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용어 TMI - 이생망3

유치원에서 결정된다

by 복희

다섯 번째 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 인생의 리셋 버튼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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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결정된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 문화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을 이상화(理想化)하며, 일본에 정착하기를 소망한다. 또 화려한 화장이나 괴상한 옷차림을 해도 상관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을 보며 일본이라는 나라를 개성이 존중받고 자유로운 나라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 일본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와(わ, 화합의 화로서 서로 응하고 합치다라는 뜻의 和)’로 조화를 가장 중시한다. 그렇기에 절차와 매뉴얼이 엄격하고, 규격을 따지며 개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일명 ‘갸루(ギャル)’라고 불리는 괴상한 화장과 헤어스타일, 개성적인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가득 한 일본의 거리나 지하철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냐며 반박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남의 눈치를 더 본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은 와(和) 못지않게 ‘메이와쿠(めいわく, 迷惑)’를 극도로 싫어한다.

이 역시 일본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타인에게 불쾌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다. 단순히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뿐 아니라 타인에게 간섭하거나 관심을 두는 모든 행위를 조심한다.

그렇기에 일본인은 조화를 깨트리며, 민폐를 끼치는 사람을 배척하는 성향도 매우 강하다. 갸루나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아예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일본인들과 생활하다 보면 뒷담화가 지긋지긋하다고들 한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과 대화하면 상냥하고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오랫동안 일본인과 생활한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 역시 일본에만 있는 특별한 문화로 본심과 겉 표현을 구분하는 것이다. 본심은 혼네(ほんね, 本音)라고 하며 겉 표현은 타테마에(たてまえ, 建前)라고 한다. 일본인은 혼네를 감추고 타테마에를 꾸미는 것에 능하다. 겉으로는 웃으며 좋다고 해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며, 앞말과 뒷말이 다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오히려 진정한 소통에 방해가 된다. 이런 식의 소통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사람들은 남들보다 못한 존재, 단체의 조화를 깨는 존재로 인식되어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아따맘마(일본명 ’아타신치, あたしんち, 우리집)’라는 일본 만화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가게에서 구입한 가방을 메고 간 단비에게 유치원 아이들이 “단비야, 너는 엄마가 가방 ‘사준’ 거야?”라고 하며 단비를 따돌린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유치원에서 엄마가 손수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니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아니, 많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

누구도 어머니에게 가방을 만들라고 압력을 가하거나 강요하지 않지만,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단체에서 배제된다. 결국 단비는 엄마가 만들어 준 수제 필통을 가지고 등교하며 간신히 아이들 틈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일본에서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는 것은 단순한 입학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정을 벗어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작으로 ‘유치원 데뷔’라는 말을 쓴다.

일본에서는 이 ‘유치원 데뷔’가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며, 입학 전부터 준비물, 복장, 태도 등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한다. 눈에 띈다는 것은 조화를 깨는 사람이며, 이는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불문율과 암묵적 규범이 있다.


일본에서 교육은 사립과 국·공립의 구분이 분명하다. 사립은 집안이 좋고 부유한 학생들이 다니며, 국·공립은 평범한 학생들이 다닌다는 인식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구분은 대학 진학제도까지 이어진다.

국공립대는 대학 입학 공통 테스트(우리나라로 치면 대학 수학능력시험)와 대학별 2차 시험(우리나라에서는 폐지된 본고사)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반면에 사립대학은 학교 자체 전형이 중심이며, 특히 유아기부터 부속 학교를 통해 진학하는 ‘에스컬레이터식 진학’ 제도가 널리 퍼져 있다.

게이오기주쿠 유치원이나 와세다 실업학교 유치부 같은 곳은 유아 면접, 부모 인터뷰, 행동 관찰, 교양 평가 등 정교한 선발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이후 대학 진학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진다. 일본 사회에서는 유치원 면접이 인생을 가른다.

