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척수염 환자다 (9)

실수도 감사

by 김춘영

입원 8일째 되는 날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깨어보나 10시 30분

다시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온다. 스마트워치 충전시킬 생각이 났다.

그런데 콘센트가 높은데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어찌어찌해서 잭을 꽂긴 했는데 줄이 짧아 시계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래서 옆에 장을 정리하고 휴지박스 위에 시계를 놓는 데 성공했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을 힘들게 5분 정도나 걸려서 해냈다

그래도 뿌듯하다.

내친김에 침대 난간을 잡고 무릎 끓어 커튼도 닫고

무릎 끓은 김에 기도도 하고...

다시 자보려고 누우니 어쩐지 뭔가 먹고 싶다.

차권사님이 사 오신 메디웰 뚜껑을 열고 마셨는데

와 지금껏 먹어본 환자유동식중 최고다.

있는 것 다 먹으면 사 먹자

쿠팡에서 검색하려고 무심코 메디웰을 옆에 놓고 휴대폰을 잡는 순간

밤 12시에 대형사고다

메디웰이 엎어졌다

끈적한 겔 상태라 휴지로 먼저 닦아내려고 휴지를 잡다가 휴지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스마트워치는 어디론가 팽개쳐지고...

어떻게 수습하지.

호출벨을 누를까?

휠체어가 가까이 있다면 가서 가져와 정리할 텐데...

대강 옆으로 치워 놓고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 상황을 적어놓자 하고 보니

베개가 안 젖어 감사

베개 위에 노트를 놓을 수 있어 감사

바지통 넓어서 흠뻑 젖었지만 살에 닿지 않아서 감사

한쪽으로 비켜 앉을 수 있으니 감사

등뒤에 형광등 있어서 감사

기대앉아 편하게 글 쓸 수 있어서 감사

펜이 좋아 글이 슬슬 슬 써지니 감사

감사 감사하는데

마침 그때 건너편 권사님 자다 일어나셔서 간호사님과 조무사님 불러서 같이 재빠르게 교체

건너편 권사님 감사

모두 잠자는 밤에 근무하며 환자들을 케어하는 간호사선생님 감사

간호조무사 선생님 감사

세탁한 이블 보송보송 감사

깨끗한 카버 감사

감사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밤이다.


아마 찾아보면 감사가 구석구석 더 있을걸

홍수가 아니라 밤 하는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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