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속에 스며든 돈의 그림자
나는 어떤 단어가 사용되는 용례를 살펴보면 그 나라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예로, 흔히들 ‘대한민국 사람들은 먹는 데 진심이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 예를 언어 용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밥은 먹었니?”를 인사로 물어보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미국도 일본도 인사말로 식사의 여부를 물어보지 않는다.
이런 다른 사람의 식사를 챙기는 인사의 유래는 그만큼 우리나라에 끼니를 못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 손님이 왔는데 밥을 안 먹었으면 없는 살림에도 무언가를 차려내던 것이 그 시절의 예의였다.
당시에는 미제 사건이었던 화성 연쇄살인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 이런 장면이 있다. 잡히지 않는 범죄자를 추적하는 형사 박두만(송강호)이 강력한 용의자 박현규(박해일)가 결국 DNA 감정 불일치로 풀려날 때, 박현규의 멱살을 잡고 말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
송강호의 애드리브로 만들어진 이 대사는, 아직 잡히지 않은 범인이 혹시 영화를 본다면 ‘이런 짓을 하고도 밥이 넘어가느냐’라는 일종의 죄의식을 자극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한다. 단순한 인사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밥’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끼니 그 이상이다. 대한민국 사람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말은 그 자체로 안부이자 위로이자 꾸짖음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먹는 것’ 그 자체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직 일본어 교사이던 시절에 잘 대답하지 못하는 학생의 질문이 있었는데 바로 이 질문이었다.
“쌤 ‘맛있게 드세요’는 일본어로 뭐예요?”
학생들과 급식실에서 마주치면 학생들은 대부분 “쌤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하고 나도 “맛있게 먹어.”라고 답한다. 당시 학생들은 일본어 교사인 나를 급식실에서 만나면 일본어로 인사를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쉽게 물어보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 간단해 보이는 말이 일본어로 잘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일본 사람은 밥을 먹기 전에 나에게 밥을 준 모든 사람과 자연과 신의 수고에 감사하는 의미로 “이타다키마스(いただきます)”라고 인사를 한다. 한국어로는 “잘 먹겠습니다.”라고 번역되는 이 말은 ‘받다’라고 하는 동사 “이타다쿠(頂く)”의 활용형으로 이 식사가 나에게 오기까지 수고한 사람과 자연과 신의 결실을 내가 잘 받겠다는 감사의 인사이다.
가끔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함께 식사할 때, 일본 사람이 이 인사말을 하고 밥을 먹으면 한국 사람은 ‘내가 밥을 사줘야 하나’ 하고 당황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사람은 혼자 밥을 먹어도 저 인사를 한다. 이 인사말은 꼭 밥을 사주는 사람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인사말은 지극히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일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식사에까지 관여하는 인사를 굳이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은 사실 명령 표현이기 때문에 일본어로 직역해서 말하면 한국어에서 느껴지는 상냥함이 남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먹으라’는 강요처럼 들린다.
이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으로는 ‘Enjoy your meal’ 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도 식사를 즐기라는 것이지 그게 꼭 ‘맛’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콕 찍어 ‘맛있게’를 강조한다. ‘한 끼를 먹어도 맛없는 걸 먹느니 안 먹는 게 낫다’라고 주장하는 한국 사람도 꽤 많다.
그리고 한국 사람은 ‘먹는다’라는 단어를 너무 사랑한다.
우리는 밥도 먹고, 약도 먹고, 나이도 먹으며, 욕도 먹고, 1등도 먹고, 챔피언도 먹는다. 일본어에서는 밥은 먹는 것(타베루, 食べる)이며, 약은 마시는 것(노무, 飲む)이고, 나이는 ‘취하다’라는 뜻의 ‘토루(取る)’를 쓰며, 욕은 듣는 것(키쿠, 聞く), 1등과 챔피언은 되는 것(나루, なる)이다.
