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간 기행

전, 답 손대지 말라

by 김용근

시골 면사무소에서는 보기 드문 가족 방문객이 민원실에 나타났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인감 창구 민원대 의자에 앉자 함께 따라온 자녀들이 양옆에 포진했다

할아버지는 십 년도 더 되어 보이는 농지원부를 잠바 주머니에서 꺼내 그곳에 적힌 전답 필지를 손가락으로 따복 따복 짚어가면서 직원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것은 더턱골 두 마지기짜리 밭이여 감자랑 배추 같은 것이 전부 거그서 나와.
이것은 몰랑뜰 말갓지기 수렁논이여 가물아서 가실에 다른 집들은 쌀 한 톨 구경 못해도 이 수렁논에서는 쌀이 또박또박 나왔다고.
글고 이것은 개미개 뜰 옥답이여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자식들을 키워준 논이라고 얼매나 부러워했는지 몰라

인감 창구직원 : 할아버지 그러니까 여기 인감 떼러 오신 거 맞아요?

며칠 전 그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던 인감 창구 직원은 치매환자 중인 할아버지를 자식들이 모시고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날 자식들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서 자신들이 대신 인감과 농지원부를 발급받을 수 있을지 물었고 직원은 본인이 직접 오셔야 한다고 했었다

어제 퇴근 무렵에 면에서는 보기 드문 신사복 차림과 명품 핸드백을 든 여자 세명이 민원실로 들어왔다 그때 그 사람들이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신 농지원부와 인감증명을 발급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보아 할아버지의 전답을 자식들이 증여받으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며칠 전 민원실 방문을 해서 이것저것 묻고 간 이후 가족들의 어떤 결정이 있었는지 할아버지가 손에 농지원부를 들고 자녀들과 함께 나타나신 것이다

직원 : 할아버지 인감 떼어 드려요 농지원부랑 같이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할아버지 : 안돼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갖고 있어야 해. 느그들은 농사를 안 짓고 사니께 느그들은 내 땅을 받아갈 자격이 안되아서 내가 죽기 전에는 줄 수가 없어. 요새 도시서 산 놈들이 거짓말로 농사진다고 투기다 뭐 다해서 난리가 났잖아 긍개로 내 땅 증여는 안돼 안된다고

직원 : 할아버지 치매가 치료되신 건가요?
자식들 : ?

할아버지는 오늘 저녁 집에서 주무셨을까? 아니면 요양원에 다시 가셨을까?

논,밭은 농부의 치매 치료제다
농부 것 함부로 손 대려 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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