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by 김여생

공원에 가고 싶어서 얼음이 잔뜩 든 음료를 하나 가지고 가면 1시간도 채 안되어 얼음이 다 녹아버려 정말 서운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하는 휴식시간에 얼음 물이 없으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큰 사이즈의 텀블러를 보고 있었는데 요즘 제일 유명한 건 스탠리.

전소된 차에서 혼자 살아남아 얼음까지 남아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주 듬직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크기도 커서 얼음과 물을 낭낭하게 담을 수 있는 것도 장점.

색상이 굉장히 많아 이걸로 할까 저걸로 할까 고민하던 중, 친구에게 연락이 온다.

'그냥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아.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조만간 만나기로 한 친구가 계속 나의 생일선물을 고르고 있었단다.

나는 이제 예전과 달리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면 거절하지 않는다.

'응! 나 갖고 싶은 거 있어!'

다 큰 수다쟁이는 스탠리를 갖고 싶다면서 갖고 싶은 이유를 구구절절 친구에게 얘기한다.

여러 색상이 후보가 있었지만 무난한 크림색으로 결정을 하고는 신이 나서 룰루랄라.

친구가 요즘 가짜가 많다면서 여기서 사면 될까? 하고 링크를 보내주었는데 어머.

핑크 퍼레이드 색을 발견했다.

'어머 쨍해. 아주 색감이 짱짱하구나 너어-'

핫핑크 색에 금색 로고가 박혀있는 게 아주 강렬하면서 뇌리에 쏙 박혔다.

살짝 설레버렸다.

친구에게 바로 얘기한다.

'친구야 이거 봐봐. 색상이 아주 쨍하다 얘.'

친구는 나를 알기에 그저 웃는다.

'이게 맘에 들어?'

'응. 나 잠깐 설렜어.'

'아이. 설레면 사야지!'

맞장구를 쳐주는 아주 고마운 친구다.

'그치? 설레게 했으면 사야지? 이 나이에 설레기 쉽지 않다 정말루.'

서로 얘기 나누면서 공감한다.

몇 년간 물욕이 없기도 했고 굳이 새 제품을 사야 할 이유를 못 느껴서 친구가 생일선물을 준다고 해도 괜찮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거절했었다.

계속 주겠다고 하면 고양이 물품을 받곤 했다.

내가 오랜만에 갖고 싶다는 게 생겨서 친구도 신이 났나 보다.

'이렇게 좋아하는 거 사주니까 좋다.'라며 기뻐해 줬다.

그러고 보니 진짜 물건에 설렌 적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물건으로 나의 체력이나 감정이 소모되거나 마음이 흐트러지는 게 싫어서 계속 물건을 줄여오기만 했다.

덕분에 나의 집은 아주 깨끗한 상태가 되어서 만족스럽다.

(근데 솔직히 스탠리 사면 집에 있는 컵을 다 정리할 생각이긴 했다. 후후. 컵이 생각 외로 쓰임이 많지 않다.)

역시 사람은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살아야지 암암. 하고 끄덕여본다.

설렌다 설렌다 하니 또 사근사근한 설레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지네.

해도 졌겠다 종다리가 오기전에 마음껏 산책하고 와야겠다.


산뜻하게 산책 출바알-!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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