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있어 안전하고 평온할 수 있었던 순간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누군가 물으면 난 망설임 없이 엄마가 좋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어린 시절, 어느 겨울밤, 나는 엄마 품에서 안겨 잠들고 싶었지만 그날은 언니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부르짖으며 울었고, 아빠는 나를 달랬다. 그렇게 울다 아빠 품에서 잠들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가 전봇대에 부딪혀 죽으면서 시작된다. 장례식장에서 3일 동안 오고 가는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해 가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큰일이 있지 않는다면 부모는 자녀의 곁을 먼저 떠난다. 나는 아직 부모를 떠나보낼 나이는 아니지만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시기를 미리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까우면서 먼 존재, 아빠가 궁금해졌다. 아빠의 삶이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제목 ㅣ『아버지의 해방일지』
저자 ㅣ 정지아
분야 ㅣ 소설
p32. 그날, 아버지와 내가 무언가를, 사람살이에 아주 중요할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놓친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이었다.
p159. 그때 잃은 아버지를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도 되찾지 못한 게 아닐까? 아버지를 영원히 잃은 지금, 어쩐지 뭔가가 억울하기도 한 것 같았다.
p182. 아버지가 존재했던 날, 그리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날, 나로서는 최초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빠가 비행기를 태워주던 기억이 선명하다. 기억의 한편에는 아빠 손을 잡고 걷다가 아빠가 길옆에 심어진 나무만큼 크다고 생각했던 유치원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렇게 아빠와 보낸 시간들이 무색하게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줄었고,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빠가 어색하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독서실 갔다 늦게 집에 들어가는 길이면 언제나 집 앞에 나와 주던 아빠는 시간이 벌려놓은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했었다는 걸 지나고야 깨달았다. 엄마가 준 사랑과는 다른 종류의 사랑을 주고 있었구나 싶다.
p74. 말 많은 건 아버지 닮아 딱 질색이었다.
p279. 이 사진을 통해 딸은 사회주의를 몰랐던 소년시절 아버지의 모습과 처음 마주하며, 아울러 고문으로 사시가 되기 전 싱그러운 젊음의 해맑은 눈빛을 본다. 이로써 딸은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버지의 얼굴을 처음 대면하는데 이것은 물론 아버지가 감내했던 간난신고의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성숙의 과정을 동반하는 뜻깊은 해후이다.
p198. 아버지의 잔혹한 불운이 거대한 산맥처럼 내 앞에 우뚝 버티고 선 덕인지 나는 험한 꼴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
p301. 자신의 딸이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평범한 아버지이기도 했지만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p301. 나도 그런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와 달리 아직도 수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 기왕이면 예쁜 고양이가 좋고, 기왕이면 똑똑한 사람이 좋다. 환갑 가까워지도록 그만한 편견조차 깨지 못했다. 나를 붙잡고 있는 수많은 편견을 넘어서려 여전히 노력할 뿐이다. 노력이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할밖에.
주인공처럼 나도 여전히 아버지보다 미욱한 점이 많고, 내가 부모가 되어보지 않았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도 참 많다. 문득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내 곁에 아버지가 계실까 싶어 슬펐다. 그 순간이 온다면 웃으며 아빠의 마음을 마주할 수 있길 소망한다.
작가가 작품을 마치며 적은 이 문장을 읽으며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멀리 있는 욕망을 바라보며 가까이 주어진 행복을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 좋은 문장들을 발견하고, 기록하고자 합니다.
-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