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운동 욕심도 있었다고?
여성에게만 찾아오는 그날이 시작되었다. 야심 차게 수영을 배워보겠다고 결심하고 겨우 한 번 수업을 참석했을 뿐인데 강제 결석을 당하는 이 기분을 남자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 20년 전 수영 배울 때에는 없었던, 반가운 제도가 있긴 했다. 이런 불합리한 점을 감안해 여자 수강생에게는 강습비에서 5000원을 할인해 준 것이었는데, 우리나라도 좋아졌네, 하고 좋아했지만, 막상 남자들은 성실하게 진도를 나가고 있을 때 여자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상황에 화가 났다. 얼마 전에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책을 읽고, 독서기록으로 쓴 글에 이런 말을 썼더랬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여성들이 느끼는, 모성 때문에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모성 때문에 차별받는 사회. 남성과 동등하게 능력으로 인정받고자 하지만, 여성이라는 본질적인 이유로 겪게 되는 차별적 상황에서 평등을 부르짖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 2만 년 전의 지구에도 존재했겠다는 상상. 그 시공간을 넘어선 공감과 유대감이 아득하고 애틋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인류의 역사 이래 여성의 권리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인정은 하지만, 애초부터 동등한 조건이 아니니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는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기회에서부터 이미 균등하지 못한 상황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못하고 흙수저, 금수저로 대변되는 기회 불균형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데까지 이어졌다. 수영장에 못 가는 일주일 동안 남녀평등, 부의 불균형 문제까지 머릿속을 맴돈 것은, 수영에 대한 나의 열정이 크다는 증거였을까.
국경일 등으로 여차저차 열흘 만에 수영장에 갔더니, '오랜만에 오셨죠?' 뒤로 가라고 나란히 줄 선 수강생들의 맨 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행인 것은, 내가 수영 쌩초보는 아니라는 점과 평일 낮 시간에 수영을 오시는 몇 명 안 되는 남자분들은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어르신들이라는 점이었다. 그 사이 진도가 꽤 나가서 키판을 잡고 정면 호흡을 하며 발차기를 했다. 제일 마지막 순번으로 두어 바퀴를 돌고 나니 선생님이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5번째 순번.
아니, 학교에서도 성적 순위를 안 매기는 요즘 시대에 수영 강습도 1,2,3등으로 나래비를 세운다고? 15등 맨 뒤에서 5등으로 진급해서 어깨는 으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반감이 생기는 건 사실이었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 여자 쌈닭인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리 말해 두건대, 나는 식당에서 서비스에 불만이 있더라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웬만하면 클레임은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수영 일기만큼은 내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롭게 써보기로 했음을 밝혀둔다.
5등으로 두어 바퀴 돌아보니, 나름 좋은 점이 있었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자세가 좋은 사람일 테니, 배우는 속도가 다른 수강생들은 본인의 순서를 기다리면서 내 앞사람을 순서대로 인식하며 자세를 유심히 보고 배우면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은근히 경쟁심이 생기는 것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요즘 학교에서 학생들을 성적뿐 아니라 다양한 재능으로 인정해야 된다는 목적으로 성적 순위를 안 매기는 것처럼, 정말 운동과 친하지 않고 수영에 재능이 없어서 줄의 뒤쪽에서만 맴돌게 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방식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내가 아니란 법도 없고 말이다. 여전히 나는 5등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얼마 후에는 저 뒤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의 수업 마지막으로 물밖에서 팔 돌리기 연습이 있었다. 먼저 하나, 둘, 셋, 넷에 맞추어 손을 엉덩이 옆에 붙였다가, 어깨 옆으로 나란히 뻗었다가, 귀에 붙였다가, 다시 앞으로 뻗어내리는 동작을 연습했다. 다음으로 같은 동작을 하되 어깨를 정면 방향이 아니라 팔이 뻗어나가는 좌우 방향으로 틀면서(나중에야 알게 된 용어로는 '롤링') 팔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움직이는 부위가 팔 하나에서 팔과 어깨, 두 개로 늘어났을 뿐인데, 말로 하는 순서와 몸이 움직이는 순서를 동일하게 맞추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나는 수영을 처음부터 배우는 중이다'를 되뇌면서 하나, 둘, 셋을 세면서 열심히 연습했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20년 전 강습 때는 팔 돌리기 할 때 어깨를 틀면서 하라는 지침은 없었던 것 같다는 기억을 해냈다. 어깨를 틀어 몸을 옆으로 돌리는 것은 자유형을 할 때 더 자연스러운 동작을 위해 필요한 부분인 것 같은데, 이것은 선생님에 따라 알려주는 시점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강생이면 수강생답게 배우는 것에만 집중하면 될 일이지, 선생님의 교육 방식에까지 생각이 미치는 건 무슨 오지랖인지.
겨우 두 번 수업을 했을 뿐인데, 슬그머니 내 마음속에 고개를 드는 생각이 있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마스터해보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아직 한켠의 얕은 유아풀에서 연습하는 동안 정식 레인에는 초급, 중급, 고급부터 교정, 연수, 마스터반에 돌고래에 버금가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나도 저렇게 마스터하고 싶다는 마음이, 새싹이 고개 내밀듯 삐죽이 나온 게 보였다. 파릇파릇하다. 희망과 열정과 순수한 욕심이 어우러져 있는 색이다. 그러나 새싹의 저 뒤쪽 한편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웅크리고 있는 것도 보였다. 누구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소심하고 부끄럽게 웅크린 나약한 어깨. 나의 수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선과 악이 싸우듯이, 새싹과 나약한 어깨의 싸움은 누가 이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