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마저도 계산되는 시대
희망마저도 계산되는 시대
‘경제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불필요한 지출 없이 알뜰하게 비용을 절약하고, 시간, 공간,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실속 있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을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아니면 나에게 ‘손해’인가를 따지게 된다. 인간관계에서조차 이런 이해득실을 따지는 요즘을 보며, 헬(hell)조선이라고 부르는 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각박한지를 생각한다.
역사 국정교과서문제가 시끄러운 시절에 나는 홍세화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1995)』를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저자를 만난다는 생각에 신기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때 그 강의는 여러 가지로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내용은 한국인들이 현실을 인식하는 모습이었다.
홍세화 선생님은 그 강의에서 ‘꿈’이나 ‘이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넌 현실을 모른다”라고 꼬집는 것은 한국인들의 특징이라고 하셨다. 한국인에게 현실이란 변화시킬 수 없는 벽이며, 그 안에서 개인은 그 현실을 수용해야 하는 객체로서의 삶을 산다고 했다.
교사로서 학생에게 “꿈을 가져라”, “진로 탐색을 하라”, “자아실현을 해라” 라고 말은 하면서도 막상 학생의 꿈을 들을 때면, 허황하며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학생이 선택한 진로로는 생계를 꾸리지 못한다며 학생을 생각하는 척 조언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그렇기에 현실이란 변화시킬 수 없는 굴레이며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말하는 현실적으로 사는 것, 세상과 타협하는 것의 기준은 바로 ‘경제력’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그것으로 나의 생계를 꾸릴 수 없다면, 아니 생계뿐 아니라 차를 사고,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한국 사회는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짓’이며 그런 사람들은 결국 패배자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2007년, 내가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그해에 대한민국에는 입학사정관제도라는 것이 생겼다. 수능과 내신 중심의 획일적인 입시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의 다양한 역량과 잠재력을 평가한다며 야심 차게 새로 도입한 제도였다.
교사는 학생이 학창 시절 동안 자기 적성을 탐색하고 진로를 모색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성적, 봉사활동, 독서, 리더십과 같은 항목으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했다. 학생은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교사의 추천서를 받아 대학에서 지정한 입학사정관에게 그 역량을 평가받아 대학에 진학했다.
그렇기에 학생은 자기 적성을 찾아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가 되었다. 그것을 학교생활기록부 진로 희망 사항에 적어야 했기 때문이다. 본인의 희망만 아니라 부모님의 희망, 그리고 희망 사유까지 기록해야 했다. 진로 희망 사항에 ‘진로희망 아직 없음’, 혹은 ‘탐색 중’이라고 기록하게 되면 진로 연계성이 모자라고, 진로 의식이 낮은 학생이 되어 진학에 불리해졌다.
2016년부터 자유학기제를 전면시행하면서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기 적성을 탐색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렇게 진로탐색할 시기까지 주니, 우리나라의 학생은 반드시 꿈을 가져야 했고, 장래의 직업도 중학교 1학년부터 정해야 했다. 이런 강제적 진로 탐색은 결국 학생들의 진정한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에는 하고 싶은 직업이 아니라, 멋져 보이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나의 희망과 일치시켰다. 이는 부모의 바람과도 일치했다.
“이거 하면 얼마 벌어요? 이거 하면 돈 많이 벌어요?”
어떤 직업에 관해 설명하면 학생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급여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를 버는지 말해 주거나, 조사를 하게 되면,
“에이, 그럼 안 할래요.”
