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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전

머리로 하는 수영, 몸으로 하는 수영

by 김글인 Dec 20. 2024

갑자기, 토독토독, 낯선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점점 커져 투둑, 투두둑 크게 동굴을 울리는 것만 같은 소리가 되더니, 저 멀리서 저수지가 터져 와르르 무너지는 듯이 우르릉 우레와 같은 절정에 이르고 난 뒤, 갑자기 뻥! 현실로 돌아왔다.


엄마 뱃속에서 눈코입이 모두 양수로 차 있던 아기가 최초의 울음을 울 때, 세상의 소리가 갑자기 밀려 들어오는 기분이 이러할까. 물에 잠긴 동굴 속에서 갇혀있다가 이제야 현실 소음이 내 작은 동굴을 파고든다. 피곤한 몸을 거실에 뉘고 낮잠을 청한 참이었다. 물에서 몸을 움직여내는 것이 아무래도 체력소모가 있는지, 좀처럼 낮잠을 자지 않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눕자마자 얼핏 잠이 들었나 보다. 오늘은 오른쪽 귀에 물이 들어가는 바람에 수영 강습 중간부터 귀가 먹먹한 것이, 동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수강생 중에 귀마개를 한 분을 여럿 보았는데 이렇게 귀에 물이 들어가니 필요한 모양이다. 오후가 되도록 물이 빠지지 않아서 계속 답답했는데, 그래서 물에 잠긴 듯 웅웅 거리는 소리에 졸음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레 물이 들어간 오른쪽 방향으로 누워 있었으므로 귀가 뻥 뚫린 후에 귀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물이 통쾌하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일어나 보니 귀에서 흘러나온 물이 베개에 동전만 한 동그라미를 만들어 놓았다. 눈물 젖은 베개 아닌, 귓물 젖은 베개가 이렇게 반가울 일이던가.  어쨌거나 귀마개를 사야 하나 사야 할 모양이다.





오늘은 두 번째 순번으로 수업을 했다. 내가 더 잘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중간중간 결석하는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탓이다. 순번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 탓에 옆에 있는 분들이랑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는데 호흡하는 방법, 타이밍, 팔 돌리기 등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전에 수영을 잠시 배워본 적이 있다는 분이 조언을 해주었다.


"팔을 돌릴 때 반대쪽 팔과 몸을 앞으로 민다는 느낌으로 해보세요. 왼쪽 팔을 돌릴 때 키 판을 잡고 있는 오른쪽 팔을 앞으로 밀고, 마찬가지로 오른쪽 팔을 돌릴 때 키판을 잡고 있는 왼팔을 앞으로 밀고 하는 식으로."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왼팔을 돌릴 때 보이던 수영장 바닥, 그때의 느낌, 그때 내 오른팔은 뭘 하고 있었는지, 어깨가 왼쪽으로 틀어져 있었던지, 발차기는 힘껏 하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키판을 잡고 있는 오른팔을 밀어내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장난기를 다분히 가지고 있음이 얼굴에 보이는 젊은 남자 수영 선생님이 말했다.


"잡담하지 말고 연습하세요. 연습."

"잡담이 아니고요. 팔 돌리는 자세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이야기 나누고 있었어요."


그제야 선생님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의 자세나 노하우를 전해 듣는 것도 선생님만큼이나 도움이 된다. 전문가가 아닌, 초보자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소소한 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머릿속으로 내 몸을 떠올려본다.


'왼쪽 팔을 아래로 내려 물을 끌어모아 아래로 밀어내면서, 오른쪽 팔과 어깨는 앞쪽으로 쭈욱 밀어내면? 그러면 수영장 바닥을 향해있던 몸이 왼쪽으로 틀어지겠군!'


나는 몸으로 하는 것도 머리로 이해가 되어야 움직여지는 사람이라는 걸, 운동이라는 걸 해보면서 깨닫고 있다. 연애를 책으로 배운다는 우스갯소리랑 겹쳐 보여 운동 초보인 내가 한없이 작아 보이긴 한다. 그렇지만, 어떤 분야던지 이론을 섭렵한 후에 실전으로 다지는 법. 오른팔을 앞으로 쭈욱 밀면 머릿속에 떠올린 대로 몸이 옆으로 돌아가는지 실전으로 체크해 볼 차례다. 연애도 수영도 초보에겐 이론 공부가 먼저다. 이론 없이도 척척 해내는, 타고난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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