡 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물속에서 호흡도 연습하고, 발차기도 연습하고, 팔 돌리기도 연습한 후 이 모든 것을 합체시켜 자유형을 하되 키판을 놓았던 때. 폐활량도 부족하여 숨이 가쁜 와중에 고개 돌려 호흡을 해야 하는 그때. 나의 기억은 코와 입이 물속에서 꼬르륵하는, 딱 그 장면을 넘기지 못한 상태로 20여 년을 멈춰있는 상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거 트라우마 맞나?
며칠간 싱숭생숭, 주저주저하다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그 '나'가 등장한 모양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수영 기초반에 등록을 하고 수영복을 주문하고 있었다. 핑계를 대자면, 기초반은 항상 개설되는 게 아니라서 자리 있을 때 얼른 들어가야 한다는 급박함, 여럿이 할 때 같이 해야 몸을 움직이는 나를 자각한 것 등 일테다. 나도 많이 변했네, 생각하면서도 실행에 옮기고 있는 내가 참 낯설고 어리둥절했다. 수친자 지인은 나의 수영 소식에 적극 지지하는 응원을 보내왔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한 저항감, 불안한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저항감과 함께 실행에 옮기고 있는 내가 역설적이게도 한 몸 안에 있었다. 꼬르륵하기 싫은데, 숨차게 힘들 텐데, 그래도 할 때 같이 저질러야 운동하지, 이 펑퍼짐한 몸으로 수영복은 어떻게 입지...... 와글와글 참 말도 많다.
낯선 상황, 새로운 도전에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늘 도전해 보자고 말해주던 것은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었을까.
"해보자. 해보고 안되면 그만하면 되지. 실패에서도 얻는 게 있어."
인정한다. 책에서 밑줄 그어두었던 것 같은 말을 아이에게 읊어줄지언정 나에게 적용하는 것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 자각과 언행일치가 안 되는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증명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주저주저하는 것을 도전해 보는 용기를 내보는 것, 그동안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조언해 주던 시간은 나의 내면에 이 말을 내재화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쭈뼛쭈뼛 수영 강습 첫날이 되었고, 20년 전일지라도 수영장에 다녀본 가닥이 있으니 나는 초보 아닌 초보였다. 기본적인 숨쉬기 방법과 발차기 연습으로 비교적 무난한 첫 수업을 끝내고 나서도 나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여전히 내 시점은 자유형 하며 호흡하는 꼬르륵 순간에 대한 두려움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날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울 뿐이었다.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나를 틀에 밀어 넣기. 필라테스에서 수영으로 이어지는 나의 도전이 나를 또 한 번 성장시킬 것은 분명하다. 수친자 지인이 쓴다는 수영에세이를 써보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에서 얻는 것은 건강, 성공 혹은 실패 경험 외에도 글 쓰며 나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를 성장시켜 줄 수영의 세계에서, 자유롭고 우아하게 대양을 누비고 다니는 고래가 되어보자고 꿈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