그렇기에 유치원 입학 입시가 치열하다. 부모와 유아기의 자녀가 면접 연습을 위해 사교육을 받는다. 면접에서 부모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교양을 갖춘 자녀 교육에 관심이 지대한 좋은 부모처럼 보이기 위해 코칭을 받는다. 아이 역시 면접관의 마음에 드는 답변을 연습해 합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유치원 면접에 합격하는 것은 출세를 위한 밑바탕이 된다. 반대로 말하면 국·공립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이런 유치원 면접에 떨어진 패배자이거나, 아예 대학 진학에 뜻이 없는 학생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교육제도 아래 한 번 쌓인 부가 계속 지속되며, 계층 간의 이동은 어려워진다. 이런 일본 문화는 무려 에도 막부 시대부터 오랜 기간 이어져 왔다.

에도 막부(1603~1868)는 전국시대를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사무라이(무사)–농민–장인–상인으로 이어지는 엄격한 신분제를 수립했다. 사무라이에게 농민은 세금을 걷을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 관리가 엄격했다. 각 계급은 그 지위와 직업을 세습했으며, 사회 이동은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 제한되었다. 심지어 집도 이사하지 못했다.

그건 과거의 일이고 현재의 일본은 다를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의 가업 승계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 예로 일본에서는 정치조차 가업으로 세습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분석에 따르면, 1996년 이후 중의원 선거에서 세습 정치인의 당선 확률은 80%에 달하며, 이는 비세습 후보의 당선 확률을 크게 상회한다. (연합뉴스, 2021)

대표적인 세습 정치인으로는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가 있다.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정치인이었으며,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 또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무장관과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에 이어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이런 세습은 비단 고위층이나 정치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가해지는 가업 승계 압박 역시 강력하다. 일본에서는 자신의 취미나 흥미보다는 가업 승계를 우선한다. 이를 저버리고 자신의 꿈을 좇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며 자신의 책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된다.

차라리 명시된 법이 있거나, 규칙이 있으면 그것을 깨부수고자 하는 반작용으로 숨통이 트일 수도 있다. 억압하는 자가 있다면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질서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촘촘히 쌓인 시스템으로 개인을 억압한다. 관습적으로, 전통적으로, 문화로서 개인을 길들여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한다.

일본 사회는 평범한 국민이 늘 그 자리이기를 바란다. ‘더 높이’, ‘더 많이’ 같은 욕망을 가지지 않고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며 안주하기를 바란다. 일본은 단 한 번도 하위층이 상위층으로 올라간 역사가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탈은 라이트 노벨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현실 세계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 사람들이 이세계 전생물을 사랑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볼드처리된 부분은 각주처리입니다.


각주84) ‘메이와쿠’는 한자로는 迷(헤맬 미) + 惑(미혹할 혹)으로 직역하면 ‘길을 헤매게 하다’, ‘혼란을 주다’는 의미이지만, 실생활에서는 '민폐'의 의미로 쓰인다.


각주85) 일상 생활에서 뿐 아니라 비즈니스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면 비즈니스 미팅을 하기 전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해 놓고 만난다. 그것을 네마와시(ねまわし, 根回し)라고 한다. 실제 미팅이나 회의는 형식에 불과하며 중요한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일본에서 회의 중 갑자기 반대 의견을 내거나, 다른 의견을 더하는 것은 분위기를 깨는 행동이고, 회의하기 전에 충분히 네마와시를 해야 한다. (아니 그럼 회의를 왜 하는 건데요)

또,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과의 미팅에서 ”좋네요.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면 그것은 이미 거절을 당한 거나 다름없다. 만약 계약이 성사되었다면, 이미 만나기 전에 답변을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적 상황은 일본 사회가 조화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그리고 표면 아래에서 움직이는 합의와 눈치의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각주86) 게이오기주쿠 대학과 와세다 대학은 일본의 유명 사립대학으로 서로 라이벌로 유명하다.


각주87) 유치원 면접부터 시작되는 입시 경쟁을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도 많다. 일본 추리 소설의 양대 산맥이라고 생각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호숫가 살인사건(2002)』은 명문 중학교 입학을 목표로 하는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별장에 모여 합숙 과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다. 입시 경쟁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부모들의 욕망이 중심 소재로, 일본 사회의 교육열과 그로 인한 부작용을 비판적으로 그린다. 특히, 부모가 자녀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일본의 입시 경쟁의 추악한 본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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