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간 기행
이야기로 풀어보는 가야 기문국 여행
운봉고원 가야 기문국 말과 마요제 이야기
1500년 전 지리산 은둔의 나라 가야 기문국의 국력은 말과 철이었다.
철은 국방과 경제의 주체였고 말은 통신과 운송의 엔진이었다.
좌로는 말 ,우로는 철 그래서 좌말 우철이 기문국의 기둥이었다.
말이 나라의 기둥이었다는 흔적은 마요제에서 보인다.
마요제는 가뭄 때 말에게 먹일 물을 확보해두는 오늘날의 급수용 저수지였던 것이다.
지금 그 저수지의 이름은 매요제이고 마을 이름도 매요리이다.
운봉고원은 지리산의 분지다.
그곳에 자리한 기문국 가야는 적의 방어와 공격에 말이 필수적이었다. 그 말은 5호마다 1 필씩 사육토록 하는 1마 5 호제를 통해서 농사와 기마용의 병용 말을 두었다.
평시에는 농사짓는 데 사용하고 농한기에는 훈련을 통해 말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이 곳 지방의 속담 중에 5호마다 말 1 필이면 부자다.라는 말의 시원은 아마도 그때부터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항상 부족했다.
특히나 산악지방에서 전투에 능한 훈련된 기마용 말이 절대 부족했다.
그 확보의 수단은 소금과 말을 교역하는 것이었다.
기문국 옆 나라는 장수 가야였다.
장수 가야는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인 나라였고 외부와 소통이 어려운 취약성에다가 소금은 그 어디에서도 구할 곳이 없는 나라였다.
장수 가야의 생존은 오직 기문국과 우호적인 관계로 동맹을 맺는 길 뿐이었다.
기문국은 지리산을 넘어 하동에서 소금을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수 가야는 말의 천국이었다.
기동력만이 나라를 지켜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잘 훈련된 말의 생산을 나라의 기밀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었다.
기문국과 장수 가야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우호적인 손을 내밀었다.
장수 가야의 말은 기문국의 소금과 교환되었다.
장수에서 기문국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말에게 먹일 물이 필요했다.
기문국은 그곳에 저수지를 만들고 이름을 마요제라고 했다.
말에게 먹일 필요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이었다.
지금 그곳은 운봉 매요리 매요제가 되었다.
유적지는 이야기의 이음줄이다