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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기자생활 Feb 14. 2021

전 로맨스 웹툰을 좋아하는 남자입니다

이 글은 하단 글의 일부 내용과 이어집니다. 


이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나 봐요


이것저것 시도해보겠다는 도전의식을 가슴 깊게 새겼지만 코로나 시국에 새롭게 도전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고백하자면 코로나도 무서웠지만 혹시나 코로나에 감염됐을 때 나에게 향할 시선들이 더 무서웠다. 그래서 접속한 곳은 언택트가 가능한 웹툰의 세계였다. 


사실 웹툰은 나에게 도전의 영역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난 어릴 적부터 '정열맨'이라는 다소 기괴한(?) 만화로 웹툰 세계를 접했다. 그리고 코요태가 부른 '우리의 꿈' 주제가에 꽂혀 나는 비상금이 생길 때마다 '원피스' 만화책을 구매하는 원피스 덕후로 성장했다. 해적왕을 꿈꾸는 루피처럼 나는 제2의 원피스를 찾길 바라며 웹툰의 세계로 접속했다.


새로운 취미를 찾겠다는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접속한 탓일까. 단번에 나를 매혹시키는 웹툰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보고 싶은 장르가 한정적이었다. 네이버가 제공하는 웹툰의 장르는 총 7가지. 드라마부터 시작해 스릴러, 일상·개그까지. 하지만 내 눈에는 판타지·무협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들 우연을 운명이라고 말하지 않나요?  

수많은 웹툰의 1화를 클릭했다. 1화에 담긴 그 작은 분량으로 원피스의 감동을 찾으려고 했던 내가 문제겠지만, 2화로 넘어가기란  못했다. 다시 돌아온 장르 선택 페이지. 우연히 로맨스라는 카테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오렌지 마말레이드'라는 웹툰을 재밌게 본 기억이 거의 10년 만에 되살아났다. 


다시 접하게 된 로맨스 웹툰의 공간은 원피스의 표현을 통해 비유하면 '신세계'였다. 코로나로 인해 저멀리 두고 있었던 설렘을 가져다줬다. 그렇게 한동안 내 새벽은 로맨스 웹툰이 차지했다. 직업의 특성상 새벽 3시 50분부터 기상해 일을 시작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다음 화를 보겠다는 나의 의지는 생각보다 강렬했다. 12시는 기본이요. 그냥 밤을 새우고 일과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원래 성격 자체가 한번 빠지면 그게 무엇이든 푹 잠기는 스타일이다. 1화를 넘어 5화까지 도착했다면 어떻게든 잠들기 전까지 끝을 봐야 했다. 돈을 내고 웹툰을 보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던 나를 반성하는 나날이었다. 어느새 결제창에 접속해있었고, 결제 비밀번호를 무의식적으로 클릭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원피스를 제외하고는 만화책을 사본 적이 없었던 이 몸은 12월에만 8000원이 넘는 거금(?)을 투자했다. 설렘 가득한 장면들이 가득한 덕에 한동안 피곤하지만 행복한 새벽을 보냈다. 


판타지를 꿈꾸던 10대에서 현실감을 원하는 20대로  


로맨스 웹툰에 빠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를 회상해봤다. 떠올려보니 예전에도 로맨스 웹툰을 본 기억이 있었다. 10대 시절의 취향은 판타지 로맨스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오렌지 마말레이드도 주인공이 뱀파이어였던 걸로 기억한다. 


세월과 환경은 사람의 취향까지 변화시켰다. 내 의지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더 이상 판타지 로맨스는 보지 않고 있다. 대학교, 그리고 직장을 배경으로 삼는 다소 현실감이 입혀진 웹툰만 찾아봤다. 모든 남주가 이상적인 로맨스 웹툰에서 현실감을 찾다니. 순간 내가 20대 후반이라는 걸 직감했다. 


내 나이를 깨닫는 동시에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100%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로맨스 웹툰을 본다는 것 자체가 덜 부끄러워졌다. 어릴 적 나는 '남자는 핑크색을 좋아하면 안돼'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남자다워야 한다는 무의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강했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비밀의 나는 로맨스 웹툰을 챙겨보고 있었다. 


물론 나는 지금도 남녀의 사회적인 역할이 때로는 구분되어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신체의 차이에서 비롯된 역학적 차이와 사고방식의 다름을 굳이 부정하려고 하고 싶지 않다. 다행히도 시간이 흘러 이제는 사회가 가진 남녀에 대한 시각도, 내 무의식도 벽이 많이 허물어졌다. 아직도 발전 중이지만 남자가 십자수를 취미로 가져도, 여자가 프라모델 수집가여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대가 아니다. 성별의 차이는 취향의 옳고 그름을 나누는 기준점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고백한다. 


전 로맨스 웹툰 좋아하는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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