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먹는 풀을 키우고 있다.
캣그라스라고도 하는데 밀, 보리, 귀리가 대표적이다.
우리 집 고양이는 전생에 채식주의자였는지 집에 풀이 없으면 계속 돌아다니며 찾는다.
덕분에 난 부지런히 풀을 기른다.
식물만 키웠다면 자꾸 죽이는 식물 킬러였던 나는 처음엔 몇 번 헤매다가 이젠 겨울에도 아주 쑥쑥 잘 크게 하는 식물 지킴이가 되었다.
흙에서만 키우다가 요즘은 수경재배로 키우고 있는데 '유레카!'를 외쳤다.
흙을 구매할 필요도 없고 깔끔하고 위생적이다.
세상에나 왜 이걸 이제 알았지.
잠깐, 시골에서 벼도 다 물에서 키워내잖아? 하며 물에서 키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며 혼자 박수를.
물론 단점도 존재하지만 키워보니 흙보다는 물이다.
(단점은 덥고 습하면 물곰팡이가 잘 생긴다는 것인데 물을 자주 갈아주면 괜찮다. 장마엔 하루 2번 이상?)
물로 키우니 쑥쑥 잘 자라서 일주일이면 푸릇푸릇한 풀잎을 마음껏 먹일 수 있다.
나의 고양이는 일어나자마자 풀부터 찾고 사랑하다가도 풀 먹으러 가고 바깥 구경하다가도 틈틈이 풀을 섭취하는 그야말로 풀 마니아다.
그리고 먹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게 귀엽기 때문에 먹으러 가면 귀 쫑긋도 필수다.
(아그작아니고 햐그작햐그작 소리가 난다. 고개까지 이리저리 돌려가며 먹는 모습을 보면 그저 사랑이다.)
가끔씩 많이 먹어 토할때도 있는데 그래도 또 먹으러 가는 아주 집착남이다.
이렇게 먹일 수 있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겨울에 발아를 몇 번 실패하고 무엇이 문제일까 하다가 할머니와의 일화를 떠올렸다.
우리 집은 3대가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셨다.
학생이었을 때 겨울 어느 날 밤,
방에 있다가 갑자기 무서워져서 할머니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할머니 품에 쏘옥 들어가 잤다.
그 품이 정말 좋아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한동안 내 방을 놔두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잤다.
그렇게 봄이 다가오던 어느 추운 날 할머니는 방으로 모내기판을 가져오셨다.
'할머니 이걸 왜 방으로 가져와?'
'따뜻하게 해서 싹을 틔워야지.'
'밖은 추워서 안돼?'
'얘네도 따뜻한 온기를 좋아해. 여기서 싹을 틔워 어느 정도 자라면 비닐하우스에서 더 키우고 그걸로 모내기를 하는 거야.'
'아하! 신기하다-' 하고 계속 모포 속을 봤다.
궁금해서 틈만 나면 들춰보니 할머니는 아직 자고 있으니 깨우면 안 된다며 나무라기도 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호기심 대마왕이었다. 근데 방에 가져오신 건 벼는 아니고 고추 씨앗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벼는 집에 놓기엔 너무 많지. 그럼 그럼.)
씨앗을 뿌려놓고 (물이었는지 흙인지는 헷갈리지만) 두꺼운 모포 같은 것으로 잘 덮어서 방에서 제일 따뜻한 아랫목에 둔다.
나는 모내기하는 건 많이 봤지만 이렇게 싹 틔우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는 최고다.
무섭다는 핑계로 거의 1년을 같이 잤던 것 같은데 후후.
예전엔 고등학생이 부끄럽게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추억할 거리가 많으니 정말 잘했다.
이 추억을 생각하며 똑같이 한번 따라 해봤다.
평평한 접시에 미온수를 받아서 씨앗을 잘 펼쳐주고 두꺼운 모포 대신 키친타월을 그 위에 잘 덮어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곳에 하루, 이틀 정도를 두었다.
그랬더니 금방 발아를 하기 시작했다.
(겨울에 바로 흙에 심으니 풀이 안 자라 실패를 거듭했었다.)
그렇게 나는 사계절 내내 식물을 잘 키워내는 사람이 되었다.
수경재배를 하고 있는 지금도 항상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꼭 키친타월을 덮어주고 잘 자고 일어나렴.
내일은 조금 더 자란 모습을 보여주렴 하고 말도 걸어준다.
그러면 거짓말같이 씨앗에서 툭 불거져 나와있다.
또 밀싹은 사람에게 참 이로워 주스로도 많이 마시니 길러서 함께 먹기도 참 좋다.
(항산화, 항염, 피부 건강 등 효과가 많다.)
역시 어른들은 지혜롭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막상 해보면 그렇게 별거다.
이젠 잘 때 할머니 대신 고양이가 내 곁을 지키고 있지만 그 따뜻한 온기는 비슷하다.
(고양이가 조금 더 뜨겁다.)
이걸 쓰는 와중에도 고양이는 풀을 세 번이나 먹으러 갔다.
우리 고양이는 정말 못 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