영어 ‘eat’도 우리나라처럼 다양하게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이 ‘먹는다’라는 단어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더불어 이 ‘먹는다’라는 행위도 말이다.
최근에 학생들이 사용하는 말의 변화를 보면, 경제 용어, 이해득실 등을 나타내는 말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걸 통해 대한민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얼마나 커다랗게 ‘돈’이라고 하는 것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 갑과 을의 등장
제일 처음 위화감을 느낀 표현은 ‘갑’과 ‘을’이라고 하는 말이 일상 용어로 자리 잡았을 때였다. 2013년쯤, 학생들이 이런 말을 종종 사용했다.
“개가 갑이잖아요. 개가 하라면 해야 해요.”
갑자기 학생들의 입에서 ‘갑’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학생들이 사용하는 새로운 단어로, 관계의 주도권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말인 줄 알았다.
기억력이 그렇게 좋지 않은 내가 이 표현이 자주 사용되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유는 아이유(IU)의 ‘을의 연애’라는 노래가 이즈음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연애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마음이 떠난 남자에 휘둘리는 자신을 ‘을’이라고 표현한 이 노래가 발표되었던 시기가 바로 2013년이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이 ‘갑’과 ‘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갑’은 주로 계약을 주도하는 측이고, ‘을’은 그 계약의 상대방을 가리킨다. 이것을 교우관계로 나타내자면 관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쪽이 ‘갑’이며 거기에 휘둘리는 쪽은 ‘을’이 된다.
이 말이 계약서에 등장하는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약간 거부감을 느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분야의 언어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뒷맛이 씁쓸했다. 이 말이 어떻게 일상생활까지, 청소년까지 넘어왔을까?
이것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근로계약서 작성이 정착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2010년부터 고용노동부에서는 근로계약서 작성 의무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부터는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알바생도 정식 근로자”라는 메시지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했고, 지키지 않을 경우 사업주에게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을의 연애라는 노래 역시 2013년에 발표되었다. 사람들은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을 ‘갑’ 또는 ‘을’의 위치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이 언어 습관까지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2) 뭐가 대박인데?
이 ‘갑’이라는 표현의 유행보다 먼저인 2009년에 빅뱅의 멤버였던 대성은 ‘대박이야’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이 ‘대박’이라는 말도 한동안 학생들이 주야장천(晝夜長川) 사용하던 말이었다.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유행하는 말이 그렇듯 이 ‘대박’이라는 말도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 그 예는 아래와 같다.
놀라움과 감탄할 때
A: 야, 너 어제 축구 경기 봤어? 마지막에 골 넣은 거 완전 미쳤다!
B: 그니까! 진짜 대박이었어! 완전 영화처럼 끝났잖아!
좋은 일이 있을 때
A: 나 오늘 시험 봤는데, 찍은 거 다 맞았어!
B: 대박! 너 진짜 운 좋다!
재밌거나 웃길 때
A: 너 이거 봤어? 유튜브에서 어떤 애가 춤추다가 넘어졌는데, 개웃겨!
B: 아 진짜? 나도 볼래! 대박 웃길 것 같아!
부정적인 상황에서
A: 나 지갑 잃어버렸어… 돈 다 들어있었는데.
B: 헐, 진짜 대박… 어떡해? 어디서 잃어버렸는데?
그래서 그때는 좋아도 ‘대박’이고 싫어도 ‘대박’이었다. ‘대박’이라는 말로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이 대박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명사]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박’은 한자 ‘大(클 대)舶(큰 배 박)’에서 온 말이라는 설도 있고, 도박판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大(클 대)博(넓을 박)’이란 한자에서 왔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혹은 흥부가 큰 박을 터뜨려 횡재를 하는 장면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말의 유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주로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대박이 나다’, ‘대박을 터뜨리다’와 같이 사용한다. ‘큰 성공’이나 ‘엄청난 흥행’ 혹은 ‘큰돈을 벌다’라는 의미이다. 장사가 잘되는 집을 ‘대박집’으로 표현하듯 말이다.
