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준비

by 김여생

다들 바쁘다 바빠.

아침산책을 나왔는데 부산스러운 움직임들이 들린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과 짐가방을 들고 지하철로 향하는 사람과 차로 출발 전 커피를 사러 가는 사람까지.

곧 추석이 다가옴을 느낀다.

엄청 부산스럽다가 동네가 조용해질 예정이다.


명절에 바쁘게 다녀본 적이 없다.

우리 집이 본가라서 명절 교통대란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뉴스에서는 막히는 구간 등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빽빽하게 막힌 고속도로를 계속 보여줬었다.

추석이 끝나고 친구들을 만나 얘기하면 5시간이 걸리고 7시간이나 걸린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때 신기했다.

나는 어딜 가지 않으니 뉴스를 틀어놓고 옆집 할머니들과 함께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는 얘기를 들으며 하루 종일 만두를 빚고 송편도 빚었다.

만둣집을 차리시는 건가.

큰 소쿠리로 5,6판씩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할머니 손은 아주 대문짝만 한 손이다.

옆집 할머니들은 말 그대로 얘기 나누며 만두만 빚다가 가셨다.

(자식들 올 때까지 있다 가셨는데 손이 심심하니 만두도 빚어주시고 송편도 빚어주시고 가셨다. 예전 어른들이 요즘 말로 진짜 갓생이다.)

자식이 오 남매인데 배우자에 손주들도 2명 3명씩이라 집에 다 모이면 자리가 없어 거실까지 빼곡히 이불을 깔고 자야 한다.

이들을 다 챙기고 싶은 할머니의 손은 대문짝만 해질 수밖에 없다.

사골에 손두부에 송편에 만두에.

당연히 갈비찜에 잡채에 온갖 전들도 포함이다.

(어렸을 땐 약과 강정 이런 것들도 집에서 다 만드셨다.)

손 많이 가는 음식들만 고집하신다.

자식들이 양을 줄여보자 해도 들은 체도 안 하시던 할머니였다.

딱히 변화시킬 수 없는 시스템이었고 할머니는 6.25세대 분이라 빠르게 달라지는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우셨을 거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한번 크게 아프신 후, 조금씩 힘들어하시며 자식들의 의견을 따르기 시작했다.

직접 속까지 다 만들던 전을 만들어져 있는 기성제품으로 바꾸고 반찬 가짓수를 하나씩 줄여나갔다.

우리 집에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만두도 절반가량만 만들고 송편은 만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음식이 모자라면 안 된다.'라는 할머니였지만 그렇게 줄여도 음식은 부족하지 않았다.

음식의 종류는 다들 좋아하는 몇 개로 추려져서 불만의 목소리도 없었다.

(갈비찜, 잡채, 삼색 꼬지, 산적이면 다들 만사 오케이다.)

이젠 제사도 단출해졌는데 가끔씩 그립다.

직접 만들어 밀대로 밀면 아주 얇고 촉촉했던 만두피.

그 속에 소를 가득 넣어 나중에 생길 예쁜 딸을 기대하며 빚던 만두.

보슬보슬한 손두부와 송편과 수제 동그랑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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