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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인 Jul 02. 2024

글 욕심

원래 욕심이 많은 사람이긴 하다. 뭐든지 잘하고 싶고, 완성도 있게 해내고 싶고, 남들보다 못한 게 있으면 조바심 나는. 그런데 나에게 이런 욕심도 있을 줄이야.


2년 전만 해도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던 내가 자기 계발서, 에세이, 소설 등 독서 장르를 거치면서 책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에 울고 웃고 감동하는 경험이 누적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다다르자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개체수만큼이나 다양한 인간군상들, 그 다양한 캐릭터들을 관찰하고 즐기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이제까지는 독서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자 목적이 되었다는 느낌이랄까. 이 책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고, 저 책도 어서 느끼고 싶다. 마음이 급하다.


그런데, 이 욕심이 가로막혔다. 독서하는 내가 기특해서, 책의 감상을 후일에까지 남기고 싶어서, 인상 깊게 읽은 책들은 독서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목표를 정해둔 지 대략 1년. 독서기록이 글 쓰는 연습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 읽으면서 느낀 내 감상을 풍부하게 넣어서 글 다운 글로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으로 자라난 것이다. 한 달에 한 권, 두 권 읽던 책이 최근 배 이상 늘어난 데다 독서모임의 순기능으로 좋은 책들을 추천받다 보니, 읽고 싶은 책이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책 읽는 속도가 독서기록의 속도를 추월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글 쓰는 속도가 글 읽는 속도를 못 따라가는 것이다. 완성도 있는 독서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 새로운 글과 인물들을 어서 만나고 싶은 욕심. 쓰는 욕심과 읽는 욕심, 둘 다 글 욕심이다.


지금 이 순간, 글 쓸 때의 나만의 습관대로 내 마음을 고스란히 펼쳐 텍스트로 옮기며 들여다본다. 마음속에서는 쓰는 것을 잠시 내려두고, 읽어내고 싶은 욕구에 집중해 보라고 소곤거린다. 다른 한편으로, '아니, 그래도 지금까지 써오던 독서기록을 중간에 멈춘다고? 그건 아니지. 잊었어? 난 완벽주의자야.'라고 나를 설득하는 목소리는 마음이 아니라 이성적인 머리다. 두 욕심의 출처가 다르네?


글을 쓰고 읽는 데 양방향 도구가 되어주는 너는 금전출납부가 아닌, 글 출납부?



아!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이 정리되는 것을 경험한다. 이 욕심과 저 욕심이 싸우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혼란스러움을 글로 쓰다 보니, 마음은 읽는 욕심을 부리고, 머리는 쓰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게 보인다. 언젠가부터 머리가 시키는 대로가 아닌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더랬다. 그러니 읽는 욕심에 집중해 볼까나? 그러나 평생 머리가 시키는 것을 하며 살아온 몸뚱이는 마음에게 순순히 져주지 않는다. 참 피곤한 인생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한 치의 양보도 하기 싫어하는 두 욕심을 달래기 위해서는 타협의 접점이 필요해 보이지만,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다. 내 안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우고 있는 글 욕심쟁이 둘을 화해시키는 이 글은 어떤 글인가. 쓰는 글인가, 아니면 내 마음을 읽는 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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