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작

by 김여생

사부작거리기 좋은 날이다.

해도 좋고 바람도 좋고 습도도 좋다.

아침산책에 사각사각 밟히는 나뭇잎을 보다가 집도 가을맞이를 해야겠다 하며 돌아왔다.

침대 패드와 이불을 전부 들춰내고 새것으로 바꿔준다.

새것으로 삭 갈아주니 상쾌해!

이제 새벽에 공기가 많이 차가워져 무릎 위에 올려놓는 작은 온열찜질기도 꺼내준다.

(고양이가 올라가 누우면 딱 알맞은 크기라 고양이 전용으로 사용 중이다.)

1단으로 틀어주니 몸을 다 대고 자긴 더운지 뒷발만 딱 올려놓고 잠이 들었다.

집안을 치우고 이제 가을 준비를 해본다.

에어컨 쓸 일이 없어 덮개도 덮어주고,

(덮개 덮는 게 더 안 좋다고는 하는데 고양이 털이 많이 날리기도 하고 고양이가 그 위로 올라가는 경우가 있어서 나는 씌우고 있다.)

얇은 긴팔 긴 바지들과 가을용 잠옷을 꺼내본다.

저녁에 민소매에 반바지는 조금 서늘하다.

그러면서 다시 옷 정리도 해본다.

'이거 계속 입을까?'

이제 한 계절 옷이 서랍장 한 칸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양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한 번씩 설렘을 잃어가는 옷들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데 또 해지고 구멍이 나도 계속 입고 싶은 옷이 있는 것도 신기하다.

(예전에 정말 좋아하던 면 셔츠가 있었는데 얇은 소재라 구멍이 잘나서 몇 년간 기워서 입고 또 입은 적이 있다. 덕분에 바느질 실력이 많이 늘었다.)

나의 어머니는 마음에 드는 옷은 색깔별로 몇 개씩 똑같은 옷을 사는 사람이었는데 어린 나는 이해가 안 됐었다.

'하나만 있으면 되지. 왜 또 사?'

그랬는데 이젠 내가 한번 마음에 들면 똑같은 제품을 한 서너 개를 사놓는 사람이 되었다.

핏과 착용감과 디자인 모두 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나기 어렵기도 하고 브랜드들도 보세들도 자꾸 시즌이 지나면 조금씩 바꾸거나 단종시킨다.

엄마의 마음을 정말 십분 이해하게 된 딸이다.

작년에 정말 마음에 드는 바지를 발견해서 그것도 집에 5개가 있다.

(봄가을초겨울은 이 바지만 보내고 있다.)

휘뚜루마뚜루 회사 복장으로도 좋고 캐주얼로도 손색없고 운동화에도 구두에도 다 잘 어울린다.

몇 번의 바지를 실패하고 얻은 귀한 제품이라 하루 입고 출근해 본 뒤 있는 재고를 다 달라고 했다.

올해도 꺼내놓았는데 흐뭇하다.

당분간 바지 살 일이 없어서 좋고 매일 마음에 드는 바지를 입을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며칠 전, 20대인 아는 동생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슨 옷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고민 없이 보자마자 아 내거다 하고 구매하는 것을 굉장히 신기하게 바라본다.)

'모르는 게 당연해. 이것저것 많이 입어봐.'

라고 대답했다.

그저 이것저것 다 입어보면서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도 혹은 나와 찰떡인 것도 찾아가는 거다.

입어보면서 자신의 취향도 점점 알아갈 수 있다.

(난 개인적으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셔츠를 좋아하지만 나의 이미지는 부드러운 블라우스가 잘 어울려서 취향보다 이미지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어울리는 게 같지 않더라구.)

나이가 많아서 아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시도해 본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많이 아는 것뿐이다.

그러면 옷장에서 버릴 옷이 없다.

한 번도 안 입고 해를 넘기는 옷이 점점 줄어든다.

당연히 쇼핑도 속전속결이지.

필요한 걸 디테일하게 생각해두면 이거 살까 말까? 하는 마음이 없다.

'아 이건 내 거다!' 하고 바로 들고 간다.

그렇게 산 물건들이 5년 10년을 넘게 나와 함께하고 있다.

오늘 옷을 정리하면서 조금 더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을맞이였는데 얼떨결에 옷을 다 꺼내서 또 품평회 시간을 가져버렸다.

고민했지만 아직은 다 마음에 드는 옷들이라 처분은 보류다.

보다가 오래 입은 극세사 잠옷에서 구멍을 발견했다.

서둘러 반짓고리를 가져와본다.


후후. 오랜만에 나의 바느질 실력을 보여주겄다.

예쁘게 기워줄 테니 나와 오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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