라고 쉽게 흥미를 잃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적성과 흥미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사실 사람 대부분은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산다. 나는 학생이 적성과 흥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직업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이상적으로는 그렇지만,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의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얼마나 얄팍한 허상인가. 상호 간의 존중으로 필요한 것을 대등하게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사람은 지위와 돈을 앞세워 갑질을 하고자 혈안이 되어있다. 눈앞에 있는 상대방을 인간으로서, 인격으로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사용하는 ‘물건’처럼 생각하고 그것에서 최대의 만족을 뽑아먹기 위해 과도한 요구를 서슴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물질적이고 돈에 얽매인 사고를 하는지 아래의 설문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흥사단 투명 사회 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가 전국 초·중·고등학생 1만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5년 청소년 정직 지수 조사 결과에서 고교생의 56%는 ‘10억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라고 응답했다(연합뉴스, 2015). 과연 10년이 지난 지금, 이 금액은 커졌을까? 적어졌을까? 그리고 과연 10억이라는 돈이, 내가 전과자가 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또,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한국을 비롯해 17개 선진국 성인 1만 9천 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물어본 결과, 응답자들이 첫째로 꼽은 가치는 가족(38%)이었다.
이어 직업(25%), 물질적 풍요(19%)가 2,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조사 대상국 중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삶의 가장 큰 의미로 꼽았다. 가족은 물질적 풍요, 건강에 이어 3위였다. (Pew Research Center, 2021)
가족을 의미 있는 삶의 가장 큰 원천으로 꼽은 나라는 17개국 가운데 14개국이었다. 평균 10명 중 4명이 가족을 삶의 가장 큰 의미라고 답변했다. 그리스, 호주, 뉴질랜드에선 이 비율이 50%를 넘었다. 이들은 부모, 형제, 자녀와의 화목한 관계, 함께 지내는 즐거움, 자녀의 성취를 보는 기쁨, 자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 등을 삶의 의미로 꼽았다. 스페인에선 건강이, 대만에선 사회가 1위였다. 또 유럽인들은 자연에서, 미국인들은 종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경향이 더 강했다(한겨례, 2024).
우리나라에서는 건강도, 가족도 물질적 풍요보다 중요하지 않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물질적 풍요가 없다면, 건강도 지킬 수 없으며, 가족도 해체한다. 이 사실에 반박할 수 있을까?
그나마 예전에는 최고의 직업, 그럴듯한 직업에 대한 열망이라도 있었다. 요즘 사람이 꿈꾸는 최상의 목표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이다. 치열하게 학력과 스펙을 쌓아서 대기업에 취직해서는, 40대에 이른 은퇴를 꿈꾸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공부와 노동은 고통이고 이 고통을 감내하면 빨리 부(富)를 쌓을 수 있다. 그리고 부를 쌓은 후에야 내가 하고 싶은 유희(遊戲)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주식 투자, 부동산투자, 코인 투자 등으로 삽시간에 돈을 버는 사람들이 주변에 나타나게 되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며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라는 생각도 더욱 확산하는 것 같다. 꽤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꽤 괜찮은 직업을 가져도 서울(아니 지방 대도시라도)에 집 한 칸 마련할 수 없는 현실은 사람들의 노동 의욕을 더욱 떨어트린다.
취업과 노동 현실은 더욱 각박해지고, 보이지 않는 계층의 벽은 견고하지만, 돈에 대한 불안과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코인 투자, 주식 투자, 부동산투자같이 단시간에 한탕 할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의 돈이 몰렸다.
각주62) 이 시기를 어째서 꽤 정확히 기억하는지를 말하자면(TMI), 이 강의가 끝나고 나서 국정교과서에 대해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뭐가 문제였는지 얼마 후에 교감선생님이 부르셨다. 가보니 그때 그 강의에 왜 갔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런 피켓을 들었는지 사유서를 쓰라고 해서 엄청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쫄리기도 했었다. 박근혜 대통령 아래 전교조가 아직 불법노조였던 시절이었다. 추정해 보면 2016년 정도일 것이다.
각주63)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서 학생의 진로희망과 희망사유, 부모님의 정보를 기재하던 항목은 2019년 3월 1일 시행된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교육부훈령 제280호)의 개정에 따라 삭제되었다.
각주64) 이 표현조차도 얼마나 경제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