3) 남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 = 착한 사람
또, 내가 굉장히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착하다’라고 하는 말이다. 이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형용사]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
국어의 ‘착하다’는 말과 가장 가까운 영어 표현을 챗GPT에게 물어보면 ‘kind’ 또는 ‘good-natured’이라고 한다. ‘kind’는 친절하고 배려심이 있는 사람을 뜻하며, ‘good-natured’는 성격이 온화하고 착한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이 말로는 한국어 ‘착하다’는 말을 설명할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 ‘착하다’는 말은 언행이나 성품만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격이 착하다’와 같은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듯, 한국의 착함 속에는 경제적인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이 ‘착한 가격’라는 표현은 가격이 소비자의 눈으로 볼 때 합리적이고 부담되지 않는 수준임을 긍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착한 가격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는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
2010년 홈플러스는 한 마리에 5,000원의 가격으로 ‘착한 치킨’을 판매했다. 이 치킨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섰고 하루치의 치킨이 7분 만에 판매되었다. 기업은 이 ‘착한 치킨’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 마트에 오기 위한 일종의 미끼 상품인 것이다. 이런 유인책으로 홈플러스 자체가 수익을 냈는지는 모르지만, 그 상품만으로 손해이다. 그러니 ‘가격이 착하다’라는 것은 일정 부분 이윤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를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착한 사람’이란 그저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 물질적 손해를 비롯한 여러 희생의 개념까지 포함해야 그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 사람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더라도 그 사람이 경제적인 희생을 하지 않는다면, 극단적으로 말하면 ‘부자’라면, 대한민국 사람은 그 사람을 ‘착하다’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또 ‘착한 몸매’라는 말에서도 이 ‘착하다’라고 하는 말이 가진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검색 포털에 ‘착한 몸매’를 검색해 보면 남성의 판타지를 충족한, 여성이라면 성차별·외모 차별이라고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선정적인 사진들이 결과로 나온다.
그런 몸매가 ‘착한 몸매’라면, 육감적이지 않은 나의 몸매는 ‘착한 몸매’가 아니다. 이 말을 한참 사용하던 시기에는 착하지 않은 나 같은 몸매는 ‘자유분방하다’ 혹은 ‘이기적이다’라고까지 표현하며 몸매를 평가했다.
이 ‘착한 몸매’라는 말이 착한 몸매를 감상하는 남성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보면, ‘착하다’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그 ‘착함’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착함’은 어떤 형태라도 상대방에게 이익을 주거나 이용의 가치가 있어야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인 것이다.
이렇게 ‘착하다’는 단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대중화하자, 2015년 국립국어원에서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의미의 '가격이 착하다' 등을 표준어로 검토한다는 의견을 냈다. 일상생활에서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국어를 가꾸겠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이 ‘가격이 착하다’ 같은 표현은 표준어로 채택되지 못했다.
‘자장면’과 ‘짜장면’이 복수 표기로 허용되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이 ‘착하다’라는 말의 의미 변화의 수용은 다소 빠르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착하다’라는 말에 손익의 개념을 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인가 하는 비판적 여론도 설득력이 있었다.
언어가 의식을 지배하는지, 의식에 따라 언어가 발현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둘은 닭과 달걀처럼 서로의 시작과 끝을 물고 이어진다.
‘착하다’라는 말속에 이미 타자에 대한 이익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으니 당연히 국어사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반대로 그렇게 표준어가 되어버리면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그 뜻이 굳어버리게 되며, 이런 식의 빠른 변화가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것이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4) 벌레보다 못한 거지
예전에 ‘-충(蟲)’으로 끝나는 말들이 유행하던 시절을 기억하는가? 여성 커뮤니티 중심으로 사용된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혐오 표현인 ‘한남충’과 급식(중·고교생) 세대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미성숙하거나 시끄러운 행동을 하는 10대에 대해 사용하는 ‘급식충’과 같은 말이다.
