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축구기자로서 일하게 된 시간이 꽤 지났다. 코로나19가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2020년 7월 30일 첫 출근했고, 축구기자로서 온전히 하나의 시즌을 소화한 2021시즌이 마무리됐다. 내 2021시즌은 나름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했다.
이제 전성기에 진입한다고 말하지는 못해도 회사에서 에이스 노릇을 한 적도 있었다. 다른 매체로 가면 여전히 막내기자인 연차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넘버3가 되어버렸다. 쓸데없이 군번줄이 잘 풀리는 건 내 운명인가.
사회인으로서의 첫 발이 예상외로 잘 풀린 것과 별개로, 축구는 이제 전적으로 일이 됐다. 여전히 쉬는 날에도 침대에 누워 축구를 볼 때가 있다. 그래도 기자로서의 시간이 끝나면 축구를 오히려 최대한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24시간 축구만 생각하면 오히려 일할 때 능률이 떨어졌으니까. 기자로서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나를 위한 특단(?)의 조치이자 일과 휴식의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예전 같으면 새벽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났을 빅매치도 이제는 하이라이트마저 챙기지 않았다. 그 사이 나만의 합리화 시스템이 작동했다. '옛날만큼 축구가 재미가 없는데 어쩌겠어'라는 합리화 문장이 뇌에 입력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축구를 멀리해도 이놈의 공쟁이 운명은 벗어나질 못했다. 어느새 내 유튜브 시청 목록에는 NBA 영상이 가득했다. 축구에 '축'자밖에 몰랐던 사람이지만 군대에서 처음으로 접한 NBA의 매력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 기억을 되살려 퇴근 후에 NBA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리그 판도를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약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 농구 경기를 생중계로 자주 시청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팀과 빅매치는 하이라이트로 꾸준히 챙겨봤다. 그러면서 눈에 들어온 건 NBA의 저작권. 국내 유튜버뿐 아니라 해외 유튜버들까지 경기 영상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축구기자한테는 생소한 모습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공부해봐야겠지만 축구는 저작권이 정말로 민감한 종목이다. 저작권을 사지 않고, 멋대로 사용하다가는 어느새 유튜브 채널이 증발하기 일수다. 그래서 NBA 유튜버들을 지켜보면서도 'NBA는 중계권이 저렴하니까 이렇게 유튜버들이 쉽게 구매하겠지'라는 선입견이 생겼다.
하지만 하단의 글을 읽고 깨달은 사실. NBA는 저작권 위반을 강하게 잡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런 행동의 일환이 MZ세대에 NBA를 홍보를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
NBA 사무국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영화라도 해도 긴 2시간 30분의 경기 영상이 10분 분량의 고퀄리티 영상으로 제작되면서 NBA의 매력도는 상승했다. 매력도가 오르면 인기는 뒤따라오기 마련. 현재 미국 MZ세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기종목이 NBA라더라. NBA를 콘텐츠화하는 일반인들의 노력을 막지 않았던 NBA 사무국이 MZ세대의 특성을 잘 이용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난 축구기자로서 자만했다. 'K리그는 왜 이런 생각은 안 하는 거지? 너무 콘텐츠화가 안되니까 발전이 느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딱 들더라. 겨우 2년차, 제대로 한 시즌을 소화한 것도 처음인 주제에. 사실 처음에는 자만했고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가 벌써 K리그 판도를 다 아니까 이런 생각을 도출했다는 2차 자만까지 생긴 상태였다.
자만의 결론은 추락이었다. 그것도 단 2시간 만에 우연이 본 영상 때문에 속된 말로 내가 얼마나 나댔는지 깨달았다.
간단히 설명하면 대전이라는 팀은 K리그1 승격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에 큰 좌절을 맛본 팀이다. 결과지상주의적인 프로축구판에서 대전은 승격을 목표로 했지만 작년에 이어 또다시 실패를 맛봤다. 그런데 추운 날씨 속에도 대전에서 강릉까지 올라온 팬들은 '괜찮다. 내년에 승격하면 되지'라는 마치 일상에서 인사하는 것처럼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크게 '짝짝짝짝짝 대전'을 외쳤다.
눈물을 콘텐츠화하는 것을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지만 이번 영상을 보고는 울컥했다. K리그가 콘텐츠가 없어서 팬층이 약하다는 생각은 1초 만에 사라졌다. 내가 모르는 거더라. 누구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할 기자라는 직업인데 내가 모르는 거였다.
기자로서 살아간 지 이제 1년 4개월밖에 되지 않은 내가 1983년에 창단한 K리그를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얕잡아본 것이다. 2021년 과정과 성과가 잘 마무리돼서 기자로서 약간은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자신감이 아닌 자만으로 이어졌다. 그 사실에 스스로가 쪽팔리고 부끄러웠다.
어릴 때부터 조금 잘한다 싶으면 자만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모습을 되풀이했다. 언제쯤에서야 이런 모습이 사라질는지. 2022년 12월의 나는 2021년 12월의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