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맥주

by 김여생

가을맞이 대장정이 끝났다.

집안정리와 가구배치도 다시 하고 커튼과 이불빨래등 이제 가을과 겨울을 맞아도 된다.

혈액을 카페인으로 채우고 하루종일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니 체력이 바닥났다.

당근으로 물건도 판매해서 편의점으로 택배를 부치러 잠시 들렀다.

오랜만에 편의점을 들러보니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이 나와 조금 구경을 하는데.

'오리온 맥주다!'

허 오리온 맥주를 이제 편의점에서 팔아?

갑자기 맥주 3캔을 사서 집으로 들고 와버렸다.

(한 캔은 오천 원이고 세 캔은 만이천 원이길래.. 상술에 잘 걸리는 편이다.)

오리온 맥주엔 나의 여러 이야기가 들어있다.

휴양지를 좋아했던 나에게 오키나와는 정말 좋은 여행지였다.

비행시간도 2시간에 가끔씩 특가로 왕복비행기가 10만 원대에 나오질 않나(코로나 전 이야기다.) 원래는 류큐왕국이었던 곳이라 본토와 또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에메랄드빛 바다에 아주 예쁜 조그마한 섬들이 조잘조잘 붙어있는 곳이다.

오리온맥주는 오키나와맥주로 그곳에서만 제조 및 판매를 했어서 예전에는 일본 본토에서도 파는 곳이 많지 않았다.

(오키나와를 가면 오리온맥주공장에 꼭 가보기를. 공장도 깨끗하고 생맥주시음이 있는데 부드러운 맛이 참 좋다.)

그래서 오키나와에 방문하면 물대신 오리온 맥주를 더 많이 마시곤 했다.

(예전에 사케를 좋아했는데 오키나와는 쇼추라는 술이 유명해 술집에서 사케를 잘 판매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오키나와만 가면 그렇게 술을 얻어먹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난 참 운이 좋다.

한 번은 친구와 아침부터 이리저리 구경하며 물 마시는 것도 잊은 채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어 둘 다 피골이 상접하여 우연히 번잡하지 않은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게는 우리나라로 치면 검정고무신 분위기로 꾸며진 곳이었다.

(민속주점인데 예전 국민학교 시절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 그런 느낌? 관광객은 정말 안 갈 느낌의 가게였다.)

꽤 큰 가게였고 1.5층으로 된 자석도 구비되어 있고 분위기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겠네 싶었다.

들어가자마자 '나마비루 후따츠 구다사이!'를 외치고 메뉴를 정독했다.

(생맥주 두 잔 주세요.라는 의미다.)

한 300ml 정도 되는 잔에 노란 아주 영롱한 맥주가 두 잔이 나왔다.

메뉴를 보겠다고 말하고 직원은 천천히 보라고 했다.

우리는 물도 마시지 않았으므로 맥주가 나오자마자 둘 다 원샷을 하고 키햐아- 광고모델을 따라 하며 까르르했다.

'키햐아 정말 맛있다. 한잔 더?'

'한잔 더!!'

우리는 그렇게 안주도 없이 연거푸 5잔을 마셨다.

(나도 술을 잘하는건 아니지만 내 친구는 정말 술을 못하는 친구인데 이날은 나와 같이 마셨다. 지금도 미스터리라 말한다.)

빈속에 5잔을 안주도 없이 마시고 갈증이 조금 해소된 후 안주를 찾기 시작했다.

6번째 맥주잔이 나오고 친구는 잠시 화장실을 갔는데 갑자기 옆에서 말을 건다.

'저기..'

'네?'

'진짜 술 잘 마시네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아하하.. 목이 말라서. 한국인이에요.'

한 명은 정장을 한 명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일본인이었다.

친구가 돌아오고 우리는 대화를 하며 친해졌다.

같이 술을 마시자고 했고 친구는 무섭다고 했다.

나는 그래 외국이니 조심하자고 했다.

하지만 옆테이블이었고 무시하기가 쉽지 않아 왜 말을 걸었는지 물었다.

'외국인 여자 둘이 앉은자리에서 안주도 없이 맥주를 다섯 잔 원샷하면 신기하지 않아요?'

어 그렇네. 신기하네.

우리는 바로 수긍했다.

뭐 우리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다는 진짜 신기해서 말을 건 것 같았다.

(예를 들자면 뭐랄까. 시골 구석에 있는 민속주점에 외국인 둘이 막걸리를 안주도 없이 병째로 마시고 있는 느낌일라나.)

명함을 받았는데 일본의 꽤 굵직한 기업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오키나와로 출장을 왔다고 했다.

술이 점점 들어가고 한 명은 자신은 유부남이고 아내와 아이 사진을 보여주며 아들자랑을 이만큼 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왔고 다음날 여행을 위해 술자리를 파하기로 했다.

작별의 인사를 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이 계산이 다 끝났다고 했다.

'네? 누가요?'

'같이 계셨던 일행이요.'

우리는 어리둥절했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던 그들에게 가서 물었다.

'아니 일본에 와준 게 고마우니까.'

'네?'

'일본여행에서 좋은 기억만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우리 둘은 고맙기도 했지만 미안해졌다.

얻어먹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우리 둘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얘기했다.

'우리가 2차 쏠게요!'

그리하여 2차전이 시작되었다.

관광객이고 돈이 그렇게 넉넉하진 않았어서 얘기를 했고 우리는 현지 바(bar)를 갔다.

(일본 바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솔직히 술이 올라와서 거의 끝무렵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휴우.

시간도 늦었고 문을 연 곳이 많지 않아 들어간 곳인데 다들 하와이안셔츠에 뭔가 놀자놀자 분위기랄까 오키나와스러운 술집이었다.

(큰 음악소리에 자유로운 진짜 재밌는 곳이었고 직원들도 다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다음여행 때 또 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어딘지 모르겠다. 2층인 것만 기억난다.)

다음날 사진첩을 확인해 보니 바 직원들 모두와 찍은 단체사진도 있었다.

(친구가 웃겨서 동영상을 남겨주어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친구는 맥주 이후로 술을 마시지 않아 맨 정신이었고 나만 주정뱅이가 되어 모두와 친구를 했다고 한다.

바도 영업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었고 우리가 재밌어 보였는지 술을 계속 공짜로 줘서 내가 취했고 나중에는 다같이 술을 마셨다고.

나는 우리 모두 친구라며 단체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는데..

다음날 배를 타고 섬을 가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나는 배에서 극강의 멀미를 맞이하게 되는 슬프고도 아득한 이야기다.

이상하게 오키나와만 가면 이런 사건들이 생겼다.

오리온 맥주를 마셔서일까.

생각난 김에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오랜만에 오키나와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그날 우리가 다섯 잔을 원샷할 수 있었던 건 너와 함께해서야 라는 오글거리는 멘트도 날려줬다.

친구는 '그날 이리저리 어깨동무하고 돌아다니며 노래하던 너의 모습을 잊을 수 없지.'


'어? 그게 무슨 말이야?'

노래라니. 노래라니 그게무슨!

'하하핳 비밀이야!'

'말해줘!!!'

노래라니! 금시초문이라고.

아. 나의 흑역사가 더 있었단 말인가.

오리온 너어는 아주 위험 친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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