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용어 TMI - 이생망4

사다리를 걷어차는 사회

by 복희

다섯 번째 말: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 인생의 리셋 버튼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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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를 걷어차는 사회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현재 한국 사회의 상황은 어떻기에 한국에서 부쩍 이런 이세계 전생물의 수요와 공급이 늘었을까?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이야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라 생략한다. 한국 경제 성장의 원인 중 하나로 항상 언급되는 것이 바로, 한국 사람의 교육열이다. 이 역시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지만 간략하게만 설명하고 넘어가자.


한국의 부모는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경제 성장 초기의 부모는 자녀가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 바랐다. 자신은 농업이나 상업에 종사했지만, 자식은 화이트컬러(white-collar)의 직장인이 되거나, 공무원이나 전문직에 종사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뼈 빠지게 일해서 자식을 공부시켰다. 그 꿈을 이루어주는 것이 자식 된 도리였고,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미 손절 파트에서 다루었으니 이하 생략한다)

이런 교육의 결실은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발맞추어 성공적인 계층 이동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 성장기가 아니라 안정기이다. ‘안정’이라는 말은 일견 좋아 보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제 성장의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성장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 말을 그대로 사회로 옮겨보면, 사회 계급 역시 이미 안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는 자녀가 부모와 비슷한 직업을 가지면 성공이다. 오히려 자녀가 부모보다 못한 직업을 가질 것을 걱정해야 한다.

이런 조바심은 부모에게는 불안감으로 작용한다. 이전에는 상승을 위한 발버둥이었지만, 이제는 유지를 위해 발버둥을 친다. 내가 바닥일 때는 올라가는 것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추락에 대한 불안감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올라섰다면,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은 절망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예 올라오지 못한 것보다 더 잔인할지도 모른다. 중·상위층의 부모들은 현재, 그런 불안을 느끼고 있다.


장하준은 『나쁜 사마리아인(2007)』에서 선진국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데 사용했던 보호무역, 국가 주도산업 육성 등의 정책을 개발도상국에게는 ‘공정 경쟁’을 이유로 금지한 것을 비판한다. 즉, 공정 경쟁이라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사실은 개발도상국의 발전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사다리 걷어차기’로 표현했다. 이는 비단 국가 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교육을 통해 계층을 이동한 사람들과 이미 상류층인 사람들 모두 새로운 사람의 진입을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치동, 국제학교, 영재고 같은 자신만의 루트를 만들어서 다른 계층의 침입을 막는다.

어쩌면 지금의 교육 제도를 쥐락펴락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겉으로는 ‘학생의 자아 발견, 성장, 인성’을 이야기하지만, 진심은 자신의 계층에 유리한 입시 정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입시제도 자체의 순수성도 의심해 봐야 하지만, 늘 바뀌는 교육 제도에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방법을 기득권끼리만 공유하고 독점하는 것은 ‘사다리 걷어차기’와 같다.


어렵게 이 학력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고 해도 벌어진 경제적 격차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경제 성장이 한참이던 시절 찾아온 IMF 외환위기는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왔고 빈부격차는 커졌다. 돌고 돌아 ‘돈’이라지만, 그 돈은 살만한 사람들에게만 돌았다. 돈이 돈을 벌었고 가진 사람은 더 가지게 되었지만,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겼다.


요즘 한국의 대기업의 최대 과제는 신사업 진출이나 혁신이 아니다. 바로, 합법적 승계이다. 삼성도 현대도, 한화도 모두 3세로 내려오는 기업 승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상속세 때문에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죽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내로라하는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의 화두는 증여와 상속이다. 유튜브만 봐도 자녀에게 증여와 상속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절세가 가능한지 설명하는 콘텐츠가 넘친다. 내가 최근에 본 영상에서는 요즘의 증여 꿀팁이라며 이런 방법을 추천했다.

자녀가 직장에 취업하면 월급은 고스란히 저축하게 하고, 부모님 카드로 생활비를 쓰게 한다. 그러면 자녀의 매달 월급만큼 증여 아닌 증여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저축이 쌓여 목돈이 되면 가족 간 부동산 거래로 자녀에게 집을 판다. 가족 간에 부동산을 거래할 때는 30%까지 가격을 할인하여 거래하는 것이 가능하며 증여세가 붙지 않는다.(2025년 5월 기준)


내가 번 돈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대한민국의 증여와 상속세가 너무 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따질 판단력은 없다. 하지만 이런 부의 대물림은, 자기 능력으로 사회에 첫발을 딛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인식이 반영된 말이 이른바 ‘수저론’이다. 한국의 ‘수저론’은 개인의 사회적·경제적 배경에 따른 불평등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개념으로, 원래 서양에서 유래한 표현인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에서 비롯되었다.

과거 유럽 귀족층에서 은식기를 사용하고,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대신 유모가 젖을 은수저로 먹이던 풍습에서 나온 말이다. (동아경제, 2015)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이 이미 많은 자원을 가진 상태로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의 비유이다.


한국에서는 이를 더욱 세분화해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심지어 ‘다이아 수저’ 등으로 확장하여 사용한다. 출발선에서부터 불평등이 존재하고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이아나 금수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모든 기회가 열려 있는 이들을, 흙수저는 가난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교육, 취업, 주거 등에서 구조적 제약을 겪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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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저론은 2010년대 중반 청년 세대 사이에서 널리 퍼져 유행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계층이 고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회의 불균형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풍자하기 위해 이 말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계층 이동의 기회는 사라지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 나은 삶을 꿈꿀수록 기득권들이 가진 특권 앞에 무너지는 좌절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좌절은 젊은이들에게 열정이나 ‘노오력’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하게 만든다.


나는 ‘이생망’이라는 말이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힘들다는 구조신호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은 좌절을 웃어넘기려는 방식일 수도, 혹은 버티기 위한 자기방어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이면에 진짜 위기의 징후가 숨어 있다면, 우리는 그 신호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젊은이의 입에서 ‘이생망’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 자는 과연 누구인가? (지금 눈동자가 흔들린다면, 그 사람이 바로 범인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에 학교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볼드처리된 부분은 각주처리입니다.


각주88) 책 제목은 성경의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착안하여,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을 돕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그들의 발전을 방해하는 행위를 ‘나쁜 사마리아인’에 비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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