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헤매고 싶었고, 그렇게 해도 괜찮고 싶었다
마음껏 헤매고 싶었고, 그렇게 해도 괜찮고 싶었다.
2023년 11월 27일, 나는 한창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메일 하나가 왔다. 당시에 구독하고 있던 작가님의 페이퍼였다. 메일에는 이 책에 대해 적혀 있었다.
“하루키를 읽을 때 나는 같이 헤매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11월 말이 되니 회사에서의 일에는 완벽히 적응을 했고, 나의 일상도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나 순간순간 이상한 떨림을 느끼곤 했다. 그 떨림을 느낄 때면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야’라고 누군가 말할 것 같았다. 퇴사가 한 달 뒤로 다가오니 이제 다시 치열하게 꿈꾸며, 공부하던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마음껏 헤매고 싶었고, 그렇게 해도 괜찮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신작이 나왔을 때 교보문고에서 책의 두께를 보고 ‘다음에 읽자’하며 매번 다른 책을 읽곤 했는데, 이제 이 책을 읽을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진짜 신기하게 때에 맞게 필요한 책들이 나에게 찾아온다!) 이 책을 읽으면 작가와 “함께” 헤맬 수 있을 것이고, 작가는 분명 나에게 길을 헤매는 과정 속에서 깨달은 것을 알려줄 것임이 확실했다. 12월이 되면서 퇴사와 함께 바빠지기 시작하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퇴사를 하자마자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3일 밤낮을 정신없이 읽었다.
제목 ㅣ『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저자 ㅣ 무라카미 하루키
분야 ㅣ 소설
P447. 그 소녀만큼 누군가를 열망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릴 것 같고, 대낮에 깊은 꿈을 꾸는 것 같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그런 순수한 심정을 품은 적은요.
P448-449. 티 없이 순수한 사랑을 한번 맛본 사람은, 말하자면 마음의 일부가 뜨거운 빛에 노출된 셈입니다. 타버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작가는 소녀에 대한 소년의 감정을 구체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그 사랑이라는 감정을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대체불가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감각적으로 표현해 볼 생각을 안 해봤다. 어떤 단어가 담은 의미를 다양한 표현들과 상황들로 표현해 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P206. 눈을 감고 이대로 돌파하는 겁니다. 상대의 말을 믿지 않으면, 두려워하지 않으면, 벽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P206. 두려워해선 안 돼요. 앞을 향해 달리는 겁니다. 의심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믿고.
P251.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무슨 중요한 이유가 있을 테지,라고.
P452.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이, 당신 자신이니까요.
P452. 믿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아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P590.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세계에서, 당신이 선택한 인생을 살아가면 됩니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은 스스로를 믿으라는 말이었다.
P15.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도시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P758-759. 그러나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역시 나는 이 도시에서 나가야 한다. 다음 단계로 이행해야 한다. 이미 결정된 흐름이다. 이제는 나도 알 수 있었다. 이 도시에는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없다. 내가 들어갈 공간은 없어졌다. 여러 의미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만의 도시가 존재한다. 우린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불확실한 벽 앞에서 두려워 떨기도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한다. 나도 평소에 걱정을 사서 한다.(정말… 걱정요정이다…) 소년에게 계속해서 많은 인물들이 확신의 말을 해주고, 어느 순간 소년은 그 불확실한 벽을 뚫고 나아간다. 책을 읽으며 나 역시도 힘을 얻었다. 그렇구나, 내 안의 불확실한 벽을 뚫고 나아가는 그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구나. 그 도시가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게 되는 순간 나는 성장하겠구나. 나도 믿음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다짐 했다.
P76. 내게 침묵은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 침묵을 환영했는지도 모른다. 침묵은 기억을 일깨워주므로. 너도 침묵에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P85. 나의 침묵은 올바른 어휘를 찾아내지 못한 사람의 침묵이다.
P88. 나 역시 계속 침묵을 지킨다. 그저 그곳에 앉아 그녀의 슬픔-아마 슬픔일 것이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경험은 난생처음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슬픔을 오롯이 받아들인다는 건. 누군가가 그 마음을 고스란히 내맡긴다는 건. 내가 좀더 강하면 좋을 텐데. 좀더 힘주어 너를 안고 좀더 믿음직한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단 한 마디로 그 자리에 걸린 나쁜 주문을 확 풀어버리는, 올바르고 적확한 말을.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사실을 슬프게 생각한다.
P157. 내가 하는(혹은 하려고 하는) 모든 말이 내 의도와 다르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 느껴져. 그래서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어. 절대 침묵을 목적으로 한 침묵이 아니야. 하지만 사실이 아닌(여기에 연필로 진한 밑줄이 그어져 있다) 말을 꺼내면 나 자신이 부서져 보잘것없는 먼지 덩어리가 되어버릴 것 같아.
피천득 작가의 <인연>에서도 ‘침묵’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와닿는 것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적게 된 것은 여전히 건강한 침묵에 대해서 삶으로 배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침묵을 위한 침묵, 함께할 때 그걸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면 편안한 상태가 된다. 어쩌면 관계가 가까울수록, 신뢰감이 생긴 사람일수록 건강한 침묵을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런 침묵의 순간들을 낯선 상황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그건 내 내면을 성장함에 따라, 익숙한 상황들이 많아지면서 여유가 생기면 가능해질까?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침묵을 긴장하게 되는 건 내 청춘의 특권처럼 여길 수 있겠다!
- 좋은 문장들을 발견하고, 기록하고자 합니다.
-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