사람을 벌레로 취급한다는 것은 인간 존엄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이런 표현은 타자를 비하하는 혐오표현이다. 더군다나 혐오의 대상을 벌레 취급하는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쟁이 장기화하고 서열의식이 굳어지면서, 본인의 삶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연합뉴스, 2016).
요즘은 이런 말에서 ‘충(蟲)’이 사라지고, ‘한남’, ‘급식’으로 더 짧게 부르기 시작했다.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3글자도 2글자로 줄여서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이런 단어보다 더 치명적인 혐오 표현이 등장했다. 이른바 ‘00거지’이다.
‘벼락거지’는 코로나 때 대한민국을 강타한 말이다. ‘벼락거지’는 벼락부자의 반대말로, 갑자기 부동산·주식 가격이 폭등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그저 열심히 일상을 살았을 뿐인데)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사람을 자조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주거(주공아파트 거지), 휴거(휴먼시아 거지), 엘사(LH 사는 거지), 빌거(빌라 거지), 반거(반지하 거지), 월거지(월세 거지), 전거지(전세 거지) 같이 비교적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곳에 대한 비하표현은 반복하여 생산되고 있다(일요신문, 2023).
교사로서 가장 충격받은 말은 ‘개근거지’라는 말이었다. ‘개근거지’는 다른 학생들은 체험학습을 쓰고 놀러 가는데 돈이 없어서 놀러 가지 못하고 개근을 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부모님은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 “죽을 정도가 아니면 학교 가. 아니 차라리 학교에서 쓰러져.”라고 말하며 개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개근은 성실의 지표였고, 성실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었다. 그러나 그런 개근이 이제는 비하의 의미가 되었다니 충격이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체험학습을 쓰고 가족여행을 가면 이는 출석인정이 되어 결석이 아니다. 즉, 체험학습을 쓴 학생도 개근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는 개근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들이 다 놀러 갈 때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거지’라는 말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누군가를 비하할 때 ‘한남충’, ‘급식충’처럼 특정 계층이나 성향을 조롱하는 표현이 흔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벼락거지’, ‘LH거지’처럼 단순히 빈곤, 그 자체를 조롱하는 용어가 더 강한 사회적 낙인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소의 비약이 있을지언정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야기하는 표현들 속에 경제적인 용어나 개념들이 조금씩 그 차지를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통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경제적’이라고 하는 개념에 얽매여 있는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를 이 기준을 통해 판단하며 살아가는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볼드처리된 부분은 각주처리입니다.
각주56) 나는 2007년에 일본어 교사로 발령을 받고, 8년 뒤 국어 교사로 전과했다.
각주57) “맛있게 드세요”는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되지만, 문법적으로 보면 어색한 표현이다. 그 이유는 ‘맛있게’는 부사로, ‘음식이 맛이 있는 상태로’라는 의미인데 이것을 ‘드세요’라는 먹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과 연결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요리를 맛있게 만들다.”라는 문장은 성립하지만,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은 어색하다. 인사를 들은 사람이 맛이 없는 요리를 맛있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의 속뜻은 “맛있는 식사가 되기를 바랍니다.”가 가장 가까울 것이지만 누가 이렇게 인사를 하냐구요.
각주58)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1977년 11월 27일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서 챔피언을 한 홍수환 선수가 한 말.
각주59) 시기 상으로는 갑과 을의 표현보다 대박이라는 표현이 먼저 등장했으나, 나중에 등장한 이유는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표현들에 대해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주60) ‘한국 남자 벌레(蟲)’의 줄임말이다.
각주61) 그 외에 맘충(‘엄마’라는 입장을 특권처럼 내세워 상대방의 이권을 강탈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사회 전반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일삼는 유자녀 여성)과 설명충(쓸데없이 설명을 늘어놓아 재미를 반감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