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by 김여생

오늘은 아침부터 잔치 준비로 분주하다.

미리 장 본 것을 모두 꺼내놓는다.

미역을 불려놓고 우선 팔을 깍지 껴서 위로 쭈욱- 늘려주며 스트레칭을 한 번 한다.

11시에 문을 여는 베이커리 시간에 맞추려면 바쁘다 바빠이다.

잔치가 끝나면 아쿠아로빅도 가야 한다.

쌀을 씻을 때도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쌀이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씻어 안친다.

소고기 미역국과 고민하다가 냉동실에 자연산 굴이 조금 남았길래 굴 미역국을 준비한다.

미역을 들기름에 들들 볶다가 물과 굴을 넣고 푸욱 끓여준다.

널렁널렁한 미역국을 위해 팔팔 끓이다가 중약불로 줄여 30분 이상 푹 끓여주면 미역의 초록초록한 진액이 듬뿍 나온 깊은 맛의 미역국 완성이다.

아차차 이 더운 날 케이크에 커피는 차갑게 마시고 싶으니까 커피 담을 컵을 냉동실에 넣어서 꽝꽝 차갑게 해주는 것도 잊지 않기!

(이렇게 하면 얼음이 잘 안녹아서 정말 행복해-)

갈비찜과 불고기를 고민하다가 불 앞에서 너무 오래 있으면 기력이 쇠할 것 같아 다음을 기약했다.

대신 불을 쓰지 않아도 맛있는 도토리묵무침을 정성스레 만든다.

여름이니까 오이냉국도 한 그릇 만들어본다.

뭐 한 게 많진 않은데 그래도 구색은 갖춰졌다.

(솔직히 갓 만든 흰쌀밥에 미역국과 김치만 있어도 두 그릇 뚝딱이긴 하다.)

베이커리에 예약해 둔 케이크까지 찾아오면 오늘의 잔치 준비 완성이다.

소중한 나의 첫 번째 생일상이다.




어렸을 때부터 생일 축하를 받지 않고 자란 아이는 자신의 생일이 중요한 날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된다.

(부모님에게 감사한 날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특별하다. 이걸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누군가 물어보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말해주는 일은 없었다.

어렸을 적 친구들은 알고 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생활에서도 카톡에도 내 생일을 표시하거나 알 수 없게 해 놓았다.

항상 이렇게 자라왔고 살아와서 당연하다 생각했고 불편하다거나 부럽다거나 그런 감정이 있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사람의 생일을 챙겨주고 고심해서 고른 선물을 전해주는데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은 내 생일을 한 번이라도 궁금해한 적이 있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너 내 생일 알아?' 물어보니 '어 그러네. 너 생일이 언제야?'라는 답변을 받았다.

인간은 남에게 그리 관심이 없다는 걸 여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 생일을 몰라줘서, 안 챙겨줘서 서운하진 않았다.

근데 이상하잖아.

내 생일은 물 흐르듯 그냥 지나가고 남의 생일은 모두 챙겨주고 있는 나의 이 당연한 일상이.

이질감이 든 순간부터 오만가지의 감정들이 물 믿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 자신은 언제든지 챙길 수 있어! 꼭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

이렇게 생각한 것도 있고, 어린아이도 아닌데 뭘 그렇게 요란법석하게 잔치를 벌일까 의문이기도 했다.

근데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해보니 내가 생각 외로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는 것.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장소까지 대관하여 축하해 주기도 했는데,

그렇게 보면 나는 나 자신을 꽤나 방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니, 내가 사람들에게 잘해준 이유중 내가 이렇게 잘하면 이 사람도 나를 사랑해 주겠지라는 기대가 있었음을.

그 마음을 깨닫고 나는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그리고 나에게 집중해 보기로 했다.

생각 외로 내 안의 상처가 많아 정말 힘들고 고된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만큼 깨달은 것들도 많다.

나 자신을 소중히 대할수록 타인도 더욱 소중해진다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챙기는 것이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

생일이니 친구들과 만나 하하 호호하며 지낼 수도 있지만,

한번도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생일상을 차린적이 없어 올해는 나만을 위해 혼자있기로 했다.

내가 나에게 해주는 소중한 첫 생일상이니까.

미역국은 소고기 미역국이 제일 최고라 생각했는데 굴도 만만치 않게 맛있다.

갈비찜에 잡채에 오색 반찬이 있는 생일상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풍족하고 만족스러웠다.

치우고 수영장을 가는데 몸도 마음도 든든한 게 땀이 더 잘난다. 히호오.

그래도 내가 나를 예쁘다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니 마음이 아주 담뿍해지는 하루.


'생일 축하해.'


+산책 브런치북이지만 더워서 도저히 산책을 할 수 없었던 하루라 다른 글을 올렸습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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